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핸드의 미덕

중고이기 전에 취향이라는 미명 하에 운영되고 있습니다

by 태그모어

먼저 제가 태그모어를 운영하며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볼까 합니다.





1)


태그모어 해방촌점에 자주 와주시는 단골 커플 분이 계신데요. 포터 가방을 구매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였을까요. 저에게 인스타그램 DM이 왔습니다.


"사장님, 가방 안에서 이게 나왔어요."


보내주신 사진은 웬 일본 분의 명함. 해당 손님께서 눈앞에 계신 것이 아니었는데도 얼굴이 벌게진 저는 연신 가방 검수를 잘했어야 했는데 죄송하다고 회신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주신 대답은


"이게 빈티지의 매력이 아니겠어요?"


제가 검수를 제대로 안 했다는 사실에 민망하면서도 손님께서 주신 반응에 뭐랄까.. 제가 이 업을 하게 되어 참 행복하다 느꼈던 것 같아요.





2)


태그모어 해방촌점은 커플 방문객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신흥시장 안에 있는 꽃집 '블리스풀라워(BLISSFULOWER)'에서 구매하신 꽃송이이나 꽃다발을 들고선 이곳저곳 구경하시는 커플이요. 그런 유형의 한 커플께서 워크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뭔가 두 분 사이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참 2층에서 열심히 구경하시고 시착도 해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두 분이 결제를 위해 1층으로 내려오셨을 때 남성 분 손에는 나노유니버스(NANO UNIVERSE)의 네이비 색 반바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바스락거리는 나일론 소재감이 시원하여 매력적인 반바지였죠.


저는 아마도 구매를 결정하신 것에 신이 나서 이렇게 말씀드렸던 것 같아요.


"안목이 있으시네요. 핏이 예쁜 반바지이고 사용감도 그리 많지 않아 상태도 매우 좋.."

남성 분께서 살짝 놀라시며 여쭤보셨습니다. "중고인가요?"

"네, 중고 상품입니다."


순간 표정에서 내적 갈등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말했죠. "괜찮습니다. (SECOND HAND라 적힌 1층 창문 시트지를 가리키며) 저희 스토어는 일본 세컨핸드 중고 의류를 판매하는 곳입니다. 중고에 거부감이 있으실 수도 있으니 구매 결정을 번복하셔도 됩니다."


결국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두 분은 나가셨습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분명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3)


태그모어 판교점에서 빗자루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창 너머로 검은색 코트를 입은 누군가가 전자담배를 태우고 있으신 겁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계신 엄청 중견 배우님이 서계신 거예요. '와, 실물이 더 멋지시구나'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허리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전자담배를 다 태우시고는 저희 스토어로 들어오셨어요. 확실히 배우 분의 발성은 좀 남다르신 것 같더라고요. 저에게 인사를 건네시는데 순간적으로 제 자신이 드라마 속에 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꽤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태그모어 옷들을 한참 보시더니 "중고예요?"라고 여쭤보시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지요. 그러자 그러시는 겁니다.


"감안하고 볼게요."


쭈욱 둘러보시다가 레미릴리프(REMI RELIEF)의 체크무늬 울 재킷을 좀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살짝 올라온 보풀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이내 내려두시고는 매장을 떠나셨죠.


해당 배우 분이 매장을 떠나시고는 전 곧바로 '감안'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는데, 헤아릴 감() 생각 안()으로 '헤아리고 생각한다'는 의미로 딱히 부정적인 의미는 없더라고요. 그런데 제게는 감안이라는 말 자체가 뭔가 마이너스(-)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긍정적인 쪽으로 고려해 보겠다는 뉘앙스로 들리더라고요. 이 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지심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4)


태그모어 판교점 오픈한 지 첫날. 한 커플 분이 오셨습니다. 한참 둘러보시다가 고르신 아이템은 푸른 색감이 묘한 마가렛호웰 카드 지갑. 가죽 소재에 박스까지 있는 데드스탁 제품이었고, 표면에 마가렛호웰 로고도 신형 로고가 아닌 구형 로고라 더더욱 매력적인 제품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 보고 오셨어요?”(요즘 판교점에서의 제 단골 멘트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성 분께서 태그모어가 온라인 스토어만 운영하던 시절에 구매해 주신 적이 있는 손님이었던 겁니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개업 떡을 살포시 넣어 드렸지요.


그 이후에도 꽤 여러 차례 와주셔서 감사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오셨을 때는 2022? 23?(아무튼 둘 중 하나였을 겁니다) S/S 그라프페이퍼(GRAPHPAPER) 보더 티셔츠를 구매해 주셨는데 문득 그러시는 겁니다.


"이번에 일본 여행 갔을 때 그라프페이퍼 매장에 갔는데 막상 사고 싶은 것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태그모어에서 이 그라프페이퍼 티셔츠 저번에 한번 입어봤는데 정말 이뻐서 다시 구매하러 왔어요."





물론 물건들이 중고인 점은 분명히 '감안'해야 할 요소가 맞습니다. 하지만 중고라서 누릴 수 있는 명확한 장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 발매가 대비 저렴한 가격

- 이미 사용감이 있기에 부담 없이 막 사용할 수 있음(아끼느라 모시고만 있을 확률이 낮음)


저는 2), 3) 에피소드와 같은 손님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위 두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컨핸드에 대한 거부감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을 구매하고 안 하고는 철저히 개인 판단이며, 감히 타인으로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죠.


하지만 세컨핸드 스토어를 운영하는 입장으로서 이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NEW) 것을 파는 리테일 매장. 그러니까 퍼스트핸드 스토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이런 스토어들은 딱 현재 처해진 그 시즌의 옷들만 커버할 수 있지만, 세컨핸드 스토어는 모든 시즌의 옷들을 커버할 수 있는 환경이라 보다 더 다채롭고 예측 불가능한 재미가 있다는 것이죠. 4) 에피소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메시지가 그런 것 같아요.


"세컨핸드(빈티지)는 단순히 저렴하게 사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는 취향을 고르는 방식이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매우 공감되는 문구였습니다.


태그모어는 일본 세컨핸드 의류 및 잡화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일부 택 달린 새 상품들도 입고가 되지만, 대부분이 중고 상품들이며 사용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용감은 가격을 통해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입는' 의류는 그래도 예민하게 상태를 검수해 입고하려는 편이고, '들거나 메는' 가방은 살짝 너그러운 기준을 갖고 입고를 진행하고 있네요.


더욱 많은 분들이 세컨핸드 스토어를 재미있게 누리는 날을 바라보며 이 글을 마쳐봅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