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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애인 것 같아?

by 향기로울형

그 애는 우리 반에서 많은 일을 했다. 우선 아이들의 불평불만과 소망을 전달하는 대변인 역할을 했다. 말없이 착한 아이들은 은근히 그것을 반겼을 것이다. 또, 학급이 참여하는 행사에서 아이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했다. 우리 반 에너지 지킴이로 불 끄고 문 잠그는 역할도 했다. 아쉬운 점이 있는데 목소리가 너무 날카로웠다.

"야!! 모여. 모이라고!"

"야!! 연습해 연습하라고!"

"야! 다 나가. 빨리!"

그 애는 목소리가 컸고, 엄격했으며 아이들을 몰아쳤다. 그 애의 이러한 강력한 리더십은 좋은 방향으로 나가기도 했고 그 반대로 움직이기도 했다. 체육대회에서는 치어리딩을 과감히 포기하기도 했다.

"0반이 치어리딩을 안 한다고요? 대박 의외다!"

평소 긍정적이고 수업 시간에 뭘 시켜도 잘해서, '역시 되는 반'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우리 반이 치어리딩 곡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안 맞았던 것이다. 제일 잘 나가는 댄스킹을 소유한 우리 반에서 이런 일은 이변이었다. 그러나 그 애가 아이들의 의견을 모았다면서 내게 딱 잘라 말했다.

"우리 반은 치어리딩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를 모두 모아 체육 종목 연습에 집중했고 그 결과 우리 반이 2등을 했다.

날카롭고 단정적인 말투. 간혹 자신에게도 여지없이 독설을 날렸다.

"오늘 내 꼬락서니가 왜 이래?"

"이런 점수받으려고 그렇게 죽기 살기로 공부했어?"

"멍텅구리처럼 이런 문제를 틀렸어?"

칼이 되는 말을 어떨 때는 반 애들에게 날렸다. 한 번은 교실에서 나는 땀냄새가 이슈가 되었는데 그로 인해 한 남학생은 한 달 동안 자기 자리에 앉지 않고 교실 뒤편 키높이 책상에서 공부했다.(그 남학생 앞자리가 그 애 자리였다.)

어떨 때는 교사에게도 가시 돋친 말을 했다.

"오늘 시간표가 왜 이렇게 구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우리 반 시간표를 봤는데 역사, 수학, 국어가 있었다. 아...

이 말투로 인해 그 애는 본인이 애쓰고 수고한 것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한 번은 반대항 피구 경기를 했는데 그 애가 공에 맞아 아웃되었는데 우리 반 남자아이 몇이 와! 하며 박수를 쳤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만 왜 그런지 알 것도 같았다.


사람은 어느 대상을 한쪽으로 결론 내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아, 그 일은 참 좋은 것이었어, 혹은 아, 그 일은 정말 불행한 사건이었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를 애써 지우려고 한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도 빌런인지 좋은 사람인지 자꾸 판단하고 분류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애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애는 내게 불편감을 주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 헌신하기도 했다. 나는 전자의 증거를 여럿 댈 수도 있고 후자의 증거도 여럿 말할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고 싶은 조바심은 여전히 있지만 그냥 그런 아이인 것으로 놓아두려고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성장 중에 보이는 미숙함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땀냄새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무 속상해서 그 애를 조용히 불렀다.

"A가 학교에 안 왔을 때.... 땀냄새가 안 나서 좋다고 말했다는 것을 들었어. 나도 들었는데 그 애도 그 말을 듣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애가 키 높이 책상에 서서 공부하는 것 같아. 네가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교실에서 공공연하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깊은 상처를 주는 일이야."

아이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말하는 동안 더 속상해져서 목소리에 물기가 있었다. 그런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자연스럽게 A에게 다가가 상처를 풀어주라고 조언했다.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보니 A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 애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 하면 사람은 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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