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다리 김밥 Oct 12. 2024

백수는 어떻게 일하는가

방구석 동양철학

요즘 내가 꽤 폭력적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장강명 작가는 청소가 남성적인 작업이라면서 집 안 구석구석을 정복해 가며 먼지를 쓸어버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내게는 특히 청소야말로 매우 폭력적인 작업으로 느껴지며,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나의 남성성이 강화되는 것 같다. 청소는 예술보다는 공학에, 이해나 교감보다는 정복과 통치에 가깝다.
나는 방바닥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방바닥과 소통하지는 않는다. 나는 방바닥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지만(먼지로 몸을 덮어 유적이 되고자 한다), 그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을 밀어내고 인공의 세계를 유지한다. 나의 질서를 강요한다. 먼지가 쌓인다. 쓸어버린다. 얼룩이 진다. 제거한다.

                                                                                            - 장강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3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일하는 방식은 하나였다. 최종 성과물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이를 세부 성과물들로 나누고 필요한 작업 단계를 정의한다. 수립된 계획을 하나씩 실행하고 정복해 나가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Backcasting(역투영법 혹은 역산적 계획법)': 미래의 바람직한 상태를 설정하고, 그 상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기법

'분할 정복(Divide and conquer)': 한 번에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작은 문제로 분할하여,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법

'Reverse engineering(역공학)': 성과물(제품이나 시스템)을 분해하여 미지의 설계를 파악하는 과정으로, 성과물을 구성하는 하위 부품을 추출하는 방법


은퇴해서 '삼식이'가 된 나는 설거지를 담당한다. 설거지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지만, 내가 일하는 방식은 회사 프로젝트에서 하던 방식과 비슷하다. 분할 정복이다. 급할 때는 '해치운다'는 느낌으로 한다. 물론 시간이 많을 때는 느긋하게 한다. 틱낫한 스님은 설거지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서도 마음챙김 수행을 실천하라고 했다. 설거지할 때는 설거지를 한다. 현재 순간에 집중하며 마음을 고요히 한다.

Thich Nhat Hanh frequently emphasized the practice of mindfulness in everyday activities, including washing dishes. He taught that dishwashing is not just a task to rush through but an opportunity for mindfulness. In one of his well-known reflections, he explains that if you're only thinking about finishing the dishes so you can enjoy a cup of tea, you're not fully present. Instead, "wash the dishes just to wash the dishes"—by being fully engaged in the moment, you can realize the miracle of life through the simplicity of the task. Every second, even while doing chores, is sacred when performed with mindfulnes

                                                               - Thích Nhất Hanh, “Washing Dishes”, sevengoodthings.com


내가 참여하고 있는 시민대학 글쓰기 수업에서 문집을 내기로 했다.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내가 '반장'이 되었다. 반장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았다. 두 달 뒤에 문집을 출간하고 쫑파티를 한다는 목표가 수립되었다. 반장인 나는 점차 회사에서 일하던 습성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우선 문집을 여러 개의 미니북으로 나누고 각자 맡은 미니북을 완성하도록 독려했다. 미니북을 풀어헤쳐 합본으로 만들면 문집이 완성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분할 정복이라는 것이 상당히 폭력적인 것이어서 여러 명이 함께 할 경우, 감정 상하는 일이 벌어진다. 내가 문집 만들기 반장이 되자, 폭력적으로 뭔가를 해치우는 일이 발생해 버렸다. 역할놀이에 빠져들자, 내재해 있던 폭력적으로 일하던 습성이 드러났다.


아, 느슨한 모임에서 '책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하려고 할 때 어떻게 일하는 게 옳았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정신을 차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드로 돌아왔다. 내가 '무위'로 일하는 법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에만 몰두해서 급하게 일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손님을 대접하는 그런 마음으로 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속죄하는 중이다.


성과 달성에만 몰두하면 과정의 소중함이 무시된다. 과정에는 어린아이같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우치려는 마음이 들어있다. 너무 효율성을 강조하다 보면, '놀이성'을 놓치게 된다. 백수인 내가 회복해야 할 것은 일을 해치우는 폭력성이 아니라, 과정을 즐기고 배우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다.



문집이 아직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책 쓰기'에서 얻은 값진 경험을 정리해 본다.

요리와 비슷 - 글쓰기가 혼자 자기만족에서 먹는 거라면, 책은 정성껏 준비하여 손님에게 내놓은 요리와 비슷하다. 책은 '가독성'도 중요하다. 디자인적 요소가 많다. 책에는 작가의 세계가 드러나야 하므로,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어야 한다.

POD 출판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바로출판 및 부크크에 작가 등록해 두었다).

미니북 - 내 글이 활자화되어 남의 손에 들어가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처음 내 글을 모아 소책자처럼 만들어 보았다. 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러자 완성도를 높여야겠다는 욕심이 확 올라왔다.

퇴고 - 퇴고는 고통스러웠다. 글을 읽을 독자를 상상하며, 문단을 이리저리 배치해 보고, '읽는 맛'을 좋게 하려고 문장을 하나하나 다듬어야 했다. 퇴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단 머릿속에서 '띵~'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내 원고가 완성됐다는 종소리다. 이제 다시 글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생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는 삶이 중요 - 생각에 빠져 뭔가를 하면 서두르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탈진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가볍고 흥겨운 마음으로 일을 하는 것이 좋다.



내 질문: '무위'로 일하는 법은 뭐지?


ChatGPT의 대답:

'무위(無爲)'는 도가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문자 그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연스럽고 강제되지 않은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인위적으로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조화롭게 움직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무위로 일하는 법을 이해하려면 다음의 몇 가지 핵심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무위로 일한다는 것은 강제적으로 무엇을 성취하려고 애쓰지 않고, 일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황이 요구하는 만큼만 반응하고, 지나치게 통제하려 하지 않으며, 필요한 순간에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과정에 집중하기: 목표나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 과정을 즐기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순간에 집중합니다.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에 가치를 둡니다.

내적 균형 유지하기: 무위는 자신의 마음과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는 상태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감정이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만 쓴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면의 고요와 안정감이 필요합니다.

타인과의 조화: 무위로 일하는 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타인의 흐름에 맞추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결국, '무위로 일하는 법'은 인위적인 힘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몸이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힘을 빼고, 상황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면서,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적절하게 수행하는 태도입니다.



내 질문: '생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일하는 법은 뭐지?

ChatGPT의 대답:

'생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일하는 법은 이성적 분석이나 논리적 사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감정과 직관, 그리고 내면의 깊은 성찰을 통해 행동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음의 지혜에 따라 보다 인간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일하는 것은 사람들과 공감으로 연결되어 일하는 것을 뜻합니다. 타인의 감정과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태도입니다. 이는 단순한 결과를 넘어 인간적 관계와 그 안에서의 성장을 중시하는 접근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철없는 아들이 어머니와 나누는 철학적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