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 소음이 신호가 되는 순간
나는 회사에서 언어를 만든다.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 토파즈를 설계한다.
내 업무는 세상의 모호함을 제거하는 일이다. 명령어는 명확해야 하고, 문법은 엄격해야 하며, 단 하나의 오타도 허용되지 않는다. 정의되지 않은 단어를 입력하면 컴파일러는 가차 없이 Syntax Error를 뱉어낸다.
그렇게 하루 종일 0과 1의 칼날 같은 논리 세계에서 씨름하다 퇴근하면, 현관문 너머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언어 세계가 펼쳐진다. 이제 막 생후 200일이 된 내 아이. 이 작은 인간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가장 비효율적이지만, 기적에 가까운 방식으로 언어를 배우고 있다.
그 시작은 모든 프로그래머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출력해 보는 문장, "Hello World"와 닮았다. 화면에 찍힌 그 짧은 문장이 시스템의 정상 부팅을 알리는 위대한 신호이듯, 내 아이도 지금 그 과정을 겪고 있다.
누워만 있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인가 "아... 우..." 하며 옹알이를 시작했다. 침이 잔뜩 묻은 턱이 들썩이고, 조그만 입술과 혀가 어설픈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생물학적 CPU가 부팅되면서, 입술이라는 출력 장치를 하나씩 테스트하는 과정이다. 나는 개발자의 눈으로 이 경이로운 저전력 고효율 학습 모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 아이의 발성은 아날로그 파동에 가깝다. 울음과 웃음, 그 사이 어딘가의 잡음이 연속된 파형으로 흐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연속된 소리가 뚝뚝 끊기며 [마], [빠], [다] 같은 이산적인 단위로 들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인간 뇌의 토크나이저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컴퓨터가 문장을 이해하려면 흐르는 텍스트를 의미 있는 최소 단위인 토큰으로 잘라야 한다. 아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무한히 흐르는 세상의 소리 파동 중에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그릇, 즉 음소의 경계를 스스로 찾아내 잘라내고 있었다. 겨우 분유 200ml의 에너지만으로 이런 고도화된 패턴 인식이 돌아간다는 것.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서버실의 GPU들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효율이다.
하지만 이 패턴 인식이 진정한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바로 보상이다.
어느 날, 아이가 우연히 "ㅁ...마..."라고 소리 냈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이는 그게 '엄마'를 뜻하는지 모를 확률이 높다. 그저 입술 근육을 뗐다 붙이는 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발생한 출력값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시스템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아내와 내가 물개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 것이다.
"어머! 들었어? 방금 엄마라고 했어! 아이고 우리 천재!"
이 압도적인 긍정 피드백은 아이의 뇌 신경망에 강력한 가중치를 업데이트한다. '어라? 이 근육을 써서 [마]라는 소리를 냈더니, 나에게 밥을 주는 거인들이 웃고 춤을 추네?'
아이는 의도가 있어서 말을 한 게 아니다. 행동을 했더니 보상이 주어졌고, 그 보상을 다시 얻기 위해 의도가 생겨나는 역설적인 학습 과정이다. 기계의 언어는 '정의'가 먼저고 '사용'이 나중이지만, 인간의 언어는 '사용'이 먼저고 '의미'는 나중에 따라온다. 이 비효율적인 순서가 바로 인간 지성의 비밀이다.
물론 개발자로서 나는 이 과정에 수반되는 모호함을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코드 세계에서 함수 call(dad)는 명확한 대상을 호출해야 한다. 호출 대상이 없거나 모호하면 프로그램은 멈춘다. 하지만 아이의 "아...빠..."는 지극히 모호하다. 나를 부르는 건지,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가 축축한 건지, 아니면 그냥 입이 심심한 건지 알 수 없다. 컴파일러라면 진작에 에러 로그를 띄우고 멈췄을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는 멈추지 않는다. 대신 문맥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예외 처리를 수행한다. "우리 아기, 아빠 불렀어? 심심해? 안아줄까?" 기계적 통신은 송신자가 명확해야 성공하지만, 인간의 통신은 수신자의 해석 의지로 완성된다. 아이의 불완전한 신호는 부모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과하며 비로소 완전한 메시지가 된다.
결국 내가 만드는 언어와 아이가 배우는 언어의 결정적 차이는 의미의 출처에 있다.
내가 설계하는 토파즈는 규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곳에서는 정의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의 언어는 정의 이전에 이미 움직인다. 아이는 아직 사전에 적힌 아빠의 뜻을 모른다. 그 단어가 명사인지, 주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며 방긋 웃는 그 눈빛과 함께 터져 나온 "아빠"라는 소리 속에서, 나는 이미 그 단어의 온전한 의미를 발견했다. 사전적 정의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나라는 우주를 뒤흔드는 의미를.
이 거칠고, 모호하며, 느려 터진 200일의 학습 알고리즘. 이것이야말로 훗날 나를 뛰어넘어, 기계적인 정확함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나아갈 인간 지성의 아름다운 부팅 과정이다.
오늘도 나는 0과 1의 세계에서 퇴근해, 무한한 모호함과 가능성이 넘실대는 200일 된 우주를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