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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Mar 11. 2023

윤회를 끊자

인간에서 성인으로

고타마 싯다르타 그리고 붓다 이는 한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그 한 사람을 싯다르타 그리고 붓다 다른 사람으로 설정하고 글을 써 내려간다.

싯다르타의 친구인 고빈다 스승은 붓다였지만, 싯다르타의 스승은 붓다 이기도 했고, 카말다(창녀)이기도 했고, 상인(카마스바미), 뱃사공(바수데바)이기도 했고, 강이기도 했다.

아침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어서 인지, 내가 잘 읽지 않는 장르여서 인지 책에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가치가자 2023년 1분기 첫 책, 첫 서평이라는 부담감이 더해져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을 듯하다.

오늘 저녁 독서모임 이날 아침이 되어서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책은 삼회독 하였으나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내 느낌이었을까? 많은 사람의 인생 책이라 불리는 이유도 아마 이 이유에서 일 것 같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누구에겐 고빈다에서, 누구에겐 창녀에서, 누구에겐 싯다르타에서, 누구에겐 강에서 배운 부분들이 모두 다 다르게 마음의 감동을 일으켰을 것 같다. 마흔의 내가, 오십의 내가, 육십의 내가 읽을 때마다 다른 울림이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그냥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p32

윤회를 믿는가? 전생은 믿는가? 불교에서의 가르침은 팔정도와 사성제로 윤회를 끊어 내는 것이지만, 인연을 이야기하며 자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십여 년간 불교 사상을 가르치면서 이 오묘한 진리를 알고는 있지만 말로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불교사상과 불교 이론이 참 맞는 말이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헤르만 헤세는 이 윤회를 불교식으로 풀지 않았고 우리의 인생으로 풀었다.

싯다르타는 멈춰 섰다. 그는 더 잘 듣기 위해서 물 위로 몸을 굽혔다. 그리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 속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물에 비친 얼굴에는 자신을 상기시키는 무엇, 잊어버렸던 무엇인가가 있었다. 싯다르타는 곰곰이 생각해서 그것을 알아냈다. 그 얼굴은 그가 예전에 알았고, 사랑했고, 두려워하기도 했던 어떤 사람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중략   즉 이러한 반복, 숙명적인 윤회 속에서 이렇게 빙빙 도는 것은 하나의 희극, 기이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p179~180

 돌고 도는 윤회는 전생의 윤회를 아버지와 아들, 아들이 자라서 다시 아버지가 되어 돌고 도는 것을 헤르만 헤세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부모의 이야기는 성인 군자의 모습과 닮았고, 부모에게 받은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은 그냥 하나의 인간에 불가한 것 같다. 두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내면의 아이가 두 아이들만큼의 나이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나이기에, 나는 그 성장에 책이 스승으로 두고 계속 읽고,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라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루하루 나의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것 하나 스승이 아닌 것이 없다. 싯다르타는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나에게 와닿았던 가장 큰 스승은 자연이었다.

이 물을 사랑하라!
그 곁에 머물라!
이 강물로부터 배워라!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p140


강물은 흐르고 흘렀고, 끊임없이 흘러갔지만 언제나 거기 있고, 항상 똑같았지만 매 순간 새로웠다는 싯다르타의 말처럼 가만히 앉아서 강을 통해 배우는 싯다르타처럼 오늘 함께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오늘 하루 배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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