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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준맘 Dec 02. 2021

워너비 우리 엄마

나의 40대를 목전에 두고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가는 길,  옆자리엔 꽃다발 하나가 놓여있다. 어제 동네 꽃집에서 핑크와 살구톤으로 미리 부탁해놓은 꽃이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은은히 퍼지는 향기에 슬금슬금 눈길이 간다.


꽃이 예뻐 설레고, 향기가 좋아 설레고, 그녀에게 꽃을 안기러 가는 길이 설렌다. 손 끝 아린 겨울바람에도 내 마음은 봄꽃처럼 하늘거린다.


엄마는 항상 집에 있었다. 두 딸 남편 뒷바라지에 충실했다. 살림에 보태고자 동네 아이 몇 명에게 피아노 레슨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엔 리에서 의 온기를 지켜주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 엄마는 새로운, 아니 결혼 후 처음으로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여성회관에서 하는 붓글씨 수업이었다. 친구 따라 간 건데 붓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 한다.


엄마는 그제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무언가에 행복을 느꼈으리라. 그것이 첫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니. 같은 여자로서는 안타지만 한창 성장 나에겐 엄마의 희생이 크나큰 안정감이자 든든함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60대 중반이 된 엄마는 여전히 붓을 잡고 있다. 꾸준함이 뒷받침된 재능으로 어느덧 문인화 작가가 되어있다.


오늘은 엄마가 속해있는 협회에서 전시를 하는 날이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수상하고, 작지만 개인전도 열었던 멋진 엄마였지만

오늘은 왠지 그녀의 지나온 시간을, 꾸준히 흘려온 땀방울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고 싶다.




"언니들이 그러더라.

사십이 되면 확실히 다르다고.

몸이든 머리든, 훅 간다고 말이야."


30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요즘


나에게 일어나는 부정적인 변화를

달 후 앞자리가 달라질 나이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짚어보니 엄마의 시작은 내가 막연히 두려워하는 40대, 그것도 40대 후반이었다.

그래서인 것 같다. 

엄마의 긴 호흡이,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오늘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


그리고 깨닫는다.

부모를 인정하게 되는 건 부도 명예도 아닌 그 어떤 핑계를 대지 않는 도전, 끝내 놓지 않는 노력과 발전하는 모습이라는 것.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는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육아 하며 늘 고민했다. 경제적 자립을 하지 않는 엄마의 삶은 당당할 수 없는가 하고.

내 고민은 오늘부로 마침표를 찍는다.


엄마는 붓으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성인이 되고 엄마가 된 한 사람의 워너비가 되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가 되다고 다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어떤 것으로든 늦지 않았다.

그 무언가는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나의 워너비는 보라색을 좋아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핑크와 살구 꽃을 고른 건,  우물만 파며 긴 시간을 달려온 그녀에게 조금 더 풋풋하고 싱그러운 바람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서.


나의 워너비는 엄청난 자극제다.

몇 달간 손 놓았던 브런치에 이렇게 글을 쓰게 만들었으니.


나의 워너비 우리 엄마,

앞으로도 꽃길만 걸으시길!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자극해 주시길!


* 글 안의 '워너비'는 '닮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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