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면 푸른 허공이 열리고
나팔꽃은 물기를 머금은 입술을 내민다
잠들어 있던 바람의 한숨이
줄기 끝에서 조용히 울린다
너는 꼭 아는 사람처럼 피어나서
빛을 물어다 주었다가
금세 숨을 고르며 접히곤 했다
온종일 고개를 숙이며 드러난 맥락은
누군가의 어깨 위에 닿을 것만 같아서
꽃잎이 한낮의 햇살을 견디지 못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 새겨지는 것임을
아무도 모른다
네가 접힌 자리엔 마침표 대신
묵직한 여백이 남고
누군가는 그것을 저물어가는 하루라 부르지만
어쩌면 다음 생의 첫 문장일지도 몰라
너는 늘 잠깐 피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남겨진 네 푸른 흔적은
내 마음 어딘가에 깊게 뿌리를 내린다
그러니, 오늘 하루가
조금 접혀도 괜찮아
네가 피어나는 동안,
세상은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