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 外柔內剛, 벨벳 장갑 속 강철 손.
사실 이 꽃은 하와이나 괌에도 많이 있어서 회사 다니던 시절 회사 분들이
괌이나 동남아로 휴가 다녀들 오실 때 여행 기념품으로 종종 사 오곤 하시던
캄보자 모양의 비누나 양초로나 보곤 했었는데
다섯 잎의 하얀색 꽃에 중간이 샛노란 색으로 물들여진 단조로우면서도 견고한 매력을 가진 꽃이다.
발리에서는 길을 걷다 보면 캄보자 꽃을 귀에 꽂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여느 동남아 나라들처럼 호텔에 가면 침대 위를 캄보자 꽃으로 장식해 놓거나
캄보자 꽃을 꽂은 웰컴 드링크로 반겨주어 기분 좋은 투숙을 시작하게 해주는 곳들이 많다.
나 또한 종종 길을 걷다가 기분 좋게 생긴 캄보자 꽃들이 땅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왠지 마음이 아파 괜히 주워다가 냇물에 띄워주거나, 손에 쥐고 숙소로 돌아간 적이 있다.
지나가는 개들 사진은 찍는 법이 없어도
허허벌판인 공사장에 아주 작게 핀 들꽃 한 송이는 가던 길도 멈추고 사진을 굳이 찍곤 하는 들꽃 쟁이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이름 없는 들꽃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손톱만 한 사이즈에 다섯 잎이 다 옹기종기 펴있는 들꽃들을 보노라면
어렸을 때 즐겨 먹던 쌀로별 과자도 생각나기도 하고 괜히 기분도 좋아져서
한참 쳐다보기도 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꽃들의 사진도 찍는다.
환 공포증이 있어서 인 듯한데 작은 잎들이 한가득 펴있는 국화 같은 꽃은 보는 것도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고, 낭만의 대표주자 장미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본주의의 큰 큰 형님 그야말로 대표주자라 그런지
감히 나 같은 무수리 따위가 큰 정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요즘 많이들 예쁘게 포장해서 판매하고 선물하는 드라이플라워는
인간의 과한 욕심으로 염색도 많이 당하고, 화려한 포장지에 둘러 쌓여 본연의 꽃의 미를 잃은 것 같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캄보자 꽃, 정말 단순하고, 견고하며, 색도 너무 예쁘다.
꽃이지만 연약해 보이지 않고 만져보면 잎도 뻣뻣하고 강하다.
중간에 예쁘게 물들어져 있는 노란색은 어중간한 레몬색도 아니고 주황빛이 살짝 도는
하지만 누런 색도 아닌 내가 딱 좋아하는 원색 샛노란 색이다.
아름다움을 자랑하기에 단시간에 매력을 발산하기에 꼭 필요한 색깔과 디자인만 가진 미의 원석이다.
아침에 요가하고 나오는데 나처럼 떨어진 캄보자만 보면 마음이 아쉬웠던 사람이 또 있었는지
길에 우수수 떨어진 캄보자 꽃을 주워 벽을 타고 핀 이름 모를 꽃들 위로 하나씩 박아 놓은 것이다.
그 모습이 우스워 사진을 찍다가 문득 떠오른 사자성어 '外柔內剛'
떨어진 꽃 하나에 무슨 그런 큰 의미를 부여하나 웃을 수도 있지만, 그 날 아침에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얀 꽃잎들 사이로 정확하게 물들어진 샛노란 중심부,
다른 어떤 색깔도 없고 꽃잎 중간에 자리하여 허전함을 달래줄 수술, 암술도 없지만 그 견고한 하얀 잎들 사이로 샛노란 중심부가 있으니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인정할 수 있는 꽃이 된 것이다.
하얗고 보송보송한 다섯 개의 잎은 유한 외면이 어정쩡한 색깔이 아니라 정확하게 샛노란 중심부는
강한 내면이 되어 서로 만나니 완벽한 아름다움이다.
그동안 모두와 순조로울 수만은 없어 힘들었던 사람 관계들, 팍팍한 사회생활들,
그리고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각종 스트레스들, 내 자존감을 최하로 떨어뜨리고
가끔은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던 많은 일들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내가 자연스레 추구하고 갈망하게 된 건
그 상황들의 변화가 아닌 나 스스로의 내적 강화였다.
그러다 보니 움츠러든 나를 먼저 회복하기 위한 시간이, 그리고 오로지 나만의 행복을 위한 정성스러운 노력이
숨이 턱턱 막히는 사회생활과 돈과 명예
또는 다수의 사람들의 시간에 맞추어 내 인생을 사는 것 보다도 더 급박하다고 깨달은 후로는
겉으로는 좀 더 느긋해지고 속으로는 쉽게 상처를 받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내적 근육을 키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아 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한창 신입일 때는 무섭게 또 억지스럽게 강압적인 관계를 시작하는 회사 선배들, 사수들 때문에 상처도 받고 힘이 들었을 때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서는 같은 동기들끼리도 다 좋을 순 없기에 의견 차이나 성격 차이 또는 생각 차이로
많은 갈등이 생겨 의도치 않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 때마다 나도 누군가의 선배가 되고 사수가 되면서
혹시나 나도 같은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의식적으로 반성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는데
그건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니
내가 함부로 난 잘해왔다고 스스로 평가하거나 섣불리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겉이 온화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절박한 순간, 급박한 시간이 찾아올 때 없는 여유도 당겨와서
큰 목소리 내지 않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불쾌함을 주지 않고
온화하고 유한 모습으로 조용히 온전히 지혜롭고 견고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족했겠지만 진심으로...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처음부터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힘들어지는 사람도 상대가 아니라 결국 나라는 것도 감히 알아차리는 짬도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인정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더라도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은 그 상황이나 사람을 탓하며 힘들어할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방법으로 스스로 잘 방어하고 다치지 않으며
그 보다 조금 더 여유가 된다면 평정 심을 유지하고 위트 있게 상대에게 한마디를 던지거나
{'당신에게 여유가 된다면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을 가지며}
그 상황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합당하고 정당하게' 강인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재미있는 마음이 들어 숙소로 가는 길에 ‘외유내강’을 영어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나 찾아보았다. 영어 표현도 역시 흥미롭고 그럴싸했다.
‘An iron hand in a velvet glove’ ‘벨벳 장갑 속 강철 손’
역시나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이다.
나는 화장엔 똥 손인 탓이라 그런진 몰라도 (모르는 게 아니라 확실하다.)
화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 못한다.
눈썹도 잘 그리지 못해서 이미 몬 생긴 얼굴에 눈썹이 매번 짝짝이다.
금속 알레르기가 있기도 하고 귀도 워낙 작아서 (나보다 귀가 작은 사람을 정말 본 적이 없다.)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 액세서리도 거추장스러워서 잘하지 않는다.
옷을 고를 때도 한 맥락인데, 아무리 예쁜 그림이나 귀여운 포인트가 있어도
티셔츠나 셔츠 또는 블라우스에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장식이 달려 있으면 고르지 않는다.
항상 민자! 무! 그리고 원색! 만을! 선택한다.
이런 나라서 캄보자 꽃의 아름다움에 유독 사로잡혔는지도 모르겠다.
그 단조롭고 견고하고 약하지 않으면서 정확한 예쁨이
나에게는 잎이 풍성한 국화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장미나,
다양한 색깔들로 곱게 물들여 화려한 포장지로 완성시킨 안개꽃들의 매력보다 훨씬 강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