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복음을 서술하는 방식
지금껏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법들이 개발되어 왔다. 예를 들어, 원문으로 성경을 읽는다든지, 연대기 순으로 성경을 읽는다든지, 성경 외 역사적 기록을 참고하여 읽는다든지, 성경에 나오는 인물/지명 등을 마인드맵으로 만들어 이해하는 것 등이다. 성경을 보다 체계화하여 이해하고자, 많은 교회와 모임에서 성경을 읽고 쓰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공부한다. 서점의 기독교 코너에는 어떻게 하면 성경이 잘 읽어질 수 있는지 기술된 서적들도 많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고 내용이 잘 와닿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 할 때 몇 가지 언어(화법)를 사용하는데, 모든 언어(화법)를 통해 성경이 예수그리스도만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을 보면 대조를 이루며 쌍을 이루고 있는 단어들이 많다. '천국 ↔ 지옥', '창조주 ↔ 피조물', '하나님 ↔ 인간', '빛 ↔ 어둠', '선 ↔ 악', '의 ↔ 죄', '영 ↔ 육체', '영생, 생명, 부활 ↔ 사망', '영원한 것 ↔ 썩어질 것', '새것 ↔ 이전(옛) 것', '보이지 않는 것 ↔ 보이는 것', '하늘 ↔ 땅', '하나님의 자녀 ↔ 마귀의 자식'과 같은 반대 개념 단어의 쌍들이 그 예이다. 반대되는 개념의 단어들이 서로 대조되어 나타나는 것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매우 명확하다는 것이며, 성경은 이러한 단어들을 통해 두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한다. 성경은 위 대조관계의 단어들을 통해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가 서로 충돌하는 구조이며, 서로 대조적이며 적대적인 관계에 있음(갈라디아서 5:17)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전 상태와 새로운 상태를 서로 비교하여 복음을 설명한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썩어질 씨 ↔ 썩지 아니할 씨', '이전 것 ↔ 새 것(새로운 피조물)', '백성이 아님(진노의 자녀) ↔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서로 대조를 이루며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고, 눈으로 보고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세계는 육의 세계이다. 육의 세계는 질병과 아픔과 고통이 있고 사망이 있다. 온갖 범죄가 가득하고 분노와 슬픔이 있다. 이 땅, 이 세상은 진동하고 무너지며 뜨거움에 풀어지고 녹아내린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이러한 육의 세계를 몸소 체험한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 특히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함께 하는 나라에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다(요한계시록 21:4).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온갖 부정과 부패가 끊이질 않으나,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완벽한 상태에 있다(요한복음 17, 마태복음 16:18, 에베소서 1:22,23).
성경은 이렇게 영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복음에 관하여 육의 세계와 대조하여 묘사한다.
육의 세계는 그러한데, 영의 세계(하나님 나라)는 이러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성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육의 세계에 있는 기존 것을 부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거짓도 후회도 없는, 사람과 인생이 아닌 분으로, 인간을 부정하여 설명한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땅에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닌, 사망과 애통과 곡함과 아픈 것이 없는 곳으로, 이 세상의 특성을 부정하여 설명한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
베드로후서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사람 개개인의 뜻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닌,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것으로, 사람의 뜻을 부정하여 설명한다.
성경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에 대해,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근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는 평안으로, 세상 속 평안을 부정하여 설명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및 그와 연합한 그리스도인에 대해,
요한복음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속한 것으로, 기존의 소속을 부정하여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부활을 설명하시기 위해,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묻힌 후 3일이 지나 썩은 냄새가 남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덤 문을 열고 나오게 하는 사건을 보이셨다(요한복음 11:37-44). 부활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는 없는 개념이며, 모든 창조물은 그 명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에 의하면, '부활'이라는 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같지 않은 것이 된다. 이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닌 영으로서의 부활로이다(베드로전서 3:18).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실 때 닫힌 문을 통과함으로(요한복음 20:19),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영으로서의 존재는 시간과 공간에 속하지 않은, 이 세상의 육체가 아님을 보이셨다.
성경은 이렇게 영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복음을 육의 세계를 부정하여 묘사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조'의 언어와 같은 맥락이다.
영의 세계(하나님 나라)는 육의 세계가 아닌 것
성경을 바라보는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너무 배타적이고 극단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지옥에 간다", "아무리 악한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천국 간다"와 같은 말들이 그 예다. 실은 성경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반적으로 알고들 있는 생각보다 더 극단적이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이 모든 죄에 대한 결론은 모두 사망이다. 성경에서는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모든 사람이 죄인' '죄의 삯은 사망' 등의 표현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진리/생명이라는 의미는 어떠한가?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만이 길이라는 표현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거북하다.
성경 말씀을 하나라도 어기면 모두 범한 것이 된다는 말씀은 어떠한가?
야고보서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열심히 성경 말씀에 순종해보려 하는 자들에게는 힘 빠지게 하는 말씀이다.
성경은 범죄하게 하는 손과 발에 대해서 찍어내 버리고 범죄하게 하는 눈에 대해 빼내 버리라고 한다(마태복음 18:8,9, 마가복음 9:43,45,47).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가 되고(요한일서 3:15),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자가 된다(마태복음 5:28).
성경의 표현뿐 아니라, 성경이 맺는 결론들은 상당히 극단적이다. 인간의 시각에서 볼 때 이성적으로 납득이 갈 만한 말씀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경 말씀이 극단적이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이럴 수도 있다거나 저럴 수도 있다거나 하는 상황 논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간이라는 것이 없고 서로 섞이거나 절대 타협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대조', '부정'의 언어와 같이, 위 말씀들은 명확하고 극단적으로 복음을 드러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려운 개념을 설명할 때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를 사용한다. 그런데, 성경에서의 비유는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도 많은 경우 비유로 설명하고,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제자들조차도 비유들을 이해하지 못했다(요한복음 6:60).
마태복음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마가복음 4: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하지 않고, 그 뜻을 제자들에게만 설명하셨나?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성경의 비유는 진리를 감추고 아무나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마태복음 13:11-13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가복음 4:11-12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누가복음 8:9-10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위 말씀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고 난 후,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어찌 보면 다소 충격적이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으니. 비유는 곧 성경 말씀을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일종의 장치로서, 성경 말씀은 누구나 보고 들을 수는 있어도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셈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공통적인 궁금증을 가진다.
그럼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나한테는 허락됐는가?
누구나 '나'부터 찾는다. 그렇지 않을 사람이 없다. 누구나 '나'를 가장 사랑한다. 이러한 태생적인 속성 때문에, 성경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비유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와 그 복음에 관한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의도대로 비유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이가 적다.
누가복음 24:27,44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비유를 포함하여, 성경 말씀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해도,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결론을 낸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명령으로 되어있어, 그 명령에 '순종'하고자, 성경 말씀의 의도와 뜻은 모른 채 '그래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이 자기 자신만 들여다보고 있다.
보통 '비밀'이라면 뭔가 엄청난 것이 있는 줄로 아는데, '엄청난 것'의 정의는 제각각일지 몰라도, 성경이 말하는 이 비밀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새서 2:2-3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정리하면, 성경은 비유의 언어를 통해 천국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제한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허락된 자에게만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사야 6:9-10)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5:26)
성경의 문장은 매우 단순하다. 문장 대부분은 ① '하더라'/'하니라' ② '하라'/'하지 말라' ③ '되리라'/'하리라'로 끝난다. ①은 단순 서술, ②는 명령, ③은 약속이다. 보통 성경을 읽을 때, 단순 서술로 끝나는 말씀은 '그런가(그랬나) 보다' 하고 여긴다. 그리고 명령만 있는 말씀이나 명령과 약속이 결합돼 있는 말씀을 더욱 주목해서 본다. 특히 명령에 해당하는 말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해야 한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게 한다.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레위기 25:18
너희는 내 규례를 행하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위 말씀들은 명령과 약속이 결합된 말씀들이다. 공통적으로 '~하라 그리하면 하리라/되리라' 구조로 돼있다. 이 말씀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 살려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에 잘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공급받으려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와 같은 식으로 1차 결론을 내린다. 그다음은 이를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순종'하기 위해 삶 속에서 무언가를 '적용'을 한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한 통 해야겠다', '오늘 순종할 말씀을 정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겠다', '내 것보다 하나님 것?을 먼저 생각하자', '기도하며 손품 발품을 열심히 팔자'와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낸다. 그리고는 내가 한 일에 대한 일종의 보상을 기대한다. 내가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어떠한 복이든 주셔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한 결과가 주어졌을 때는 자신이 '순종'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 여기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주어졌을 때는 자신의 '순종', '충심',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성경 해석 및 이 같은 신앙생활이 뭐가 잘못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가치관은 보통 자신(육체)의 유익을 위해 성경말씀을 이용하게 한다. 기타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스스로 무종교라 여기는 사람들도, 자신을 위해서라면 절대자로부터 어떤 보상심리를 기대하고 '선한 일'을 행한다. '지극정성'과 '치성'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인본주의의 한 형태이다. 인간의 힘으로,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하여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된다는 사상이다. 즉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주인이 되겠다는 가치관이 죄의 본질이자 시작이다.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사고를 경계함과 동시에 최대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한다. 일단 성경 말씀대로, 명령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이며, 또 성경 말씀을 지키면 그에 맞게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님 말씀에 '내가' '순종'하겠다고 하는 가치관으로, 이러한 개념으로는 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결론은 '나', 즉, 육체로 끝난다.
갈라디아서 3:3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보통 성경에 나오는 모든 명령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그 모든 명령을 순종해야 하는 주체는 인간이라 여긴다. 그러나 여기서 많은 이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 그 모든 명령을 이미 순종하신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것은, 모든 하나님의 명령, 즉 율법의 요구를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뜻이다(요한복음 19:30).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히브리서 10:6-10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갈라디아서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인간이 지킬 수 있는 말씀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스스로 하나님 앞에 '이것도 지켰고 저것도 지켰다'는 생각이 든다면, 필히 스스로 만들어낸 수준의 '순종'이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세기 17:1)는 명령은 어느 누구도 지켜낼 수 없는 말씀이다. 그 완전한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했고 모든 것을 이루셨다. 그래서 그의 공로를 통해서만이 온전한 순종으로써 믿는 그리스도인들 것이 된다. 즉, 인간에게 '지키라'라고 하신 것처럼 쓰여있는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만 온전/완전하게 순종할 수 있는 명령이므로, 순종의 주체는 곧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분이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신 분이다.
에스겔 20:25-26
또 내가 그들에게 선하지 못한 율례와 능히 지키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을 멸망하게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라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즉, 하나님은 아무도 순종할 수 없는 수준의 율법을 우리한테 주셔 놓고, 모든 사람을 죄 안에 가두어 버림으로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여, 우리로 하여금 모든 명령에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보게 하시는 것이다.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만들어버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뭘 해야 하냐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려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보자.
에스겔 36:25-28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율례와 규례를 모두 행한 자가 되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그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가 된다. 앞에서 언급한 명령들과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며, 명령과 약속의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에베소서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요한복음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자기 백성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지킨 자가 된다. 즉, 이미 순종한 자가 된다.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이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른다. 성경은 명령과 약속의 언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전한다. 여기에 '나'가 설 자리는 없다. '나'는 하나님 앞에 철저히 죽은 자로(갈라디아서 2:20), 없는 자로 여김 받고 예수 그리스도만 높여지는 것이 성경의 의도이자 목적이다. 만약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 말씀을 접하고 무언가 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성령께서 주신 마음에 의해 그냥 하는 것일 뿐이지, 그것을 했다고 하나님 앞에 순종했다고 여기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 낸 '순종'일 뿐이다. 그렇게 여기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는 없고 '나'만 드러나게 된다. 어떤 것을 한다 해도 내가 행한 것이 없는 죄인이라 고백되는 것이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내뱉는 고백이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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