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과 자기사랑의 상관관계]
세상의 모든것은 과정중에 있다. 우주는 가속으로 팽창중에 있고, 우리는 살아가고 또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 지구는 자전중이고,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중이며, 태양은 또 다시 무엇을 중심으로 돌고있다.
우리가 과정중에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모든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완벽주의에서 한 숨 돌리고 나면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데, 이러한 여유속에서 자신을 마주함으로써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본인의 모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과정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안아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본인의 불완정성을 허락하는 그 순간, 마음속에 인내심이라는 것이 자리잡을 공간이 생긴다.
인내심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정의부터 시작하자면, 인내심이란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마음’이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 어렵다는 것 자체는 굳이 말로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있다. 말그대로 괴롭고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어렵고 왜 어려운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그 과정을 위해서 인내심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자.
참는다는 것과 견디는 것은 무엇인가?
‘참다’의 사전적인 정의는 감정 혹은 충동 따위를 를 억누르고 견디다, 억누르고 다스린다는 뜻이고, ‘견디다’의 사전적인 정의는 ‘무엇에 대하여 본디 자신의 상태나 성질을 유지한다’는 뜻을 가진다.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견디는 것이던 참는 것이던 그 주체는 우리 내면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의들을 가지고 인내심이란 단어를 다시 들여다본다면, 인내심은 두가지 요소로 떨어진다.
1.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억누르고 다스리며(참다), 2. 본인의 상태를 유지하는(견디다) 마음이다.
그리고 나의 생각에는 이 두가지 요소들이 각각 정확히 인내심을 갖기 어렵게 만들고, 발휘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인내심을 갖기 어려운 첫번째 이유 - 공간 만들기.
도끼로 나무를 패려면 도끼를 손에 쥐어야하고, 총으로 날아가는 새를 쏘려면 총을 잡아야한다.
무엇인가를 잡으려면 지금 나의 손에 있는 것을 놓아야하고, 그것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억누르고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의 마음속에서 자존심과 완벽주의를 내려놓아야 하고, 괴로움이나 어려움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인내심을 갖추기 어려운 진짜 이유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겪는 완벽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매우 도전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인내심을 갖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완전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허락해야 한다.
인내심을 갖기 어려운 두번째 이유 - 억누르고 다스리기.
우리가 불완정성 속에 우리를 집어던졌고,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제부터 진짜 어려움이 시작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편하고 안정적인 것을 선호한다. 그 종류가 무엇이 되었건, 괴로움과 어려움은 우리에게 코딩되어 있는 일종의 구심점과 반대되는 지점이다. 즉, 괴로움과 어려움을 억누르고 다스린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 익숙한 구심점을 향해 작용하는 이끌림에 거스르는 것이다. 이 반작용이 인내심을 갖기 어려운 두번째 이유이다.
인내심의 발휘 - 거절하기.
인내심의 발휘란 결국 견디는 것 다른 말로는 ,위 정의에 따르면,괴로움이나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상태나 성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들어가서 생각해보자.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상태나 성질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을 허락하지 않고 거절함을 뜻한다. 고로,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은 고난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유혹에 흔들리고, 고통에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유혹 속에서도 나 자신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고통속에서도 나의 뜻을 존중하는 자기사랑이야 말로 인내심을 발휘하는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인내심은 결국 고난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게 하는 자기사랑의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