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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태웅 Feb 01. 2018

미니멀리즘과 어머니의 유품

해외 유명 미니멀리즘 에세이 번역 연재 #7


더욱 풍성한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기 위해, 미니멀리즘에 대한 해외 인기 에세이들을 번역해 싣고 있습니다.

물론 사이사이에 다시 필자 본인의 생각과 이야기도 쓰고 있고요.

※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번역상 작은 오류들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해외 유명 미니멀리즘 에세이 번역 연재 #7

제목: 미니멀리즘과 어머니의 유품

원제: Letting Go of Sentimental Items

출처: https://www.theminimalists.com/sentimental/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2009년이었다. 나는 휴가 철마다 수 천 마일 떨어진 플로리다의 어머니 집으로 가곤 했는데, 일종의 자식 된 도리 같은 거였다. 그 집은 작고, 침실이라곤 하나뿐이었지만 모든 공간들이 어머니의 물건으로 가득 차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취향들은 참 대단했다. 아마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했으면 좋았을 정도 … 게다가 신기하게도 물건들 중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말이야 어쨌든, 그녀의 집엔 물건들이 아주 많았다.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쇼핑을 하면서 물건들을 쌓아갔다. 그러다 보니 앤틱 가구를 집 전체에 걸쳐 배치해놓았고, 유일한 침실은 커다란 캐노피 침대가 점령하다시피 했다. 두 개의 옷장은 옷들로 꽉 차있었고, 모든 벽마다 공간이 허락되기만 하면 그림 액자를 붙여놓았다. 64년의 긴 시간이 이토록 작은 집 곳곳에 쌓여있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상주 노릇을 했다. 유품들을 옮기기 위해 커다란 트럭을 빌렸고, 오하이오Ohio의 거대한 창고 업체에게 전화를 걸어 충분한 공간도 있는지 확인했다. 트럭 값만 160만 원이었다. 창고 보관비는 또 12만 원 … 아무튼 계산했다. 그러나 나는 심리적인 무게감과 비용이 저런 지출보다 훨씬 더 크다는 걸 즉시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유품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사람, 혹은 이들과 비슷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지고 볶은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다면 당신도 나를 이해할 것이다. 수많은 유품들 중 어느 것 하나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엔 이렇다 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유품들을 버리는 대신에 오하이오의 창고에 모조리 쌓아두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언제든 창고로 돌아가 어머니의 물건을 꺼내 볼 수 있을 테니까. 심지어 어머니의 가구 중 몇몇은 내 집으로 가져오는 것까지 계획했다.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 용도로.


    그래서 유품들을 박스에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모든 사진과 액자들, 도자기 인형들, 모든 카펫과 모든 선반들. ‘남아있는' 어머니의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박스에 담았다.


그렇게 나는 잘 하다가 일순간에 앞선 모든 계획을 뒤집어버렸다.



    침대 아래를 봐버렸다. 짜임새 있게 난잡한, 침대 밑 공간에는 4개의 박스가 있었다. 각각 숫자들로 표시가 되어있었는데, 봉합 테이프를 뜯고 박스 날개를 열어보자 내가 발견한 건 낡고 낡은 내 초등학생 시절 종이들이었다. 이건 뭐 거의 1/4 세기나 묵은 것이었다. 맞춤법 시험지나 필기체 수업 종이, 미술수업 작품들 … 내 초등학교 입학으로부터 4년 간의 모든 종이들이 들어있었다. 물론 어머니가 박스를 테잎으로 묶어놓은 걸 보아 수년 간은 열어보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계속해서 보관해 놓은 까닭은 아마 그녀가 나에 대한,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계속해서 붙잡아놓고 싶어 했기 때문이리라. 이는 내가 어머니와 어머니의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붙잡으려고 유품들을 모조리 박스에 넣은 것과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내 나는 이 모든 노력이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유품들이 없어도 아들은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다. 그녀도 언제나 아들을 추억하며 살았던 것처럼 - 그리고 그녀 역시 침대 아래에 넣어둔 상자를 굳이 열어보지 않더라도, 언제나 추억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25년 전의 어린 아들을 기억함에 있어서 어머니는 이런 종이들이 필요하진 않았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창고에 유품들을 쌓아둘 필요가 없었다. 그들 없이도 나는 충분히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창고와 트럭 예약을 취소했다. 그리고 12일 정도에 걸쳐서, 나는 그녀의 물건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 기부했다.



    그렇다고 그 작업들이 쉬워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생각도 많이 했다. 기억과 소유물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나의 물건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 그 이상의 존재다.
우리의 기억들은 우리 안에 있지, 우리가 들고 다니는 물건에 있지 않다.
손에 쥔 물건들은 반대로 내 손을 억죄버린다. 그들을 놓아주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특정한 물건을 기억하고 싶다면 그냥 사진을 찍어버리면 그만이다.
낡은 사진들 또한 스캔을 떠서 보관할 수 있다.
나의 개인적인 추억의 물건 혹은 기념품들이 기실, 다른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런 물건들이 특별히 나쁘거나, 쓸모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못 버리는 사람이 멍청하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감성적인 물건’들이 미치는 악영향이라 함이면 되게 자잘 자잘하고 미묘한 영역이라서 … 만약 당신이 어떤 것을 버리고 싶긴 한데, 그 물건과 엮인 감정과 추억 때문에 망설여진다면 그때야말로 그것을 처분할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건들이 쌓여 부담을 느끼기 시작할 때가 바로 그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타이밍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나는 당신이 모든 물건을 '버려야만 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게 미묘한 영역이라 표현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내가 오하이오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머니의 사진들로 가득 찬 상자 4개를 따로 챙겨 왔다. 이것들은 내가 후에 모두 스캔을 떠서 온라인 클라우드에 저장해 놓았다. 요즘에 기술이 좋아져서 깔끔하게 스캔 잘 떠지더라. 이 사진들은 이제 모두 디지털화되었기에, 창고에 놓여 먼지와 함께 보관될 일도 없어졌다.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니 속도 후련하다. 집에 불이 나서 사진들을 모조리 잃어버릴 일도 없다.



    어머니 집에 있던 물건들도 모두 기부했다고 아까 말했었나? 가구들, 옷가지들, 장식품들 모두 기부되었다. 이것은 내 미니멀리즘 생활에 있어서 큰 도약이었다. 유품들은 내가 알게 모르게 심리적으로 큰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언제 가는 내가 반드시 정리해야 할 몫이었다. 어머니를 기억함에 있어서 어머니의 물건들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어머니의 흔적들은 사실 내 삶의 모든 곳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행동하는 방식이나 다른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 심지어 내가 웃는 모습에도 다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결코 어머니 물건에 속해있지 않았다.



    끝으로, 물건 줄이기에 대한 조언을 할 때마다 꼭 언급하고 싶은 2가지 선택지가 있어 소개한다.

첫 번째는 바로 한 방에 모조리 버리는 것이다. 마치 수영 선수가 스타트를 강력하게 다이빙하면서 끊어내는 것처럼, TV를 부숴버리고 모든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는 것이다. 빠르고 신속하게! 당연히 이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먹힐리는 없다. 심지어 나게 맞는 방법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할 때에 있어서만큼은 내게 꼭 필요한 방법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마치 걸음마를 떼듯 한 발짝씩 지켜나가는 것이다. 초반에는 작지만 점차 페이스를 키워나가면서 일상을 정리하는 것에 탄력을 붙이는 방법이다. 당장 오늘 처리하고 싶은, 그리고 오늘 처리할 수 있는 ‘감수성 아이템’이 있는가?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점차 하루하루 정리할 물건을 늘려나가면 된다. 당신이 ‘이 정도는 거뜬해’라고 느껴가면서 말이다.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당신이 선택하든, 우선 행동부터 하자.

행동하지 않고 그럴싸한 모습을 남기기는 불가능하니까.



- Joshua Fields Millb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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