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븐 Sep 05. 2021

삼국지라는 인생열전

[인생의중간즘] 그때 읽었어야했던 고전 #1


고등학교 시절에 우영이라는 같은 반 동급생 친구가 있었다. 교실 창가 반대쪽 뒷 구석에 앉던 우영이는 늘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삼국지를 읽었다. 당시 우리들의 가방은 엄청난 무게였는데, 우영이는 늘 삼국지를 들고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영어 수업이든, 수학 수업이든 본인 내킬 때마다 삼국지를 펼쳐서 몰두하며 읽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읽느냐, 도대체 몇 번이나 정독한 거냐 질문하면 ‘한 4번 봤어, 그래도 재미있어’라고 하며 쑥스러워하며 웃곤 했다. 지금 그런 책을 읽을 때냐 하며 친한 동급생들은 잔소리도 하고, 삼국지가 밥 먹여주냐 약 올리기도 했지만 우영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하나 있는데, 학교에서 과외 활동 겸 틀어준 영화를 볼 때도 우영이는 구석에서 삼국지를 읽고 있었다. 영화를 보느니 삼국지가 더 좋으니 이걸 즐기겠다는 모습이었는데 나는 그런 그의 일관된 삼국지 사랑이 신기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경험한 삼국지는 TV 만화로 본 유비, 관우, 장비의 꽃청년 히어로 만화였고, 스토리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중년의 아저씨들이나 즐기는 책을 붙잡고 탐독하는 그는 나름 신비롭게 느껴졌지만 반이 갈라진 후에는 자연스럽게 잊혀진 친구였다.


그러다 인생의 중간 즈음에 삼국지를 만났다. 마흔 언저리에서 만난 삼국지는 바로 그 우영이라는 친구를 바로 떠올리게 했다. 당시 수많은 같은 반 동급생 중 하나였는데, 삼국지 하나만으로 생생한 추억 소환이었다. 동양 고전에 관심이 생겨 고전 책을 찾아보면서 자오위핑 교수나 이중텐 교수의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분들이 다룬 삼국지의 책들을 읽다 보니, 그때 그 시대와 스토리, 사람에 대한 깊이에 훅 빠져들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유튜브 <써에이스> 채널을 보게 되면서 본격적인 삼국지 탐독은 가속되었다. 다양한 매체와 풍문으로 알려진 연의보다는 정사가 궁금해져 가던 시기였다. <써에이스> 채널에서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연의와 팩트를 체크해 주고, 직접 그린 인물 그림과 지형 설명으로 스토리를 풀어주니 그 시대를 삶기 위해 몸부림쳤던 인물들의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었다. 유비, 조조, 손권만 알고 있었는데, 각 국의 핵심 인물들 옆에서 뜻을 펼친 많은 책사들과 장군, 인물들을 알게 되었다. 난세였으며 정말 다양한 특징과 역할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대의를 위한 희생했던 인물들부터 자신의 야망, 출세를 위해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인물들, 교묘한 언변과 정교한 처세로 살다가 참혹하게 죽은 인물들 등 한 사람 한 사람마다의 사연과 관계의 역학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젠 우영이가 삼국지를 탐독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겠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이러한 인생의 여러 모습들과 선택들, 그리고 결과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구나. 어떻게 보면 우영이는 인생의 황금기에 정말 소중한 공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우영이에게는 '네가 공부하는 이런 내용은 결코 인생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라고 조조가 옆에서 속삭였을 수도 있겠다.


경영학에서 가장 효과적인 학습은 아마도 케이스 스터디 일 것이다. 유명 대학의 MBA 프로그램도 케이스를 통한 연구가 활발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통찰들을 기업마다 조직-사업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부분이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세상이다. 다양한 인물들을 <케이스 스터디> 차원으로 본다면, 삼국지는 정말 훌륭한 인생 열전이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고대 시대와 전쟁의 상황이 현재와는 완연히 다르지만, 각자의 주어진 태생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치밀하게 살아온 인물들과 크고 원대한 뜻을 이루고자 결의를 다지고 함께 하면서도 이익을 위해 변하는 관계들, 험난한 상황 속에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다양한 리더십들, 그리고 무엇보다 급변했던 각국의 변화 속에서의 인물들의 (의사) 결정들과 행동들을 케이스 스터디하면서 미흡한 가장/샐러던트로서의 삶에 지속적인 지혜를 주고 있다. 특히 배움이 약한 나에겐 옆에 두고 꾸준히 봐야 할 <인생 열전>인 게다.


돌아보니 그때 우영이에게 깊이 있게 삼국지를 물어보고 소개를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삼국지가 인피니티 틀렛은 아니지만, 방황 많았던 나의 20대에 조금은 바른 방향으로의 케이스 스터디를   있도록 도와주었을  같다지금 그 친구는 무얼 하고 있을까.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 인생의 빅픽쳐 차원으로 봤을 때 삼국지는 필히 우영이의 마음과 생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줄로 믿는다. 그리고 지금도 곁에 두고 읽고 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아직 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