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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프롤로그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며

by 마케터TK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마지막으로 부탁한 일을 끝냈다.


지난주에 변호사로부터 부산 가정법원에서 작성한 상속 포기 및 상속 한정승인 판결문을 받았다.

3개월 내 신청라면 된다고 했지만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라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돌아가신 지 3개월 만에 판결문까지 받고 신문에 알리는 철차를 끝냈다.

서류 준비하는 과정이 좀 복잡하긴 했지만, 법률 서비스 회사의 도움으로 접수 후 판결문까지 받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까지 실감 나지 않는데
부재감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불쑥불쑥 찾아온다


정리가 끝나면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다.


아버지의 부재 이후 마음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던 무거운 부채감이 수면 위로 떠올라 가볍게 느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다 정리하고 나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3개월 전, 일을 다 치르고 나서 얼마 안 돼서 장모님이 물었다.

'많이 힘들었지? 힘든 거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많이 슬퍼하고 많이 표현해.'


그때, 내 짧은 대답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직까지 아무것도 실감이 안 나요. 그냥, 오래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지금도 부산 집에서 잘 생활하고 계실 것 같아서...


그땐 순간적으로 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아버지 이야기, 아버지와 관련된 게 나오면 저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아버지의 부재가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안 계시단 사실은 아는데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있다.


마음의 짐 같던 상속 문제를 정리하면 좀 더 실감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지난주에 부산 집에 갔다 왔다.


덩그런 집에 어머니 혼자 계신 걸 보면서 아버지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집 가구 배치도 바뀌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는 엄마 이야기에 아버지의 부재를 새삼 느꼈다.

부재 3개월 기간 동안 많은 걸 정리했다.


정리하면서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사업의 부침과 그걸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잠 못 이룰 나날을 보내셨을까?


나날들의 흔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남겨진 것들은 거의 없는데,

이따금씩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느껴졌다. 그 부재는 사람들 마다 다르게 다가왔다.


장모님이 조용히 견출지를 사 오셔서는 그러셨다.
이번에 부산 집에서 보낸 간장에 견출지가 안 붙어 있었다고.

늘 꼼꼼한 성격과 배려심으로 '국간장'이라는 이름과 만든 날자가 적혀 왔는데, 이번엔 적혀 있지 않았다.

어르신이 안 계시니까... 이제 나도 실감이 나는구나.


사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해내지 못했다. 이따금씩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 부재감에 마음이 많이 무겁다.


지금까지 감당해보지 못한 기분을 갖고 살고 있다.


서류 뭉치를 발견했다.
왜 남기신 걸까?


12년의 기록 - 두 번의 암수술과 장폐색, 그리고 여러 가지 잔잔하게 겪은 질병들의 기록들


아버지의 유품을 대부분 버리는 걸로 정리했다.


그랬지만 남긴 유품 중에 차마 버리지 못한 서류 봉투가 있다. 흔한 병원의 서류 봉투인 줄 알았는데 12년간의 암 투병기가 연대기로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아직까지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아버지만큼 꼼꼼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한 장 한 장 읽어보니 그 12년간 아버지와 가족들이 어떻게 이겨냈는지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건강을 잃은 사람, 그걸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거기에 자세히 쓰여 있진 않았지만 일을 겪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왜 이걸 남기신 걸까?


평소 메모광이기도 하셨고, 남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이시라 저렇게 많은 기록을 남긴 건 이해가 되었다. 저 서류 뭉치 말고 몇 권의 노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편지지에 일대기로 정리한 게 다 였가.

그리고 돌아가시기 약 6개월 전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본인은 무언가를 알고 계셨던 걸까?

이제 나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천천히 내용을 읽다가 이걸 글로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오랜 투병생활을 하신 아버지를 보면서, 건강을 잃은 본인이 제일 힘들긴 하겠지만 그 주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도 많이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나도 여전히 아프다.

힘든 일이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툭하고 조용히 아버지가 떠오른다.아버지도 이런 일을 겪으셨겠지, 이런 일들을 감내하고 사셨겠지.


그럴 때마다 좀 더 잘해드릴걸 하는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아버지를 보낸 허전한 마음을 글로라도 남겨야 할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뒤늦게 깨달았다. 많이 표현하지 못했다. 후회가 밀려온다.

이에 대한 나의 반성이자 기억하고 싶은 많은 것을 기록하고 싶다.


단숨에 써 내려가는 글은 아닐 것 같다.
어느 순간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아버지의 기억을 조금씩 조금씩 정리해 나갈까 한다.


※대문 이미지

https://www.pexels.com/photo/silhouette-of-man-and-child-near-white-hyundai-tucson-suv-during-golden-hour-113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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