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시간을 머금은 봄나물
4월의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초록빛 잎들이 식탁 위에 자리를 잡는다. 거친 흙을 뚫고 올라온 강인한 생명력은 된장의 구수함과 만나 비로소 편안한 일상의 맛이 된다.
입에 넣자마자 깊은 숲의 청량한 향기가 몸속 구석구석 스며드는, 봄의 정점이 담긴 나물 무침이다.
취나물
봄의 전령사다. 겨울내 웅크렸던 몸의 기운을 깨워주고,
특유의 쌉싸름한 향으로 마음의 독소까지 씻어내 준다.
된장
기다림의 미학이 담긴 음식이다.
다시마 채수와 미리 개어두면 뭉친곳 없이 나물 사이사이에 고르게 스며들어, 간을 맞추기 위해 나물을 거칠게 다루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준다.
다시마채수
된장의 짠맛을 중화시키고 수분을 더한다.
된장의 강한 성질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나물의 향을 가리지 않도록 돕는 사려 깊은 중재자 역할을 한다.
참깨
무치기 전에 미리 갈아두면 숨어있던 향이 터져 나와 나물의 풍미를 한 층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들기름
나물의 영양 흡수를 돕고, 거친 이파리를 부드럽게 코팅하여 목 넘김을 다정하게 만든다.
나물을 마주하는 첫 시간은 깊은 대화와 같다.
억센 줄기는 과감히 떼어내고, 여린 부위와 나누어 정리한다.
흐르는 물에 씻어내며 나물이 머금었던 흙과 먼지를 털어내면, 비로소 요리를 시작할 준비가 끝난다.
데치기 :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취나물을 넣는다. 억센 줄기 윗부분을 손으로 살짝 눌러본다. 말랑해지는 순간이 바로 나물이 준비되었다고 보내는 신호다.
기다림 : 건져낸 나물은 찬물에 헹구지 않는다. 나물이 머금은 따스한 온기를 그대로 간직하게 둔다. 스스로 천천히 식어가며 그 결은 더욱 부드러워진다.
밑간하기 : 적당히 식은 나물을 한 입 크기로 자른 뒤 가볍게 물기를 짜고, 간장을 살짝 버무려 밑간을 한다. 이렇게 간을 들여두면 나물의 속살까지 깊은 감칠맛이 배어들어, 된장과 어우러졌을 때 맛이 겉돌지 않고 한결 깊어진다. 잠시 후 배어 나온 물기를 다시 한번 살포시 짜낸다.
어우러짐 : 취나물에 들기름을 먼저 둘러 나물을 코팅한다. 다시마 채수에 곱게 갠 된장을 넣으면 나물의 숨을 죽이지 않고도 양념이 골고루 입혀진다. 마지막으로 갓 갈아낸 참깨를 더해 나물무침을 완성한다.
그릇에 담기 전, 나물 위로 피어오르는 향기를 가만히 맡아본다.
비 온 뒤 젖은 흙 내음과 이슬 머금은 풀잎의 향이 뒤섞인 듯한 진한 숲의 향이 전해진다.
처음엔 쌉싸름하지만, 씹을수록 된장의 구수함과 들기름의 고소함이 층층이 쌓이며 기분 좋은 단맛으로 변해간다.
입 안에서 4월의 산길이 열리고 어느새 숲의 한가운데를 걷는 듯한 고요를 마주한다.
"화려한 기교 없이도 재료 본연의 힘이 우리의 봄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