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香千里行 人德萬年薰(화향천리행 인덕만년훈)꽃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덕은 만년 동안 향기롭다.라는 말을 저는 예전 직장을 떠나올 때 어른에게 들었던 덕담입니다.
그 덕담을 들었던 그곳은,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곳이었고,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기억보다는 가슴 아픈 기억들이 더 많이 있었던 곳입니다. 저의 인성이 다듬어지지 못해서,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 있었겠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학생들과는 너무나 사이가 좋았고, 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 저를 너무 잘 따라주는 참 고마웠던 시절이었지만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민폐 아닌 민폐를 였을 수도, 그냥 저만 열심히 한 것인데,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가는 경쟁 사회라고 생각하는 사람 눈에는 너무 나대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지요.
직장 안에서 인간관계가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제 삶에서 제일 중요했던 것은 직장이었고,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옆 자리의 동료와 관계가 좋지 않으니, 그 공간의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으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힘이 드니, 다른 곳에서 인간관계를 찾게 되더군요. 정말 많이 선 봤습니다. 그 많이 봤던 선 중에서 신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저의 신랑은 참 볼 품이 없었습니다. 돈도 없고, 주변 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이제 슬슬 하늘로 날아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는 웅크리고 있던 용이었음을 저의 눈에는 보였습니다. 저 역시 그 시절 진흙 속의 진주였거든요. 다른 동료들이 보기에는 억척스러워 보였을 것입니다. 차를 사서 타고 다닐 수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다녔고, 명품 가방 할부로 살 수 있었지만 명품 가방 하나 없던 제가 유별나 보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그때 그것이 최선이었고, 구구절절 저의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저의 아픔을 보이고 동정을 얻고 싶지 않았던 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저였기 때문에 인생의 바닥을 쳐본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제 신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 본 첫자리에서 붕어빵 장사한 이야기, 택배를 했던 시절 이야기를 듣는데, 아!!! 이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정말로 그 시절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결혼으로 눈을 돌리고 관심을 돌렸던 것 같습니다. 항상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을 정말 열심히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인생은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의미가 있겠지요. 그 시절이 없었다면 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서 저는 제가 하던 일을 그냥 묵묵히 했습니다. 봄방학마다 아이들의 자발적인 신청을 받아 집단 상담을 진행했었습니다. 그냥 재능기부의 한 형태였고,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 평가하든지 저는 그저 저의 길을 묵묵히 갔었습니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나의 시간을 내어놓으니 그저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근데 그렇게 돈을 받지 않고, 온전히 내 의지대로 행동할 때 그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행동 임을 체험으로 알기에, 아이들이 변화할 때 보람을 느끼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성장하기에 저는 그 일을 소명처럼 합니다. 그것을 지금은 [선택]이라는 이름을 붙여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 직장을 떠나올 때 제일 큰 어르신이 저에게 해 주셨던 말이 花香千里行 人德萬年薰(화향천리행 인덕만년훈)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저의 힘듦을 알고 계셨기에, 그때 저에게 해주신 이 말은 지금까지 묵묵히 저의 길을 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3월부터 휴직을 내어놓은 상황이고, 모든 것 내려놓고 편히 지내고 싶지만 花香千里行 人德萬年薰
(화향천리행 인덕만년훈)을 되뇌며 뒷모습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기에, 지금 저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나의 길을 돌아봤을 때 뒷모습이 아름다웠던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만년 동안 남아있을 저의 덕! 탁월함으로 남기를 소망하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