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연결되지 않을 권리

트래픽 셰이핑, 관계와 몰입의 대역폭 조절

by TAFO

나에게는 직업병이 있다. 멈추지 않는 상태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세계에서 침묵은 곧장 장애로 간주된다. 좋은 서버는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고, 건강한 API는 언제든 즉시 응답해야 한다. 개발자에게 높은 가동 시간은 곧 시스템의 신뢰도이자 미덕이다.


문제는 내가 나 자신에게도 똑같은 기계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은 상시 켜져 있다. 메신저, 이메일, 슬랙... 수많은 클라이언트들이 나에게 요청을 보낸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늘 시간 되세요?", "점심 뭐 먹을까?"


이 요청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연산을 인터럽트한다. 나는 서버가 아닌데, 세상은 나를 언제든 호출 가능한 대기 인력처럼 쓴다. 더 큰 문제는 나조차도 즉시 응답하지 않으면 시스템에 장애라도 난 것처럼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건 잘못된 설계다. 인간은 멀티 코어도 아니고, 무한 전력을 공급받는 데이터 센터도 아니다. 이제 나라는 시스템의 보안 정책을 다시 짤 때가 되었다.


현대인의 일상은 일종의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 디도스 상태와 같다.


악의적인 해커가 없어도, 수많은 알림과 메시지가 내 주의력을 갉아먹는다. 글을 쓰다가 "카톡!" 소리에 시선을 돌리는 순간, 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컨텍스트 스위칭을 시전한다. 개발자라면 이 비용이 얼마나 비싼지 안다.


CPU가 작업 A에서 작업 B로 넘어갈 때, 기존 상태를 저장하고 새로운 상태를 불러오는 과정은 막대한 자원을 소모한다. 사람의 뇌는 더 심각하다. 한 번 끊긴 몰입을 다시 예열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단순히 "답장 하나 보내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잦은 인터럽트가 내 뇌의 캐시를 엉망으로 만들고, 정작 중요한 연산인 본업과 깊은 사유를 처리할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그렇다고 산속으로 들어가 모든 연결을 끊을 수는 없다. 나는 사회적 동물이고, 가장이며, 팀의 리더다. 서비스는 계속 운영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적인 차단 대신, 트래픽 셰이핑을 도입했다. 긴급한 데이터는 빠르게 통과시키고, 덜 급한 데이터는 줄을 세워 천천히 흐르게 만드는 제어 기술이다.


나는 내 삶의 통신 프로토콜을 두 가지로 나눴다.


첫째, 전화와 같은 동기 통신이다. 가족의 위급 상황이나 서버 장애 알림 같은 '긴급 패킷'이다. 이것은 최우선 순위로 뚫어둔다. 언제든 나를 호출해도 좋다.


둘째, 메신저나 이메일 같은 비동기 통신이다. 이것들은 실시간 채팅이 아니라 '편지'로 규정한다. 즉, 보낸 즉시 답을 받을 권리가 상대에게는 없다.


나는 스마트폰의 알림 설정을 거의 다 껐다. 배지 숫자도 보이지 않게 했다. 대신 하루에 세 번, 내가 정한 시간에만 접속해서 쌓인 메시지를 확인한다. 개발 용어로 말하면 배치 처리다. 하나씩 처리하면 비효율적이지만, 모아서 처리하면 압도적인 효율이 생긴다.


누군가는 "연락이 안 돼서 답답하다"고 불평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발자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즉각적인 반응, 즉 지연 시간을 줄이는 데 집착하면 필연적으로 응답의 깊이가 얕아진다. "ㅇㅇ", "확인했습니다" 같은 영혼 없는 패킷만 오고 갈 뿐이다.


반면, 즉답을 포기하고 처리량을 높이면 어떻게 될까?


나는 메시지를 받고 바로 답하지 않는다. 내 뇌가 충분히 그 문제를 씹고 소화할 시간을 준다. 한두 시간 뒤, 혹은 반나절 뒤에 보내는 답장에는 더 깊은 고민과 정제된 해결책이 담긴다.


사람들은 "빠른 답장"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제대로 된 답"이다. 내가 조금 늦더라도 항상 밀도 높은 응답을 주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쌓이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재촉하지 않는다. 나의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다. 더 좋은 응답을 주기 위한 엔지니어링적 최적화다.


평일엔 트래픽을 조절하며 살았다면, 주말 하루 정도는 물리적 망 분리가 필요하다.


어떤 패킷도 도달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만 비로소 라는 내부 서버의 유지보수가 시작된다. 파편화된 디스크 조각이 모이고, 과열된 CPU가 식는다. 이 완전한 로그아웃이 있어야, 다음 주 평일에 쏟아질 트래픽을 감당할 복원력이 생긴다.


기술은 우리를 24시간 연결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연결될지 말지를 선택할 권리까지 뺏지는 못했다. 나는 연결을 끊는 게 아니라, 연결의 품질을 관리하기로 했다.


스위치는 내 손에 있다. 타인의 속도에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클럭 속도로 사는 것. 그것이 이성적 낙관주의자가 자신을 지키는 보안 수칙이다.


나는 오늘도 잠시 로그아웃한다. 당신과 더 깊게 연결되기 위해서.


Leica CL / LLL 50mm f2 / Ektachrome 100 (Monochrome Con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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