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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story Nov 06. 2017

골목길 Hot Place 조성을 통한 도시재생 (2)

'압구정 Hot Place'

압구정 Hot Place


건축학개론이 도시에 주는 단상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떤 사람을 좋아했고, 어떤 이의 사랑을 받았을 꿈같았던 학창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건축학개론’의 타이틀 문구이다.    



도시에 생명력을 주는 것이 사람이라면, 도시는 사람에 의해 선택을 받고 가슴이 뛰도록 사랑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사랑이 식으면서 쇠퇴하는 것이 도시라는 점에서 ‘건축학개론’이라는 타이틀과 타이틀 문구는 묘하게 어울린다.    


과거의 추억을 묻고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는 ‘건축학개론’의 마지막 장면에서와 같이, 도시는 언제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고 있으며, 변화되더라도 과거의 흔적을 품고 살아간다는 점도 닮았다.


도시의 윤회설(輪回說)


루이스 멈포드(1961)는 ‘도시의 발전과 쇠퇴의 윤회설(輪回說)’에서 도시는 폴리스(Polis)의 출현에서 시작하여, 문화적 에너지가 절정에 달하는 도시의 전성기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상태에 도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다음 단계인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에서는 도시는 돈을 벌기 위한 공간으로 변화되며, 독점자본주의에 의해 도시의 쇠퇴가 시작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예술, 문학, 건축, 언어 등의 문화적 산물들이 단지 금전적인 기준에서 표준화되며, 기계 생산이 독창적인 예술을, 거대함이 형식을, 양의 대소가 의미를 대체할 것으로 예견하였다. 결국, 공룡과 같은 거대 자본이 문화적, 경제적 요소를 완전히 흡수해버리는 티라노폴리스(Tyrannopolis)에서는 자치단체는 파산하고 예술과 과학의 창조가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폐허 속에서도 꽃은 피듯이, 도시가 폐허화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단계에서는 다시 초기단계의 폴리스(Polis)가 출현하면서 새로운 싹을 틔울 것이라는 희망을 예고했다.




압구정이라는 핫플레이스의 탄생과 번영


‘건축학개론’에서... 주인공 수지(서연)와 이제훈(승민)의 인연을 가로막은 학교 선배 유연석(재욱)은 학교 사람들 속에서 ‘압서방’이라고 지칭된다. 여기서 나오는 ‘압서방’은 1980년대 말, 강남의 신흥 중심으로 떠오른 압구정동, 서초동, 방배동을 의미한다.    


4대문안의 혼잡을 완화하기 위한 강북의 개발 억제정책으로 강남 개발압력이 커지던 시절, 명동, 종로, 동대문 등에서 접근성이 좋은 신사동, 방배동, 압구정동 등이 서울의 신흥 상권으로 부상했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이다.   


압구정동은 농사를 짓다가 토지보상을 받아 하루아침에 졸부가 된 이들과, 그들을 대체하여 강남으로 이사 온 대한민국의 신흥 경제⋅정치 주체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들의 자식들이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각진 그랜저 자동차를 몰고 처자들을 유혹했던 ‘야타족’과 ‘오렌지족’이 압구정동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연예기획사들의 헌팅 장소로 소문이 나면서 더 많은 선남선녀들이 모여들었고, 사람이 모이니 당연히 당대의 패션을 리딩 하는 소품과 아이템 들을 가진 옷가게, 액세서리 가게, 그들이 먹고 마시고 노는 음식점, 주점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필자가 기억하는 당시의 압구정동에서는 큰길보다는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독특한 샵과 음식점, 주점들이 하루가 다르게 점령해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생겨났던 샵이고 음식점이건 간에 분위기 자체가 다른 지역과는 틀렸다.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품들이 샵이나 음식점의 전면과 내부를 감싸고 있었고, 지금으로 보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기대감을 가지게 만드는 디자인이 조그만 공간의 구석구석마다 깊게 배어 있었다.    



당시 유럽, 미국, 일본 등에 유학을 다녀오거나 여행을 다녀온 강남 부유층 자제들과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독특한 소품들과 문화를 들여오고, 국내 예술인들이 일부 합류해서 샵을 차리면서 다른 곳과 차별화된 문화와 분위기가 존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스토랑이라고 해봤자 돈가스, 비프가스, 함박스테이크 등이 크림수프와 같이 나오던 게 전부인 시절, 똑같은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인데도 불구하고 소개팅을 한다고 하면 찾게 되는 곳이 압구정이었고, 보세 옷이라도 동대문, 이태원, 이대 앞, 홍대 앞 보다 더 쳐주는 곳이 압구정이었다. 오렌지족이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적어도 압구정동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되기를 희망했던 것 같다. 


압구정의 쇠퇴


압구정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면에서는 여전히 강남지역의 중심이고 청담동과 함께 고급문화의 일번지 역할을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틀리다.    


청담과 함께 강남 최고 수준의 보증금과 임대료, 권리금을 자랑했던 압구정 임대시장은 가장 최악이었던 2016년에는 보증금, 임대료가 예전의 1/3까지 떨어진 곳도 있고, 권리금은 거의 1/5 이하까지 떨어지거나 아예 없는 경우까지 생겨나는 굴욕을 당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서울시가 2003년에 추진한 주거지역에 대한 ‘종 세분화’에 의해 기존 법정 용적률은 150~250%로 줄어들게 되었다. 법이 시행되기 전에 조그만 상가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새 건물들이 신축되었으며,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벗어나 도산공원에 이르는 지역까지 상가건물의 신축이 끊임없이 지어지는 현상을 빚어냈다.    


이렇게 공급이 지나치게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높은 임대료, 권리금은 절대 낮춰지지 않았다. 오히려, 콧대 높은 건물주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업종이 아니면 공실이 생기는 한이 있어도 임대를 내주지 않았다.    

압구정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기업형 임차인이었지만, 좁은 골목길에 자리 잡은 관계로 규모가 작았던 관계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공급이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낮아지지 않은 임대료와 권리금을 견디지 못한 기존의 임차인들은 가로수길, 성수동, 경리단길 등으로 터전을 옮겨가면서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고 말았다.


사람과 자본이 떠나간 자리에 새로운 희망이...


압구정 핫플레이스의 쇠퇴는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발현된 정체성, 독특한 문화가 자본에 대한 끝없는 탐욕에 의해 사라진 안타까운 상흔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핫플레이스로 칭할 수 있는 상징성이 있고, 강남 개발의 상징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압구정의 쇠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이다...    


그래도 최근 들어 희망적인 소리들이 들려온다.    


우선, 최근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건물주들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최대 30%까지 낮추기로 합의하면서, 현재 메인도로 건물 공실률 30~40%가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많이 늦었지만 콧대 높던 건물주들이 이미 떨어진 임대료를 더 낮춰서 소비자들의 눈높이에서 임대를 놓고자 한다니... 드디어 현실을 깨닫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반길만한 소식이다. 이러한 건물주님(?)들의 노력은 새로운 형태의 트렌드 리더들을 유인하여 압구정의 활성화를 이뤄갈 수 있는 씨앗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또한, 최근까지 임대료와 권리금이 큰 폭으로 떨어진 관계로 젊은 셰프들을 중심으로 개성 있는 음식점들이 속속 유입되고 있다. 많은 핫플레이스들이 먹거리가 있는 장소들을 중심으로 뜨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 있는 먹거리 패션의 유입은 압구정 핫플레이스 부활의 긍정적인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식이 전해지는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의 특성은 압구정에 트렌드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많은 기여를 할 듯하다.   


앞으로 압구정 핫플레이스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궁금하지만... 최근 인근의 가로수길이 겪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있다면, 대자본을 추종하여 수익만을 쫒아가다 또다시 쇠퇴하는 길을 가지 않길 바라며, 압구정 핫플레이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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