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3
김지훈 씨는 만으로 마흔 한살이다. 결혼한지는 10년이 훌쩍 넘었고,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1학년 딸을 두었다. 동갑내기 아내 정다현 씨, 아들 김민준 군, 딸 김서연 양과 함께 서울 근교 신도시의 34평 아파트에 반전세로 거주한다. 정다현 씨는 공공기관에 근무하고, 김지훈 씨는 대기업에 다니다 초기 스타트업으로 이직하여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주말에도 간혹 회사에 나가는 날이 있고, 평일이면 밤늦게까지 야근한다. 양가 부모님 모두 지방에 살고 있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부부가 온전히 책임진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단지 내 상가의 학원들을 순례하다 엄마나 아빠 중 먼저 퇴근하는 쪽과 저녁을 먹는다.
김지훈 씨에게 이상 증세가 처음 나타난 것은 12월 23일이었다. 팀의 막내 이서진 씨가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이 올해 마지막 스프린트 회고였기 때문이다. 회고를 위한 마지막 회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내년도 핵심 과제는 AI 기반 업무 자동화 솔루션을 도입하여.."
김지훈 씨가 장표를 띄우고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말을 잊은 듯 멈춰 섰다. 화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동료들의 눈빛만이 총구처럼 그를 향하고 있었다.
"업무 자동화? 그거 사람 갈아 넣어서 데이터 뽑고, 결국엔 그 사람부터 잘라내겠다는 소리잖아요. 우리가 호구입니까? 매년 새로운 걸 하라고 하면서 왜 자꾸 사람은 내보내는 거죠?"
회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10여명의 직원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생각했다. 맨 앞줄에 앉은 김영민 본부장은 놀란 표정으로 김지훈 씨를 응시했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옆에 앉아 있던 이서진 씨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김지훈 씨는 마치 귀가 먹은 사람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몸이 굳은 듯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내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고, 회의실의 공기가 부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잠깐..."
김지훈 씨는 겨우 그 한마디를 내뱉고 회의실을 나와 화장실로 달려갔다. 세면대 앞에 손을 짚고 숨을 쉬려고 애를 썼지만 가슴이 조여 오는 통증과 함께 현기증이 일었다. 거울 속 자신은 창백한 얼굴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 상태로 있다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 천천히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차가운 물이 뺨을 타고 흐르며 겨우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그날 오후, 이서진 씨의 슬랙은 쉴 새 없이 울렸다. 다른 팀 사람들에게서 온 DM이었다.
서진님, 회의 때 무슨 일 있었어요? 김 팀장님 완전 하얗게 질려서 나오시던데..
방금 대표님이랑 본부장님이 심각하게 얘기하던데, 김 팀장님 때문인가?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소문이 언제나 실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이서진 씨는 낮의 일을 떠올렸다. 냉소적인 말투와 텅 빈 눈빛. 분명 평소의 팀장님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내 자판을 두드렸다.
아, 그냥 연말이라 피곤하셔서 그런가 봐요. 근데 오늘 좀 평소랑 다르긴 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