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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루 May 23. 2024

[시루]노력하지 않고 성공하고 싶어

'갓생'이라는 거짓말

  얼마 전부터 사내강사 일을 하고 있다. 공모를 보고 꽤 오래 고민하다 지원했다. 하고 싶었던 이유는 기존의 업무가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과, 퇴사하지 않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원래 하던 일 때문에 많이 지쳐있던 터라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망설인 이유는 내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한정적이고 얕은지 알았던 탓이다. 모든 도전 앞에서 동기부여가 매우 중요한 나는,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에는 면접 당일에 PT 대본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덜컥 합격해 버렸고, 얼레벌레 그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 후에 어떻게 됐느냐면, 나는 자주 마음이 바닥 치는 나날 속에 있다.


  나는 살면서 크게 실패한 경험이 없다. 뭐든 어렵지 않게 배웠고, 뭐든 적당히 적응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실패에 대한 면역력 또한 없다. 내가 잘하는 게 당연하다는 오만한 생각 탓에, '부족한 나'를 견디지 못한다. 말을 빙빙 돌려 하고 있는데, 그냥 자꾸만 나보다 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는 뜻이다. 우리 회사의 강사는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 어떤 것에 대한 정보가 100이라면 그중 50은 알고 있어야 하고, 나머지 20에서 5만큼을 걸러내어 피교육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냉정하게 나를 평가하기에 나는 겨우 15짜리 사람이다. 그런 내가 운이 좋아서 덜컥 이 자리에 왔고, 그 사실을 들킬까 봐 편히 숨을 쉴 수가 없다.


  매일 뭔가를 바쁘게 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갓생' 산다고 한다. 사실 내가 자꾸 뭘 배우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갓생을 살아서가 아니다. 뭐든지 처음은 쉽기 때문이다. 정말 다 내려놓고 말하자면, 몰랐던 걸 습득하고 또 그걸 어렵지 않게 해내는 초급반의 내가 좋다. 뭐든 평균치 이상으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말이다. 시작이 어렵다는 말은 내게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작은 무엇보다 쉽다. 마음만 먹으면 되니까. 하지만 초급을 지나 중급, 그리고 고급으로 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부터가 진짜 어려운 단계다. 그렇지만 나는 못하는 나 자신을 제대로 견뎌본 적 없기 때문에 뭔가가 어려워지면 빠르게 포기하는 나약한 사람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왜냐면 어릴 때의 나는 큰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적이 없고, 내 영역에서만큼은 대부분 확실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알 수가 없었다. 안 될 거 같으면 포기하면 그만이었고, 간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더 살아 보니 어지간히 잘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더라. 지금 나는 뭔가를 '잘하지 못하는 나'가 낯설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명예욕은 있으면서 적당히 대충 해서 살아보려던 내 앞에 진짜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버렸고, 자꾸만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다. 그럼 그들과 내 사이의 간극을 메꾸려 노력하면 될 텐데 말이다. 노력하지도 않고 인정만 받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이 또 얼마나 추잡하고 보기 싫은지.


  호기롭게 시작했던 이 글 쓰는 작업에도 점점 지쳐가고 있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내 글이 부끄럽지 않았다. 왜냐면 남들이랑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은 것 같았거든. 내가 뭐라도 된 거 같았거든.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땐 다들 어렸고, 다들 시작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특유의 초심자의 행운을 발휘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어른이 되어있어야 할 시기에 한 치도 자라지 못한 것 같으며, 나에 대한 나의 기대치는 높은데 그만한 성과가 없으니 도무지 나를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결국에는 쓰고 있다. 부족하고 비참한 내 자신에 대해서.


  청소년기에 자주 했던 생각이 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으면 된다고,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가면 된다고. 그렇게 매일 다짐했던 그때 내 세상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겠지. 그때처럼 다시 남보다는 나를 생각한다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른인 내가 청소년 시기의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많이 상상해 봤지만, 청소년기의 내가 나를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이 글의 끝에 어린 내가 서 있어 다행이다. 실패하는 내가 창피하고 싫다면 조금만 더 노력해 봐야지. 그 결과가 형편없더라도 노력한 나는 노력하지 않은 나보다 나은 사람인 건 분명한 사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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