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글을 쓰려하는 이유
나는 지금 양양에 와있다. 원래 가고 싶었던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가 있다기에 그거 하나만 보고 예약해서 양양까지 왔는데 오늘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약 취소를 당했다 (온라인 예약이 되길래 했을 뿐인데 예약을 어떻게 하셨냐는 사장님은 덤). 호텔 예약해 놔서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카페에 들어와 글을 쓰고 있는데, 운이 좋게도 이곳 또한 어마어마한 통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잘 보여서 만족하고 있다.
여행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싼 돈 들이는 만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거니와 서울에서 겪는 나의 현실이 가장 다이내믹한데 여행까지 가서 새로운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대신 가끔 이렇게 소박하게 국내로 훌쩍 떠나고는 한다.
그동안 영광, 속초, 여수로 갔는데 이 여행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전으로부터 4~5시간 거리의 호텔과 바다가 있는 곳으로 '혼자' 떠나야 한다는 것.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걸 여행이라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항상 내가 가는 지역이 전라도인지 강원도인지, 뭐가 유명하고 맛있는 지도 모르고 관광지는커녕 호텔에 꼼짝 않고 박혀있다가 다음 날 어물쩍 나와 대충 카페에 앉아있다가 집으로 복귀하는 똑같은 패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광에서는 그 유명한 굴비를 두고 롯데리아로 식사를 때웠다. 굴비는 2인부터 된다고 해서... 심지어 이번에는 양양이 속초 바로 밑인 것도 몰라서 저번에도 지나갔던 길을 또 지나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하는 이런 여행의 목적을 굳이 말하면 혼자 상념에 빠져있다가 사진이나 대충 몇 장 찍고 글이나 조금 쓰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매번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런데 이번 양양 여행만은 특별한 목표를 하나 세웠는데, 이 여행의 끝에 글 하나를 써서 모두가 볼 수 있는 SNS에 업로드하겠다는 것이다. 시간과 돈을 들여 양양까지 와놓고 '겨우' 글 하나 업로드하겠다는 볼품없는 목표가 스스로도 우습지만, 사실 내게 있어 나의 글을 보이는 것이 그렇게 ‘겨우’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옛날에는 '겨우'였는데 이제는 아니게 돼버렸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무도 보지 않을지언정 공개된 플랫폼에 내 나름의 창작 예술인 그림과 글을 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생각을 글로 써서 올리고, 영화나 전시의 리뷰를 쓰고, 한때는 그림도 꽤나 많이 그려서 올리기도 했다. 무식이 용감이라 표현하든 젊은 패기가 있다 하든 그렇게 쌓인 활동들은 나만의 작은 성취감이었고 뿌듯함이었다. 그런 활동들이 나만의 예술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31살의 내가 유튜브 편집이라는 나만의 예술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는 것은 둘째치고 (그게 속상할 일은 아니니까) 무언가로부터 겁을 먹고 그 나름의 창작 활동들을 심지어는 끊어버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그렇게 겁먹고 잠적해 버린 이유를 찾아봐야 뭐 거창한 것이 있겠는가. 무릇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항상 조심해야 할 그 무언가이고, 나 같은 실력의 예술을 공개한다는 것은 어딘가 오글거리고 볼품없는 것이기에 똥을 길바닥에 싸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스스로 꺼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됐을 때의 개인적인 상황을 봐도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은 시간이었던 것도 슬픈 사실이다. 7년 전 유튜브 편집이라는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불안정한 일을 시작하면서 그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었고, 중간에 그놈의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정신과 몸이 무너지기까지 하니 나의 창작은 ‘따위’가 돼버렸다. 창작이 없고 예술이 없으니 업로드할 것도 없고, 사회인으로서는 뭔가 자랑할 만한 건더기가 없으니 SNS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잠적하게 됐다. SNS가 없으니 직접적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늘 궁금한 인연들과 소통할 기회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인생의 이치나 진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럽게 힘들긴 해도 멈추지는 않은 덕분에 내 일에 일정 수준 적응했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나름대로 없어졌다 (아예 없어질 순 없다). 나의 일만 보고 너무 앞만 보고 살았던 세월을 지나 옆으로 시선을 돌려 아끼는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만나고 20대와는 비교도 안되게 풍부한 문화생활을 하게 됐다.
잠적을 끝내고 남에게 보이는 활동을 자그마하게 재개하기까지 10여 년 하고도 양양으로 여행 올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20대의 내가 종종 쓰던 표현처럼 다시금 ‘글뽕’ 이 조금이나마 차오르기 시작해서 온 여행이다.
그래서 이번 양양 여행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거의 하루종일 박혀있던 호텔은 생각보다 별로였고, 특기할만한 먹거리조차 (심지어 양양에서 속초까지 가서) 닭강정 하나 사 먹은 것밖에 없으니 표면적으로는 실패한 여행이 맞다. 다만 이런 실패한 여행일지라도 이번 여행은 좀 특별해서 기억에 남기려 한다. 이 여행을 오기까지의 지난했던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긍정하게 됐고 지금은 모두에게 보일 글을 쓰고 있고 내일은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발전하고 노력해야 하는 일 투성이지만 최소한 심각한 걱정거리는 없으니.
선진국일수록 예술 분야가 발전한다고 그랬던가. 개인적인 경제적 수준은 후진국이지만 마음의 여유 정도는 개발도상국 정도로는 올라왔으니 다시금 나름의 예술을 찾으려 한다.
새삼스레 나 따위가 잠적해도 아무 영향도 없는 건 알고 있다. 여전히 오글거리고 올려도 되나 싶은 생각을 수십 번 반복해도 굳이 이 글을 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런 자그마한 글로 인해 내가 놓치거나 잊은 인연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 때문이다. 나와 같은 지난한 과정을 밟은 (혹은 밟지 않은) 다른 인생들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이 글을 읽는 미상의 누군가가 내게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픈 마음이 들었다면 충분할 것이다. '지가 먼저 연락할 생각은 안 드나' 싶다면 나는 영원불멸할 겁쟁이인지라...
이제 슬슬 카페를 나와 해변에 앉아 바다도 바라보고, 대전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는 길에 목이 쉬어라 뮤지컬 노래나 열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