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에게 내 목숨을 준다면

[2023 리뉴얼]

by 탱이사는이야기

“오, 그거 내 최애야!”


언제부터인가 최애라는 단어가 유행이 됐다. 최애 아이돌, 최애 연예인, 최애 음식. ‘최고로 애정한다’는 뜻의 최애는 많은 곳에 녹아들어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최애. 그만큼 애정을 주는 존재들일 거다.


최애가 유행하기 이전부터 사용됐던 비슷한 단어가 인생이다. 인생영화, 인생책, 인생문장. 우리는 너무나 좋아하는 것 앞에 인생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왜 우리는 최애들에게 인생이란 단어를 선사하는 것일까.


“사람도 그렇지만 글쓰기도 그렇다. 시간을 주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안 준 것이다. 여기 묶은 글들은 내 8년 동안의 생명 중 일부를 주고 바꾼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쓰면서 나는 죽어왔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는 이 글들을 써 내려가면서 죽어왔습니다’ 작가는 살아있음과 죽어가는 것을 동일시한다. 인생은 사람이 탄생하여 죽을 때까지의 여정이자 살아있는 시간이다. 그런 동시에 그 기간은 또한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이다. 생과 사는 정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살아있음과 죽어가는 것은 공존하는 셈이다. 살아있어야 죽어갈 수 있다. 그리고 죽어가는 것은 살아있음의 증거다.


우리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치인에게는 명분이, 고리대금업자에게는 돈이, 순교자에게는 신앙일 수 있겠지만 아마 대다수에게는 목숨이 아닐까? ‘목숨 바쳐 지켜내야 할 가치’라는 말에서부터 우리는 목숨의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목숨을 바치게 만드는 것은 그만큼 숭고하고 위대한 가치일 것이다.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인생을 잘게 쪼갠 시간 역시 목숨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 목숨의 일부를 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행위는 우리 목숨의 일부를 그에게 준다는 가장 숭고하고 위대한 일이다. 우리가 죽어가는 그 시간만큼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애들에게 인생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었나 보다. 내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좋아했기에 이제 그들이 없었던 적이 기억이 안 나는, 돌이킬 수 없는 내 인생의 일부라서.


나는 <여덟 단어>에서의 이 문장을 좋아한다.

“우리 인생은 몇 번의 강의와 몇 권의 책으로 바뀔 만큼 시시하지 않습니다.”


시시하지 않은 내 인생의 일부를 오늘도 최애들에게 준다. 쉽게 바뀌지 않는 내 인생을 그들이 조금씩 변화시켜 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