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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번, 너를 복용합니다

by 아무개


알약 같은 하루를 삼킨다

물 한 모금 없이

목구멍에 걸린 안부를 꿀꺽 삼키듯


멀쩡하다는 말은

반짝이는 포장지다

걱정 없다는 웃음은

뜯지 않은 진통제 같다


잘 지내라는 짧은 문장,

복용법처럼 읽는다

하루 세 번쯤

네 생각을 시간에 맞춰 삼킨다

주의 사항:

밤이 길어질 수 있음


꼬박 새운 밤,

새벽은 열이 내리지 않은 이마 같고

출근길은 한낮처럼 뜨겁다


너는 여름을

뜨겁다고 말하던 사람이었지

나는 그 말의 남은 온기로

겨울을 연습한다


우리의 겨울을 그려본다

유리창에 하얗게 오른 숨을

겹쳐 적는 법,

목도리 안쪽에서 서로의 맥박을

조용히 데우는 법,

눈이 내리면 한 알씩 녹여 먹듯

하루가 입안에서 사라지는 법


멀쩡한 척하는 동안에도

내 안의 약통은 자꾸 빈다

오늘도 마지막 한 알,

너라는 성분을 삼키고

나는 겨우 하루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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