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XXX”
누군가 학생부 교무실 벽에 강아지를 거칠게 표현했습니다. 학교에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한 명 밖에 없고, 방금까지 저에게 지적받은 학생이 벽 앞에 서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학생이 욕을 쓰고 있던 현장을 동료 교사가 적발했기 때문에 저에 대한 내용이 확실합니다.
학생에게 교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종종 들을 때가 있습니다. 다른 교사에 대한 내용일 때도 있고, 저에 대한 내용일 때도 있습니다. 지나가다 들리기도 하고, 착한 학생이 비밀이라며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지만 일부러 못 본 척할 때가 많습니다. ‘안 보이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라는 속담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욕이 꼭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욕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욕설의 과학'... 욕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 [BBC뉴스 코리아]). 그러나 이것은 욕을 하는 이의 입장이고, 욕을 듣는 사람에게는 부정적 감정이 생깁니다. 더구나 학생에게 욕을 들으면 교사로서 힘이 빠지고 가르칠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학생이 미워 보이지 않게 하는 방법
학교에서 발생한 갈등을 법률과 제도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회부된 교권침해 사례가 매년 4천 건 이상 발생하고(‘선생이면 다야? xx’... 교권보호 5법 있어도 교육 침해는 증가세 [한겨레]),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으로 번지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학교 담장 넘은 '학폭'… 행정소송 3년 새 2.5배 늘었다. [중앙일보]). 제 경험을 토대로 성급하게 말하자면 법을 통한 해결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감정이 덜 풀린 상태에서 법적 조치를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갈등은 ‘법적 조치’보다 ‘관계 회복’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갈등이 생긴 학생과 다음 날 만날 때 미워 보이지 않아야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갈등 대상이 학생이더라도 용서가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제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감정을 덜어내기 위한 시간을 가집니다. ‘90초의 법칙’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있습니다. 신경해부학자 질 볼트 테일러가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에서 주장한 이 법칙은 부정적 감정이 생화학적으로 90초 안에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이론입니다. 그 이후에도 화를 내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화를 내기로 의식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생과의 갈등에서 부정적 감정이 생기면 잠시 시간을 가지면서 ‘교사인 내가 학생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합니다. 교무실 벽에 욕을 쓴 학생에게 저는 ‘교실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원했습니다.
둘째 적당한 사람에게 중재를 부탁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사가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학생을 보호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는 중재자로 그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부탁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듣는 말은 다르게 들립니다. 저는 그 선생님에게 혼내거나 판단하지 말고 학생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라고 요청합니다. 중재자가 필요한 목적은 학생의 솔직한 마음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편을 들어줄 사람이 아닌 학생의 진심을 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합니다.
셋째, 제가 먼저 사과할 것이 없는지 찾습니다. 학생은 사과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모범을 보입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느낀 점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너를 혼낼 때는 교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공개된 장소에서 혼내지 않을게.”라고 말합니다.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네면 학생들은 곧잘 풀어지면서 자신의 잘못을 말하고서 아름답게 마무리가 됩니다. 고집이 센 학생이 뚱한 표정으로 듣기만 할 때도 있지만 사과하는 방법을 가르쳤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에 갈등이 생기면 먼저 사과하길 바란다고 그 학생에게 부탁하고 끝은 맺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른의 일
앞서 언급한 제 욕을 쓴 학생에게 3단계를 적용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욕을 쓴 현장을 발견한 동료 교사가 중재자 역할을 해주었고, 감정이 충분히 식은 며칠 후 학생을 만났습니다. 착한 학생은 저를 보자마자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입니다.
“네가 내 욕을 써서 야단치려고 부른 것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이가 깜짝 놀랍니다. 욕을 한 이유를 알고 싶어 질문을 했습니다.
“나에게 혼나서 억울할 것이 있었니?”
망설이다가 아이가 대답합니다.
“저는 배드민턴채를 휘두르지 않았고 친구가 친 공을 받기만 했어요”
교실에서 배드민턴을 하고 있던 학생 2명을 지적했는데, 받기만 해서 억울했나 봅니다. 아이의 논리에 말려들면 안 됩니다. 역으로 질문합니다.
“그래? 그럼 너는 교실에서 한 번도 배드민턴을 친 적이 없어?”
“그렇지는 않아요.”
“그럼 너는 나에게 걸려서 억울한 거였네. 선생님에게 걸렸을 때만 잘못한 것은 아니야. 교실에서 배드민턴을 하면 친구들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거든. 네가 스스로 그것을 생각해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게. 매일매일 쉬는 시간마다 했던 행동을 적어보렴. 학교가 끝나면 나에게 가져와서 확인받자. 함께 고쳐 나갈 수 있지?”
“네. 알겠어요”
제가 내준 과제를 학생이 성실히 했고, 매일 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을 모든 학생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일 심한 욕설을 직접 들었다거나, 비난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졌다면 교권보호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권보호위원회의 사무가 각 교육지원청 단위의 지역교권보호위원회로 이관되면서 교사 위원의 부재, 낮은 처벌 수위, 재심의 절차 부재, 보복성 민원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을 볼 때 망설여집니다.
학교 갈등 해결에서 교권보호위원회나 법적 절차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글에서 제시한 것처럼, 법과 제도는 처벌은 가능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진정한 해결은 갈등 이후에도 다음 날 그 학생을 미워하지 않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교사의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90초의 시간, 학생을 헤아리는 중재자의 도움, 교사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선제적인 사과의 3단계는 결국 교사로서 우리가 먼저 '어른의 일'을 수행하는 과정입니다. 학생이 사과 방법을 모르듯, 때로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욕설을 들었을 때 힘이 빠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감정을 멈추고 '학생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처럼 관계 회복에 중점을 둔 의연한 대처는 일시적인 갈등을 넘어, 학생에게 배울 기회를 부여합니다. 결국 교사와 학생이 매일 함께하는 학교는 관계와 신뢰 위에서 가장 안전하고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