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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영 Jun 05. 2016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프롤로그 - 정든 곳을 떠나며

| 2016.05.31



"내 방키 반납 좀 부탁할게."


방문을 잠그고, 나보다 조금 더 덴마크에 머무는 하영이 누나에게 방키를 건냈다.

1월 20일부터 5월 31일까지, 꽤 오랜 시간 지저분했던 나의 방이 다시 말끔하게 깨끗해졌다. 사람이 살았던 온기마저 치워진 것 같아서 조금은 서글프다. 처음 이 방을 마주했을 땐 비어있는 공간들이 앞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공허하고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예매할 때만 해도 학기를 마치고 하게 될 '45일간의 유럽 여행'을 가장 기대했었다. 드디어 그 여행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인천공항에서 이곳으로 올 때와는 달리 요리도 할 줄 알고, 영어는 안늘었지만 외국인에게 말도 쉽게 걸고, 여행의 노하우도 생겼는데, 그 때만큼 설레지만은 않다. 여행을 하기 전, 제일 중요한 걸 잃어버린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방향으로 기대가 되기도 한다. 유럽의 화려한 시청사 건물들이 익숙하고 유럽사람들의 큰 키와 파란 눈동자가 자연스러워진 지금, 나는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화려한 겉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던 그 때와는 달리 이제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여행하게 될까. 그 동안 여행을 하면서 꼭 해야하는 일처럼 여겼던 '박물관 전시물 다 둘러보며 뽕 빼기', 'Trip advisor 에 나온 상위 10개 명소 가기', '모든 사진을 예쁘게 보정하며 여행의 기억을 아름답게 가꾸기' 등등 에 대한 비중이 조금 줄어들고 옆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지 않을까.




비슷한 맥락에서, 사진 정리하는 시간을 줄이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하루에 한 장 고르기' 를 하려고 한다. 결정장애가 있는 나에게는 참 쉽지 않을 것 같다. 여행지에서 찍은 수 많은 사진 중에 한 장을 고른다면 어떤 사진을 고르게 될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일까, 기대를 뛰어넘는 그림같은 풍경일까. 아무래도 한 장은 너무 아쉬울테니 세 장까지만 골라봐야겠다. 


정말 정든 덴마크를 뒤로 한채, 첫 번째 도시인 함부르크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수그러들었던 설렘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하지만 그 설렘의 대상이 유럽의 건축물이 아니라 함께 여행할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 그 사이사이에서 피어날 이야기들이라는 것이 옛날과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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