N년차 평균 연봉과 인상률에 자꾸 목매지 말지어다
커뮤니티를 조금만 둘러보면 비슷한 결의 질문들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3년차 UXUI 디자이너인데 연봉 3천 중반이면 어떤 편인가요?”
“이 정도 경력에 이 연봉이면 이직을 고민해야 할까요?”
“연봉 협상에서 5% 인상됐는데, 보통 이 정도가 평균인가요?”
“주변 디자이너들은 다 4천은 넘긴 것 같은데 저만 뒤처진 느낌이에요.”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질문이 향하는 방향은 거의 같다.
나는 지금 적정선에 있는가, 남들보다 잘 가고 있는가, 혹시 손해 보고 있는 건 아닌가. 결국 이 모든 질문은 하나의 불안으로 수렴한다. ‘내 커리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 욕구다.
질문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월급은 현실이고, 기준이 없으면 사람은 쉽게 흔들린다. 다만 문제는, 이 질문들이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사고를 좁힌다는 데 있다. 평균은 얼마인지, 나는 그 평균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느 구간에 있는지. 그렇게 숫자를 나란히 세워 놓고, 그 위치가 나의 커리어를 설명해줄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이 질문들은 대부분, 답을 알아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종류의 질문이다.
UXUI 디자이너의 초봉이 어느 정도 수렴하는 구간은 분명 존재한다. 주니어 구간, 특히 1~2년차까지는 회사 규모나 산업군이 달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이후다. 3년차부터는 같은 ‘n년차’라는 단어가 사실상 아무 설명도 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고성과자로 분류되어 5천을 받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대기업 공채로 들어가 안정적인 구조 안에서 4천 초반을 받을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2천대 초반 에이전시에서 시작해 이직으로 단숨에 4천을 찍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같은 에이전시에서 3년을 버티며 이제 겨우 3천을 넘겼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경우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 네 사람을 같은 ‘3년차 UXUI 디자이너 평균’이라는 단어로 묶는 순간, 정보는 통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판단도 도와주지 못하는 숫자가 된다.
연봉 협상도 마찬가지다. 5%를 올렸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3%만 올라도 상위권이고, 어떤 회사에서는 10%가 기본값이다. 어떤 조직은 구조적으로 연봉 테이블이 촘촘하고, 어떤 곳은 성과가 나면 한 번에 튀어 오르기도 한다. 심지어 회사의 현금 흐름, 투자 단계, 대표의 성향, 조직 재편 시점 같은 변수들도 연봉 인상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맥락을 전부 제거한 채 “몇 퍼센트면 잘 올린 건가요?”라는 질문은, 솔직히 말하면 방향을 잘못 잡은 질문에 가깝다.
그래서 중요한 건 평균이 아니라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무의식적으로 기준을 ‘타인’에게 둔다. 동기, 친구, 커뮤니티 글 속의 익명. 하지만 커리어라는 건 옆 사람과 나란히 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방향과 속도가 제각각인 장거리 이동에 가깝다. 어떤 사람은 초반에 빠르게 치고 나가고, 어떤 사람은 한참 뒤에 가속이 붙는다. 중간에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도 한다. 이걸 특정 시점의 연봉 숫자 하나로 평가하려는 시도 자체가 애초에 무리다.
월급쟁이부자들에서 CTO로 근무 중이신 세준님께서 링크드인에 쓰신 포스트에서 마라톤 비유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리어 초반에 동기가 나보다 1~2천을 더 받는다고 해서, 그게 내 인생 경로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다. 아직 1km도 안 뛴 시점에서 100m 앞서 있는 걸 보고 레이스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1~2년 뒤에 나를 더 높은 선택지로 데려다줄 수 있는가?'
'이 환경에서 쌓이는 경험이, 다음 회사에서도 통용되는가?'
'연봉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이 성장하고 있는가?'
연봉은 결과다. 그리고 결과는 항상 한 박자 늦게 온다. 특히 커리어 초반에는 더 그렇다. 지식과 경험이라는 인풋을 계속 넣고 있는데, 아웃풋은 눈에 띄게 늘지 않는 구간이 분명 존재한다. 이 시기를 지나야 어느 순간 ‘폭발’처럼 기회가 몰린다. 그 전에 숫자만 보고 스스로를 저평가하거나, 반대로 잠깐의 고평가에 취해 안주하는 쪽이 더 위험하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건, 지금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성장 경로가 막히는 경우다. 연봉이 높아질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다음 이직의 허들이 올라가고, 더 큰 책임을 요구받는다. 그 상태에서 역량이 따라가지 않으면, 커리어는 빠르게 경직된다. 숫자가 나를 보호해주는 게 아니라, 나를 가두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연봉과 연봉 인상률을 바라볼 때, 디자이너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
'이 숫자가 내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인가?'가 아니라,
'이 숫자가 지금 내 성장 곡선과 어긋나 있지는 않은가.'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있다. 타인의 연봉과 나를 비교하는 건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속한 회사가 내 역량 대비 합리적인 보상을 주고 있는지, 동시에 충분한 성장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이 두 가지만 보면 된다. 둘 중 하나라도 아니라면 그때는 연봉이 아니라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연봉 때문에 불안해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이 평균을 찾는 데 있지는 않다. 평균은 위안도, 방향도 되지 않는다. 디자이너의 커리어는 숫자로 줄 세우는 게임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는 가치의 문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대체로, 생각보다 늦게, 그러나 꽤 확실하게 돌아온다.
지금 연봉이 낮아 보인다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연봉이 높다면 안심하지 않아야 한다. 비교 대신 축적에 집중하는 쪽이, 결국 더 멀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