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언니가 오늘 한국으로 들어갔다. 이탈리아 상황이 워낙 안좋고 일까지 없으니 한국에 가있는 게 안전하다고, 남편과 아이들과 경유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똑같은 상황에서 나는 여기 머물고있으니, 나를 두고 혼자 가는 게 맘에 걸린다고했다. 처음에 언니가 한국 간다고 했을 땐 의지할 데가 사라지는 것 같아 맘이 많이 휑했다. 자고 일어나면 사망자가 무수히 쏟아지는 곳에 살면서, 함께 두려움과 걱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사실 큰 위로가 되기에.. 물론, 한국 가서도 카톡으로 통화도 할 수 있고 언제든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건 뭘까. 같은 시간과 공간 아래 있다는 뜻일테다. 자주 못보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볼 수가 있다는 뜻이다. 급한 일이 있을 때 도와줄 수 있고, 좋은 일이 있을 땐 당장 만나 밥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전쟁같은 상황 속에선 그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만 쉬고 있어도 큰 위로가 된다. 모두들 집에 갇혀 있으니 만날 수가 없다. 그래도 알 수 있다. 다들 뭐하며 지내는지. 아랫층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마당에 나와 빗자루질을 하고 뚝딱뚝딱 뭘 만든다. 그 집 도우미 할머니는 오늘도 빨래를 잔뜩해서 널어놨다. 윗집 중학생 아이는 오늘도 시끄럽게 줄넘기를 하고, 그집 아저씨는 기타치며 노래를 한바탕 부른다. 선생님들은 똑 부러지는 발음으로 화상수업을 한다. 우리 아이들은 살금살금 빵도 먹어가며 화장실도 들락거리며 강의를 듣는다. 엄마들은 애들 숙제며 강의 연결에 늘 질문이 많다. 수시로 날라오는 엄마들 단체톡만 보는데도 하루가 다간다. 그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인데 이들이 살아있고 숨 쉰다는 게, 이렇게 고맙고 위로가 된 적이 없다. Brescia에 사는 유트버 알베르토는 요즘 매일 매일 in quarantena(자가격리) 영상을 올린다. 집에 갇혀있으면서 어떻게 지내는지, 어머니 요리하는 모습, 강아지랑 침대에서 노는 모습, 마당에서 운동하는 모습..., 대수로울 거 없는 영상이지만 사망자 가장 많은 도시에 살면서 평범하게 무탈하게 지내고 있는 자체가, 보는 이에겐 큰 힘이 된다. 그럼, 한국에 있는, 혹 타국에 있는 이들은 어떤가. 따지고보면 모두가 더 큰 하늘, 지구라는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존재이다. 시 공간이 달라 간혹 멀게 느껴지지만 그래서 더 애잔한 이들이다. 공포스런 뉴스와는 달리, 로마만 보자면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라 정작 여기에 살고있는 나는 괜찮은데, 가족과 친구들이 너무 걱정을 하니 그 점이 무척 마음에 걸린다. '여기, 같은 배를 타고있는 사람들이 있고 함께 풍랑에 맞서 잘 견뎌내고 있다',고 말한들 그들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얼굴을 보고 만질 수 있어야 마음이 놓일테지.. 아무래도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건 기도 밖에 없다. 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은 나를 위해 기도한다. 무사하길..., 무사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곧 기도이다. 살아있어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어느 하늘 아래에 있든, 살아만 있다면 그 자체로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그럼, 생을 달리해 이 세상 어느 하늘 아래에도 없는 존재는 어떤가. 어떤 위로도 주지 못하는가. 아니...영원한 위로를 주는 존재가 바로, 하늘의 별이 된 이들이다. 우리 강아지, 장군이처럼. 장군이는 내 가슴에 별처럼 박혀,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있든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를 다독여준다. 드러누워 배를 보이고 내 품에 파고들진 못해도 사랑하는 마음, 그리운 마음 자체로 말 할 수 없는 위로를 준다.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건 뭘까. 내 마음 속에 누군가가 살아있고, 너무나 보고싶고, 간절히 그립고, 가슴 시리게 걱정이 된다면 그와 나는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