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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영 Mar 08. 2016

레몬의 도시, 망통

유럽여행#1. 프랑스 남부 여행(코트다쥐르) - 망통

2016년 2월 18일, 유럽여행의 첫걸음을 드디어 내딛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휴양도시 니스에서 유명한 카니발이 열린다는 것을 듣고 성철이 형, 영일이와 함께 1주일짜리 코드 다쥐르 여행을 계획했다.

오랜 시간 고대해온, 이곳에서의 첫 유럽 여행의 시작되었다. 



Day 1. 향긋한 레몬의 도시, 망통(Menton)


'레몬의 도시'라고 알려진 망통. 이곳에서는 매년 니스 카니발이 열리는 기간에 레몬축제가 열린다. 니스 카니발을 보러 온 관광객들이 하루쯤은 들러서 이 작은 소도시를 둘러보고 간다고 한다. 망통으로 바로 가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 같지만, 우리는 망통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내려오며 여행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첫 목적지가 망통이었다. 


니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망통으로 가는 길에는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주변 풍경을 보지 못했다. 새벽에 일어나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쌓인 피곤함이 여행에 대한 설렘을 이길 정도로 컸나 보다. 망통에 내리자마자 보인 것은 사람도, 하늘도 아닌 '가로수'였다. 거리의 가로수에는 오렌지 비슷하게 생긴 열매가 한 가득 매달려 있었고, 그 가로수들 하나하나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망통의 레몬이 처음부터 유명세를 탔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축제를 기획했고, 의도적으로 레몬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레몬의 마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레몬이 축제를 위해 생산되고, 이를 이용해 전시장을 만들어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 작은 마을에 확실한 테마가 있다는 것이 참 좋아 보인다. 더군다나 그 테마가 향긋한 레몬이라니. 마을 사람들이 참 영리하다고 해야 할까나,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도 괜히 마을에서 향긋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망통의 레몬 전시장. 생각보다 멋있지는 않아서 입장하지는 않고 어깨너머로 봤다. 



망통의 거리엔 손재주가 좋은 예술가들이 많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에 가보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거나 예쁜 조각상이나 기념품들을 파는 곳이다. 


스프레이로 슥슥 뿌리는데 순식간에 그림이 완성되어간다. 보고있으면 너무 신기하다. 
알록달록 구매욕을 자극하는 기념품들.



망통 축제는 밤에 진행된다. 망통에 낮에 도착한 우리는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우연히 혼자 오신 한국인 한 분을 만났다. 다정하게도 먼저 말을 걸어와주셨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우리는 그 분과 함께 걷게 되었다. 


망통의 골목은 좁았다. 하지만 그 좁은 거리는 우리나라의 아파트가 다닥다닥 붙어있을 때 느껴지는 '좁음'이 아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창문에 팔을 내밀어 뻗으면 옆집 사람과 악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유럽 건물들의 색채와 널려있는 빨랫감들, 종종 열려있는 창문에서 마을 사람들의 정다움이 느껴진다. 



마냥 걸으며 정신없이 골목을 구경하던 우리는 트립어드바이저에 1위로 소개되어 있는 높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정확한 이름은 안 나지만 그곳은 묘지였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망통의 모습은 어떠할지 기대를 안은 채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다 만난 망통의 성당
유럽에서 성당은 지나치기 어려운 관광장소 중 하나다.


새로 도색한 듯한 알록달록한 색감이 마치 장난감 같다.


드디어 묘지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가지런하고 정렬된 묘지와는 달리 제각기 다른 모양에 다른 크기를 가지고 있는 묘지들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망통의 풍경!


작은 도시라지만, 첫 여행지여서인지 그렇게 작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망통의 모습을 한참을 내려다 본 뒤 묘지에서 내려오는 길 



프랑스 남부 마을에 온 이상 바다를 빼놓는다면 그곳에 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해가 드리지 않는 흐린 날씨였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은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다. 갈매기들이 짝지어 날아다니고,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청록색의 파도. 그리고 사람들이 북적대지 않는 한산한 해변가에 매료되어 나는 넋을 놓고 셔터를 눌렀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해변가에서 나와 박물관처럼 보이는 건물에 들어가면서 핸드폰을 꺼내려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다른 쪽에 넣었던가?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함께 동행하시던 분이 먼저 가봐야겠다고 인사를 했다. 그때 뭐라고 인사를 드렸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당황스러운 내 얼굴이 분명 티가 났을 테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핸드폰을 잃어버렸던 적이 없었기에 여행 중에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일은 적어도 나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슬픔도 컸지만 여행 첫날, 이 사건으로 인해 나의 남은 여행이 즐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속이 상했다. 

그토록 낭만적이었던 해변가가 내가 헤집고 다녀야 할 원망스러운 땅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다.


함께 온 성철이 형과 영일이에게도 미안했다. 다 함께 구역을 나눠서 찾아보기로 하고 10분 정도 헤맸는데도 나의 핸드폰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절망적이었던 감정이 조금씩 평안을 찾아가면서 체념으로 바뀌어가던 찰나에 영일이와 성철이 형이 나를 부르며 손짓을 했다. 핸드폰을 찾았다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듯 보이는 우리들을 보고 해변을 걷고 계시던 노부부께서 말을 걸어 주셨다고 한다. 마치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에 나오는 산신령처럼 이 핸드폰이 너희가 찾는 핸드폰이냐고. 나는 그분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찾아가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었다. 잠시 후 그분들이 우리 곁을 지나가게 되었고 나는 그분들께 몇 번씩 '메시!'와 '땡큐!'를 섞어가며 소리쳤다. 


아무래도 사진을 찍다가 주머니에서 흘렸는데 파도소리에 떨어지는 줄도 몰랐나 보다.

이렇게 다시 핸드폰을 찾게 될 줄이야!

아, 정말 이 도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전은, 내 핸드폰 카메라에 할아버지의 얼굴이 찍혀있었다. (소장중)



잠깐 사이에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나는 다행스럽게도 좋은 기분으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에 있던 작은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입장료가 있어서 나오려던 차, 혹시나 해서 이곳이 유료냐고 물었더니 곧 닫는다며 10분간 보고 오라고 하신다. 규모가 아주 작아서 10분도 충분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사람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독특한 느낌.


그림 옆에 있는 설명을 유심히 읽던 성철이 형이 이 그림들이 '장 콕토'의 그림이라며 말해주었다.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난 알지 못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많은 정보들이 나온다. 시인, 극작가, 영화감독이기도 했단다. 재주가 많은 사람인 듯하다.)




해변에서 돌아와 시내를 둘러보았다. 레몬의 도시 답게 레몬으로 만든 꿀, 아이스크림, 타르트, 음식들을 많이 팔았다. 돈이 없는 우리는 꿀을 시음해보는 것에 그쳐야 했지만 나중에 식당에서 레몬 타르트를 먹을 수 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어느덧 레몬축제가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바람 부는 기계로 종이를 잔뜩 뿌려대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난도 많이 친다. 시끄러운 북소리와 함께 레몬으로 가득한 축제 차량이 노란빛 골목을 누빈다. 




행렬이 끝나갈 무렵엔 망통 바닷가에서 소소한 불꽃놀이도 볼 수 있었다. 언제나 하는 건 아니고 불꽃놀이를 하는 날이 정해져 있는데, 니스에서 보지 못할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여행을 망통에서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시끌벅적한 축제를 보자마자 바닷가에 앉아서 예쁜 불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다.  


말 그대로, 불꽃.



망통 해변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숙소에 늦게 돌아왔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났다. 다음 목적지인 모나코를 향해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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