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시어머니와 몇 번 안 만났다. 상견례, 결혼식, 아버님 칠순 잔치 등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 몇 번 안 만나는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푸근함으로 우리 엄마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 아이가 집에서 살림을 해본 적이 없어서 결혼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요리도 할 줄 아는 게 없고."
사실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다. 나는 집에서 설거지도 몇 번 안 해봤다. 명절 때나 했는데 그때도 너무 뭉기적거려서 작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요리는 어느 날 필 받아서 레시피보고 탕수육 만들어 본 게 최대 업적이다. 이런 치부를 상견례 때 폭로하다니 잔인한 엄마시다. 그런데 엄마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뭣이 걱정,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
그 말이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말로 들렸나 보다. 그 얘기를 내게 수십 번 전하셨다. 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사람 맘을 편하게 하는 점이 있다. 물론 결혼해서 나는 책을 보면서 –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 열심히 꽃게탕, 육개장, 미역국 등 요리를 저녁마다 했고 매일 메뉴가 바뀐다며 남편이 친정 엄마에게 칭찬을 했다.
까다로운 아버님과 살면서 힘드실 법도 한데 어쩌다 전화하여
"아버님이 괴롭게 안 하세요?"
물을 때면
"그래도 내 이렇게 사는데 혼자 있으면 외롭고 무서바서 우예 사노, 쪼메 잔소리가 많아도 나는 그게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심심하지는 않으세요?"
"심심할 틈이 없다. 아침 먹고 요 밑에 산책 갔다 오지, 그리고 갔다 와서 성경책을 공책에 옮겨 적다 보면 또 한나절 간다."
성경책 옮겨 적기를 공책이 다하도록 볼펜이 다하도록 하고, 교회에 가서 성경 퀴즈 맞히는 것을 낙으로 알고 즐겁게 사신단다. 나는 가끔 어머님의 이러한 평안한 성품이 부럽다. 이런 말을 하면 남편도 말한다.
"어렸을 때 새벽에 자고 있으면 엄마가 일어나서 밥하고 반찬 하면서 찬송가를 부른다. 그 소리가 잠결에도 좋았던 것 같아."
남편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장에 나가서 방태이 장사를 했다 한다. 집에서 기른 농작물을 바구니에 담아서 파는 것을 말한다. 도시락에 국물이 샜다 하면 밥을 안 먹고 가져오는 아버님 구미에 맞게 깔끔해야 했고, 젊어서 잠시 개척교회를 하셨던 아버님이 주일 설교를 하셔야 하면 미리 성경 말씀을 연구해놓기도 하고, 교회 반주가 없으면 어떻게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는 실력으로 피아노 반주도 했다고 한다. 결혼을 앞두고 대구에 있는 시댁에 처음 인사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예비신랑인 남편은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거렸다. 갑자기? 나는 놀랐는데 그때 남편은 그간의 어머님 고생을 떠올렸나 보다.
한 번은 기원이가 아주 어릴 때였는데 우리 집에 시부모님이 놀러 오셨다. 마침 주일이라 교회에 가게 되었다. 평소 친정엄마와 우리 식구만 다니다가 이날은 어머님도 같이 가게 되었다. 교회를 마치고 집으로 다 같이 걸었다. 아장아장 걷는 둘째와 다섯 살 많은 첫째가 손을 잡고 제일 앞에서 걷고 그 뒤에 우리 부부와 두 어머님이 걷는다. 아들들 걷는 뒷모습을 보는 것은 부모인 우리도 조모인 두 분도 흐뭇하다. 두 아이 중 누구인지 자신들도 손을 잡고 걸으니 엄마 아빠도 손을 잡으라고 한다. 그래서 손을 잡았다. 오랜만에 손잡아본다. 아이를 낳은 뒤로는 부부가 손잡을 일이 드물다. 아이들 손을 잡아야 하니까. 잠시 후 아이는 할머니들도 손을 잡으라고 한다. 아이의 주문에 두 할머니가 동시에 호호호 웃더니 친구처럼 손을 잡는다. 두 아이, 부부, 두 할머니가 손을 잡고 줄을 지어 봄날, 골목길을 걷는다. 아이들을 보는 것이 좋고, 우리들의 엄마가 웃고 있어서 나는 문득 행복했다. 그날 풍경이 나는 두고두고 흐뭇하여 가끔 기분 꿀꿀할 때 머릿속에서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