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무한 비트레이트

4K 모니터가 흉내 낼 수 없는 흙과 바람의 입자

by TAFO

책상 위에는 최신형 4K 모니터가 놓여 있다.


3840×2160의 픽셀, DCI-P3에 가까운 색역, 그리고 144Hz의 주사율. 스펙 시트만 보면 인간의 눈으로는 더 이상 ‘부족함’을 느끼기 어려운 영역에 도달했다. 화면 속 렌더링된 숲은 경이로울 정도로 선명하다. 솜털 하나, 잎사귀의 잎맥 하나까지 완벽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보는 순간, 그 완벽함은 순식간에 근사값으로 수렴한다.


유리창 너머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본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를 뚫고 산란하는 저 빛의 입자들. 바람에 불규칙하게 뒤집히는 잎의 뒷면과 그 사이로 들이치는 그림자의 춤. 모니터가 보여주던 픽셀 단위의 정교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눈이 먼저 따라가지 못하는, 압도적인 정보량이다.


디지털은 본질적으로 불연속이다.


아무리 해상도를 높이고 샘플링 레이트를 올려도, 그것은 결국 무수히 많은 ‘계단’일 뿐이다. 곡선을 표현하기 위해 픽셀을 잘게 쪼개지만, 계단은 촘촘해질 뿐 계단이라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톱니바퀴처럼 각진 단절이 존재한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듣는 고음질 음원조차 결국은 공기의 파동을 초당 수만 번 잘게 썬 스냅샷의 연속이다. 원본 파동을 디지털로 옮기는 순간, 연속은 ‘점들의 배열’이 되고 그 과정에서 미세한 결이 손실과 오차로 정리된다.


디지털은 효율을 위해 생략하고, 전송을 위해 압축한다.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세상은 손실 압축 알고리즘이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을 우선순위 밖으로 밀어낸 결과물이다. 우리가 보는 건 원본이 아니라, 효율을 위해 남겨도 된다고 판단된 버전일지도 모른다.


반면, 창밖의 세상은 연속이다.


자연에는 픽셀이 없다. 주사율도 없다. 바람은 프레임 단위로 끊겨서 불지 않으며, 노을의 그라데이션에는 밴딩 노이즈가 생기지 않는다. 아날로그의 세계는 0과 1 사이, 그 틈새를 꽉 채우고 있는 실체다. 물리학적으로 무한은 아니겠지만, 인간의 감각에는 무한에 가깝게 밀려온다.


이것은 무한의 비트레이트다.


나는 가끔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가 점점 저해상도의 경험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4K 영상으로 숲을 보며 "와, 진짜 같다"라고 감탄하지만, 정작 숲에 들어가 흙냄새를 맡고 습기를 머금은 바람을 피부로 느끼는 일은 귀찮아한다. 고화질 스트리밍으로 콘서트를 보지만, 현장에서 심장을 때리는 베이스 드럼의 물리적 진동은 잊어버린다.


데이터가 육체를 대체하고, 경험이 콘텐츠로 환원되는 세상. 흙냄새 대신 4K 숲 영상을 택하며, 우리는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삶의 해상도를 스스로 낮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말 아침, 나는 모니터를 끄고 아이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간다.


캠핑 의자에 앉아 멍하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불규칙한 물결, 햇빛에 반사되어 눈을 찌르는 윤슬,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물 냄새. 이 엄청난 대역폭의 데이터를 처리하느라 뇌는 기분 좋은 과부하에 걸린다. 어떤 그래픽 카드도 실시간으로 렌더링할 수 없는, 버퍼링도 렉도 없는 진짜 세상.


디지털은 언제나 원본의 복제이자 근사치일 뿐이다. 진짜 데이터는 서버가 아니라 흙과 바람 속에 있다.


삶의 해상도를 높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접속을 끊고 문 밖으로 나가자.


그곳에 무한의 비트레이트가 있다.


Contax IIa / Tessar 50mm f3.5 / Ilford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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