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간즘] 내 영혼을 위한 스멜링 솔트
직장 선배가 며칠 전부터 저녁에 따로 만나자고 불렀다.
'웬일이지? 요즘 따로 얘기할만한 이슈는 없었는데...'
보통 오래 함께 일한 동료 3~4명이 같이 보곤 하는데 따로 보자고 하니, 먼가 있다는 기류가 느껴졌다.
회사 인근 호프집에 들어가서 맥주와 안주를 주문한 선배는,
맥주가 나오자마자 쭉 들이키더니 바로 할 얘기를 풀어낸다.
"너 일하는 것 보면 심각해... 내가 후배들에게 쪽 팔릴 정도야...
내년엔... 포지션을 좀 바꿔보는 게 어때..."
잠시 숨을 고른 후 선배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에 대해 느꼈던 부분을
이런저런 시각으로 쭉쭉 얘기를 쏟아낸다.
'아... 갑자기 이게 먼 말 이래....'
난 속으로 무척 당황했다.
그리고 내가 일터에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꼰대의 모습을 예로 들어가며
일종의 조언을 듣기 시작했는데 20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정말 배가 고팠다.
선배가 주문한 모둠 소시지 세트를 5분 만에 다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얘기를 듣는 동안 소시지 하나도 제대로 먹질 못했다.
앉아 있는 좌석도 정말 가시 방석이었다. 정말 빨리 일어나서 집에 가고 싶었다.
선배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 대화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 즉,
직장 동료들에게 역량이 없는, 함께 하기에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피드백에 빨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후로 나는 정말 깊은 슬럼프에 빠진 것 같다.
나름 오랜 기간 일하면서 여러 슬럼프를 겪어 봤지만,
이번 일은 마음의 상처보다는 영혼의 상처에 가까웠다.
일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고, 프로젝트의 다양한 문제들이 더욱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다.
일과 연계된 사람들이 모두 나를 불편한 시각으로 보는 것 같고,
내가 어떠한 의견이나 추진 사항에 대한 계획을 얘기하면
뒤에서 비웃는 듯한 망상이 나의 마음을 때렸다.
슬럼프가 극에 달했을 때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사람들이 정말 나를 제대로 아는 게 맞나?'
태연한 척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나의 망가진 마음을 보고,
빨리 떨치고 회복하라는 위로와 격려도 받았다.
너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럼프의 깊이는 깊었다.
나름 빠른 회복을 위해 이전에 의미 깊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서 읽어보고,
나의 상황과 비슷한 글들도 찾아보았지만 더뎠다.
우여곡절 속에 프로젝트는 잘 끝났지만 결코 내가 이끌었다는 마음은 없었다.
적극적인 TF팀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었고,
운도 잘 따라 주어 문제 되지 않게 마무리된 것이지 결코 내 역할은 미비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비 오는 날 도로 위에 머리를 정신없이 머리를 두드리는 비를 맞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냥 납작 엎드린 개구리였다.
마음속엔
'이러다가 차에 깔려 죽는데....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말 그대로 슬럼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정지 상태.... 그것이었다.
이후로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은 없었다.
그냥 계속 일은 진행되었다.
다행히 달려왔던 일에 대한 가속도가 있으니 남의 시선을 염두하지 않고도 일에 몰입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뚜렷한 회복의 느낌도, 회복을 추구하는 마음도 약해서 그런지
동료들에게 적극적이지 않는 나의 태도가 지속 거슬렸다.
동료들과 짧은 저녁 식사를 하고 귀가할 때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문득 좀 걷고 싶었다.
그래서 집 쪽 방향으로 툭툭 걷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마음은 홀가분했다. 찬바람이 몸을 시큰하게 했지만 견딜만했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어느덧 한 시간을 걷고 있었다.
걷다 보니 몸도 뜨거워지고 길 주위의 여러 가지 사인이나 가게 내부,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복한 사람들과 따뜻한 저녁을 하는 사람들,
지인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들,
그들을 손님으로 맞이해 열심히 메뉴를 준비하는 사람들,
영업시간이 끝나 자리를 정리 정돈하는 사람들.
이런 것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지나가다 보니
그 자리와 그 사람들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따뜻해 보였다.
대화가 들리는 것도 아니었고,
걷는 중에 특정한 메시지를 줄만한 모멘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걷는 것 자체가 사람들과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를 생각하게 하고,
나에게 필요한 의미와 메시지를 자동으로 찾고 있구나를 느꼈다.
'누군가의 존재로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무언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구나'
'일하다 보면 못할 수도 있는데 뭘 그리 심각하냐. 그냥 또 잘하려고 하면 되지..'
'지쳤다 느껴지면 잠시 멈춰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내가 멈춰도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함께 해 왔는 걸...'
남의 시선과 평가에 갇혀 나 자체, 존재로서의 의미를 잊었던 나에게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스며들어왔다.
걷다 보니 어느덧 우리 동네다.
이때 느낀 마음이 나에겐 스멜링 솔트가 된 것 같다.
아니 걸으면서 보고, 생각하고 환기했던 게 스멜링 솔트가 된 것 같다.
홀로 걸으며 존재적 관점에서 나의 상황을 돌아보니
내가 깊은 슬럼프에 빠진 것은 남의 평가, 시선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증오하는 행태를 내가 자행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증오하는 마음을 나를 향해 화살 쏜 것이다.
이제는 회복된 나의 영혼에 간혹 홀로 걸어보는 시간을 주고자 한다.
뛰는 것도 좋겠다. 빠르진 않아도 조금은 길게 뛰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걷다 보면, 뛰다 보면 멈출 수도 있다.
실망할 것이 없다. 스포츠가 아니니까.
무엇이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나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찾아보면
스멜링 솔트는 맡게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