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태웅 Oct 06. 2017

휴식: 나를 둘러싼 반경 10미터 정도

프로 휴식러가 소개하는 가볍고 익숙한 휴식법입니다.

나는 휴식에 약간 장인정신이 있어서,

쉬는 게 영 맘에 안 든다 싶으면 없던 걸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쉬곤 한다.



    백 년 만의 황금연휴에 무슨 실없는 농담인가 하겠느냐만은, 그만큼 휴식이란 내게 있어 중요하다. 굳이 <내게>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휴식은 모두가 사랑해왔지만 필자 같이 게으른 사람은 더더욱... 몹시 사랑한다. 퇴근 후 가마니가 되는 걸 사랑하고 빨간 날의 늦잠을 사랑한다. 뻔한 고백은 그만하고 미니멀리즘 매거진에 어울릴만한 이야기를 개진해보겠다. 물론, 글빨에는 영 자신이 없으니 일단 소설가 김연수 씨의 글로 치사하게 열어보겠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동안, 의자에 앉아서 나는 이슬비가 흩뿌리는 창밖을, 혹은 갖가지 색깔의 분필로 메뉴를 적어 놓은 칠판을, 언제 붙여 놓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낡은 액자를 바라봤다. 10평 정도 되는 실내에는 사람들이 들어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잠시 앉아 있었다. 때로는 커피를 마시며 카페 주인과 얘기를 좀 하다가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친구와 마주 보고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나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만큼만 보내기 위해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이따금 사람들과 자동차와 개들이 오가는 거리를 바라보는 일이 그렇게 좋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집에 돌아갈 때면 늘 그렇게 잠깐 앉아 있는 시간을 가졌다. ‘자, 여기 테이블 앞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야.’ 그런 심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었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는 그 시간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매일 동네 카페에 앉아서 그렇게 커피를 마신다는 게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며칠에 한 번씩, 그렇게 동네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을 가지는 행복을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휴식이란 내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와중에 잠시 시간을 내서 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나를 둘러싼 반경 10미터 정도, 이게 바로 내가 사는 세계의 전부구나.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몇 명, 혹은 좋아하는 물건들 몇 개. 물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계가 그렇게 넓을 이유도, 또 할 일이 그렇게 많을 까닭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잘 쉰 셈이다.


- 김연수,『지지 않는다는 말』//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는 이 여름의 전부] 中





나를 둘러싼 반경 10미터 정도, 이게 바로 내가 사는 세계의 전부구나.



    이 문장을 어느 4월 봄날, 일요일 대낮에 동네 카페에서 가장 불량한 자세로 앉아 마주한 것이 내 한 평생의 자랑이다. 무릎을 치고 내 주위를 둘러보니 나의 세계는 굉장히 좁았다. 단골 카페의 단골 메뉴와, 익숙한 도장이 찍힌 도서관의 익숙한 작가의 책, 손에 익은 노트북.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세계. 생각해보면, 촌에서 나고 자란 중고교 시절을 마무리할 무렵, 나는 성인이 되면 나의 세계를 무한히 키우고 싶어 안달나있었다. 폭넓은 교양 수준과 프로페셔널한 커리어, 글로벌한 우정... 뭐 그런 것들로? 지금 생각해보면 딱 그 나이다운 발상이기도 했고, 빠르게 타협되는 사항들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20대의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고, 나의 세계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상상한 만큼의 속도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히 남들 겪는 만큼의 속도로. 그렇게 평생에 걸쳐 좋아할 분야들이 생겼고, 먹어본 식사와 음료 메뉴도 많아졌다. 친구가 생겼고 많은 은혜도 입었다. 또한 예상했듯, 좋은 것들만 온 것은 아니었다. 멀미가 날 정도로 강하게 밀려오는 것들에는 당황한 적도, 받아들이기 벅차 좌절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정신이 없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기 마련인데, 나는 그때마다 혼자 남아 가장 익숙한 것들에 둘러 쌓여 스스로를 피난시킨다. 그리고는 아까 옮긴 김연수의 문장과 나 좋을 대로 지어낸 문장을 적절하게 짬뽕시킨 주문을 외운다. '젊은 내가 벌써부터 스스로의 세계를 매듭지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싫은 것들로 채울 필요도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뻗어나간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세계는 생각보다 좁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 몇 명, 좋아하는 음악 몇 곡, 좋아하는 책 몇 권이면 나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구나. 나는 내 세계를 언제든지 정돈할 수 있는 능력이 있구나.


    글의 초입에도 말했지만 나는 휴식에 있어서 장인정신이 조금 있다. 어떻게 휴식의 고수가 될 수 있느냐 묻는다면 내게 익숙한 세상을 보여주리라.




삽화

좌) 고흐, <아를의 침실> 1883 ↔︎ 우) 베얼리, <정리한 고흐의 침실>

매거진의 이전글 바쁨이 아닌 몰입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