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나 생각보다 덕질을 좋아했네?
요즘에 내가 가장 관심이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기술”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발자 모셔가기”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10년 가까이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기술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다. 지금 무언가를 배워 나만의 기술을 얻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생각과 지금처럼 기술 없이 살려고 하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며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무한도전 박명수의 어록이 떠올랐다. 방송으로 봤을 당시 임팩트가 강한 말이라 기억이 잘 나기도 했고, 그 뒤에 붙여지는 표현이 주는 희망이 좋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너무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해라!
박명수의 말처럼 이미 늦은 건데 신경 쓸 것이 무엇인가? 갈급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열심이듯 결국 아쉬운 것은 나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충분히 나만의 기술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복회로를 돌리면서 종이와 펜을 들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소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주인공인 10살짜리 소녀 조지나처럼 말이다.
책을 요약하면 이러한 내용이다. 갑작스럽게 도망가 버린 아빠와 그 이후 찾아온 가난으로 집이 아닌 차에서 살게 된 조지나 가족이 겪은 이야기로 책의 내용이 시작된다.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부잣집 개를 훔쳐 사례금을 얻은 후 지금 겪고 있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10살 소녀 조지나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계획서를 작성하고, 살을 붙여 실천하게 된다.
[개를 훔친다] → [전단지를 발견한다] → [개를 돌려준다] → [사례금을 받는다] → [그 돈으로 집을 얻게 된다]
이렇게 조지나처럼 간결하게 나의 기술 획득 아이디어를 적었다. 내가 얻고 싶은 기술이나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결국, 기술이 없어 아쉬운 것은 나이기에 갈급한 마음으로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그리고 조지나처럼 생각하려 할 때 의외의 인사이트를 얻기를 바라면서 아래와 같이 생각을 정리했다.
[기술이 필요하다] →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찾아본다] → [내가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을 연습한다] → [잘하는 것으로 나만의 기술을 얻는다]
생각을 정리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지금까지 나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무엇에 가장 나의 열정을 쏟았었지?"
그리고 보니 나는 책을 참 좋아했다. 남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참 흥미로웠고, 이야기 속 주인공이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에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특히, 나는 한 작가에 빠지면 그 작가의 다른 모든 작품을 닥치는 대로 탐독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상실의 시대"란 책에 빠졌다. 이후 출판된 모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찾아 읽으며 행복했다. 그리고 수능 이후 지금까지도 이 습관은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대학생 시절 도서관 사서 도우미로 2년간 아르바이트하며 책과 가까이 지냈고 지금도 매달 책을 구매해서 보고 있다.
그리고, 전자기기에도 참 관심이 많았다. 성인이 된 이후 돈을 벌면서 필요한 물품을 하나, 둘 사기 시작한다. PMP를 시작으로 노트북부터 아이폰, 에어팟, 애플워치, 무선이어폰까지 다양한 전자기기를 샀고,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수집하는데 묘한 쾌감을 느꼈다. 10년 넘게 아이폰만 사용하고 있으며, 애플과 관련 전자기기도 다 맞추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전자기기에 참 진심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도달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와! 나 생각보다 덕질을 좋아했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작가가 쓴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 칼럼 등 다양한 형태의 책을 찾아 글이란 글은 모조리 다 읽었다. 그뿐만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팝송이나 재즈 음악, 달리기까지 그가 관심 가지고 있는 음악이나 취미도 공감하려 알아보고 좋아해 보려 노력했다.
전자기기도 마찬가지다. 카톡도 안 되는 노키아 핸드폰을 쓰면서 좌절하던 어느 날. 학교 프로모션으로 얻은 아이폰을 쓴 경험은 신세계였고,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 10년간 그 애플 제품만 핸드폰으로 계속 사용할 뿐만 아니라 관련 제품까지 사는 것을 넘어 현재는 애플 주식 보유자가 되었을 정도로 나는 한 가지에 빠지면 그것을 끝까지 알아보고 사용하고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이 덕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덕질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의미한다. 좋은 경험이 핀포인트가 되어 그것이 내 마음속에 사로잡히면 나의 덕질은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것을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나에게 딱 맞는 기술을 찾았다는 생각하게 되었다. "덕질", 참 알수록 매력적이고 지금 내가 잘할 수 있는 기술이라 생각했다.
덕질에 대해 찾아보다가 <갯마을 차차차>의 신하은 작가의 인터뷰 글을 읽고 큰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신하은 작가는 “드라마를 쓰는 게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표정을 보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듯하다. 어떻게 즐거울 수 있을까. “드라마를 쓰는 것도 저한테는 덕질의 과정이에요. 제가 쓴 게 영상으로 구현돼 나올 것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과정도 즐거워요.”
< 출처: 한겨레 21 신하은 작가 인터뷰 글 내용 중 >
"드라마 키즈"라고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로 드라마 덕질을 즐겼던 한 소녀가 지금은 유명 드라마 작가가 되어 위와 같은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나도 덕질에 대한 자부심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고 있으니 나에게도 덕질이라는 기술이 가진 힘이 너무 매력적이고 크게 다가왔다.
조지나 덕에 알게 된 "덕질"이란 기술은 아직 누군가에게 자랑하기엔 부족하다. 이 기술을 알게 된 것만큼 중요한 것은 자유자재로 사용하기까지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떠한 것을 덕질하면서 나의 기술을 연습할 수 있을까? 생각 끝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애플 브랜드를 넘어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덕질 분야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깊은 인사이트를 주는 매력적인 브랜드를 덕질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도 어떻게 보면 내 삶에 깊은 인상을 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올해 2월부터 지금까지 오마카세 글쓰기 클럽 2기 활동하면서 정기적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꾸준한 글쓰기와 브랜드 덕질을 연결해 나만의 기술을 연마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덕질한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나중엔 덕질의 고수가 되어 나만의 책도 출판하지 않을까?
지금은 바야흐로 대기술의 시대
이 시대의 덕질이란 나만의 기술을 가지고 승리할 그날을 고대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