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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태민 Aug 24. 2023

나까지 울면 안 되지

22년 10월,


엄마가 서울로 올라간 지도,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어갔다. 매일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던 탓일까? 엄마가 서울로 올라간 뒤로는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듯했다.


엄마와 가족에 대한 생각. 슬픔은 늘 나와 함께 했지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매번 꾹꾹 누르고 있었다. 한번 꺼내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만 같았기에 자꾸 외면했고 모른척하려고만 했다. 하루 딱 한 번. 매일 퇴근길에 안부전화 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와 동생의 하루하루가 걱정도 됐고 궁금한 것들도 많았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냥 엄마가 나랑 통화할 때만큼은 별생각 없이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으면 했다. 나랑 통화할 때만큼은 아픈 엄마가 아닌 평범한 엄마였음 했다. 그래서 늘,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통화를 하다 한 번씩 엄마가 웃을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그늘진 일상들을 애써 알려고도, 애써 들춰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루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공부를 하고 있는데, 평소와 다르게 늦은 시간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이 밤늦게 전화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밤늦게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대답 없이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왔다.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동생이 울고 있었다.


어디냐고 물어보니, 잠깐 바람 쐬러 혼자 밖에 나왔다고 했다. 동생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쉽게 진정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동생이 울며 말했다. 엄마가 요즘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점점 힘들고 아파한다고. 최근에는 밥도 잘 못 먹고 음식을 먹으면 다 토해낸다고. 이제는 혼자 움직일 수 없어서 화장실을 쓰고, 씻는 것조차 잘 못한다고. 새벽마다 엄마가 아파서 잠꼬대를 한다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 밤을 새우는 날이 많다고. 또 요즘은 엄마가 짜증을 내는 일도 많다고 했다. 치료받느라 힘들고 예민한 건 잘 아는데, 매일 밤낮없이 짜증을 내니, 이제는 나도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한참을 서글프게 울었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눈물이 났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동생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여태 알지 못했었던, 어쩌면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었던 불편한 사실들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동생이 많이 가여웠다. 동생을 힘들게 하는 엄마가 괜히 미워졌다. 한참을 동생과 이야기하며 들어주고, 달래주고, 위로해 주었다. 내가 힘든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그뿐이었다.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주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사실 나도 내가 말하는 그 '희망'이 언제 오는지. 진짜 오기는 하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동생과의 긴 통화를 끝내고 나니 진이 쭉 빠져있었다. 힘들고 지쳤다.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내가 분명하게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게 더 나를 힘들고 속상하게 만들었다. 여태 든든한 아들이자 기댈 수 있는 오빠였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원망스러웠다.


혼자 한참을 생각해 봤다.


'직장과 내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서울로 올라가야 할까? 동생과 엄마와 함께 지내야 할까?'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내 모든 걸 포기할 용기가 쉽게 나질 않았다. 그저 엄마가 조금만 더 씩씩하게 치료를 잘 받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저 동생이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내가 진짜 가족들을 사랑하는 걸까?, 내가 이기적인 걸까?' 답답한 마음과 머릿속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 후로는 밤늦게 오는 동생의 전화가 잦아졌다. 그만큼 힘들고 답답하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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