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남편과 가족계획을 세울 때, 우리 부부의 답은 늘 '최소 둘'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남편에겐 누나가, 나에겐 오빠가 있었기에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비록 지금은 오빠와 데면데면한 사이일지라도,
세상에 내 편이 하나 더 있다는 감각은 삶의 큰 의지가 되곤 하니까.
첫째가 돌을 지나자 주변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질문이 쏟아졌다.
"둘째 계획은 없어? 언제쯤 가질 거야?"
그때마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힘들어요"라며 기대를 차단하곤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렴풋이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있었다.
'첫째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최소 30개월의 터울은 지켜주자.'
그런데 아이가 자랄수록 내 마음에도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로소 나의 우선순위가 선명해졌다.
첫째를 낳았을 때, 나의 우선순위엔 내가 없었다.
가족과 일이 1, 2위를 다퉜고 나는 저 멀리 뒤처져 있었다.
우선순위가 뒤엉킨 삶 속에서 나는 금세 망가졌고, 무엇 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 몸의 회복이 먼저라는 것을.
그래서 이번엔 나를 1번으로 두기로 했다.
임신 계획은 그야말로 '오락가락'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나이를 고려하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가도, 1월 말에 예정된 하와이 여행만큼은 가뿐하게 다녀오고 싶어 미루기도 했다. 그러다 1년에 단 12번뿐인 기회를 허무하게 보낼 순 없다는 생각에 남편을 다시 설득하기도 했다.
나는 예민함이 극에 달할 때 몸보다 직감이 먼저 반응하는 인간이다.
첫째 임신을 알게 된 날 오전, 나는 친구 한 명과 갑자기 인연을 끊었다.
오후에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야 '아, 호르몬이 만든 지극히 나다운 예민함이었구나' 깨달았다.
(물론 그 친구와는 나중에 화해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꿈속에서 그 친구와 다시 손절을 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생리 예정일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눈을 뜨자마자 확신이 들었다. '지금 임테기를 해야 해!'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오래된 임테기 위로 흐릿한 두 줄이 보였다.
첫째 때보다 더 진한 줄이라 우리 부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성큼, 우리에게 두 번째 생명이 찾아왔다는 것을.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첫째 때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 왜 또 사서 고생을 하냐고.
우리 엄마조차 "네가 너무 고생해서 안 가졌으면 싶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리셨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나에겐 스스로와 약속한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 첫째 때처럼 3개월 만에 복직하는 '만행'은 저지르지 말 것.
- 최소 1년은 아이와 나, 오로지 육아와 회복에만 전념할 것.
- 남편의 육아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회사 근처로 거처를 옮길 것.
남은 60여 년의 인생에서 1년 쉰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을 가족과 나 자신에게 온전히 투자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임을 이제는 안다.
내 인생은 다시 한번 변곡점을 맞이했다.
출산 전의 나, 그리고 지금의 과도기를 지나, 온전히 우리 네 가족이 똘똘 뭉칠 그날로.
그날의 나는 지난 모든 선택에 감사하며 웃고 있을 것이다.
토요일에 임테기를 확인하고, 일요일에 남편과 어떤 성별을 원하는지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 오빠 솔직히 마음 깊이 어떤 성별이면 좋겠어?
남편 : 나는 정말 그런거 없어. 건강하기만 하면 돼.
나 : 나는 솔직히 말해도돼?
남편 : 말해봐
나 : 나는 어릴 때 언니나 동생이 있는 자매가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처음엔 태인이 생각하면 자매가 있으면 좋을거같아서 동생도 딸이었으면 좋겠다 했어.
근데 또 아들은 남자친구 같다고 하더라고. 친오빠랑 엄마랑 같이 여행다닐 때도 보면 특별히 뭐 하는게 없어도 듬직하긴 하더라? 그거 생각하면 또 아들이면 좋을거같기도 해
남편 : 결국 둘 다 좋다는거네?
나: 응. 지금은 둘 다 뭐든 다 좋아.
첫째 때처럼 아기집을 보러 가는 날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둘째라고 다를 줄 알았는데, 다음 주 수요일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더디게 가는지. 태명은 고민할 것도 없이 '성큼이'로 지었다.
성큼성큼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성큼아. 뚝딱뚝딱 아기집 예쁘게 잘 만들어두고 있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