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먼저 기회를 주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외국어 독학

by bellavita

8월이다. 로마는 며칠째 섭씨 37도를 웃돈다. 태양이 어찌나 이글대는지 빨래를 조금만 늦게 걷으면 옷이 마르다 못해 빳빳이 굳어져 개키기가 힘들다.

다음 주면 큰딸아이가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15년 전 8월, 만삭이었던 나는 그렇잖아도 숨이 가쁜데 이탈리아에서 처음 맞는 불볕더위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첫 출산을 앞두고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루빨리 해치우고 가벼운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가득했다. 엎드려 걸레질을 하면 순산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는 더운 와중에도 무릎을 꿇고 바닥을 훔쳐가며 부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기도했다.

말도 안 통하는 이국 땅에서 첫 출산을 하게 됐으니 만에 하나 응급상황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이태리 말로 된 임신 출산 책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려고 했다. 사실 한국말로도 어려운 의학용어라서 단어를 외운다기보단 대충 익숙해진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결혼 전, 이태리 말이라고는 피자와 스파게티 밖에 모른 채 로마에 왔다. 연애시절 남편은 로마에 나는 한국에 살고 있어서 줄곧 국제전화로 데이트를 했고 어느 날 전화로 결혼약속까지 하게 되어 내가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로마로 날아왔다.

처음엔 좀 쉬면서 로마 곳곳을 둘러보고 이탈리아어 학원도 다니며 외국 친구들도 사귈 생각이었다. 한데 짐을 푼 지 두 달도 안되어 큰 아이가 생겼고 입덧과 함께 모든 계획은 무산됐다. 아쉬운 건 둘째치고 말 한마디 못하는데 당장 산부인과를 다닐 일이 갑갑해졌다.

남편도 이태리 말이 능통하지 않아 처음엔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병원에 가면 진료와 검사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한국과 달리 여기서는 먼저 의사를 예약해서 만난 다음 초음파나 피검사를 해오라고 적어주면 따로 검사기관에 예약을 해서 찾아간다. 검사 후 결과가 나오면 그걸 들고 다시 의사를 예약해서 만나는, 한마디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렇다 보니 매번 필요할 때마다 통역할 사람을 구해 약속을 정해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혼자 해보기로.

지금 같으면 유튜브에서 이태리 말로 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영상부터 찾아봤겠지만 당시엔 집에 인터넷 자체가 없었다. 스마트폰도 당연히 없으니 번역기를 돌릴 수도 없고, 가진 건 종이로 된 이태리어 사전과 문법책 한 권뿐이었다. 일단 서점에 가서 임신 관련된 책을 한 권 골랐다. 환자가 질문을 하면 의사가 대답하는 식으로 구성이 책이라서 실제 회화에서 질문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가 있다. 자궁. 양수. 태반.. 같은 단어에 줄을 치고 한국말로 적어놓고 외우기도 하고 메모장에 단어를 모아 정리도 해놓았다. 문제는 관련 단어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해서 의사 말을 다 알아들을 순 없다는 것이다. 이제 이태리에 온 지 반년도 안됐으니 듣기가 돼봤자 얼마나 되겠나.

혹시 의사 말을 못 알아들어서 꼭 받아야 하는 검사를 놓치는 바람에 태아에게 불상사가 생기면 어쩌지..? 걱정이 됐다. 그래서 한 번은 의사를 만나는 날 책상 위에 조심스레 소형 녹음기를 올려놨다. 휴대전화에 녹음 기능이 없던 시절이다.

"내가 이태리 말을 잘 못해서요. 혹시 아이에 관해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녹음을 해서 이태리 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들려주려고요"라고 더듬대며 준비해 말을 했다. 미소가 예쁜 여자 의사는 처음엔 녹음기를 보며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가 환히 웃으며 "아유 됐어.... 별 거 없어" 하고는 평소보다 더 천천히 또박또박 진료를 봐주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이태리 말도 쑥쑥 늘면 좋으련만 좀처럼 말문이 트이지 않는다. 외국어는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만 늘지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다. 무거운 몸으로 학원도 못 다니고 인터넷도 없으니 내 나름대로 아날로그식으로 학습했다. 문법책을 한 번 완주한 다음 못 알아들어도 TV를 틀어놓고 쉬운 소설책을 사서 읽었다. 지문은 어차피 어려우니 소설에 나온 대화를 읽고 필사하며 표현을 익혔다. 아이를 낳고 나면 시간이 없겠다 싶어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감사하게도 건강하게 출산을 했고 2박 3일 동안 병원에서 간간히 못 알아들어서 헤매긴 했지만 크게 곤란한 일 없이 퇴원을 했다.

무사히 아이가 태어났으니 한숨 돌릴까 싶었지만 웬걸 또 다른 산이 버티고 있다. 예방접종도 해야 하고 소아과도 가야 되고 이번엔 육아책을 한 권 사서 밑줄을 긋기 시작한다. 아이가 자라서 유치원에 가니 선생님과 다른 엄마들이랑 얘기도 해야 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숙제도 봐줘야 하고 때론 관공서도 가야 하고... 그때마다 새로 익혀야 할 표현들이 수두룩이다. 로마에서의 생활 자체가 이태리어 학습의 연속인 셈이다.

바보 같이 못 알아듣고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못 할 때마다 '아, 누가 매번 내 옆에서 통역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바라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통역사로 내세웠다. 실력은 형편없어도 내 사정을 가장 잘 는 이는 바로 나이기에 처음부터 나를 믿어 보기로 했다.

버벅거려도 내 입으로 말하고 못 알아들으면 다시 말해달라고 하고.. 실제 상황에서 써먹은 말은 틀리든 맞든 반드시 머릿속에 남는다. 순간의 창피함만 이겨내면 그만큼 실력이 는다는 사실. 내가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일이다.


큰아이가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니 내가 로마에서 산 세월도 그만큼이다. 이태리 말은 늘 공부해도 늘 부족하다. 여기서 태어나 이태리어를 모국어로 쓰는 아이와 비교하면 나는 겨우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그러면 또 어떤가. 어차피 외국어라는 게 그럴싸하게 흉내를 내어 대화가 통하기만 하면 되지 않나. 조금만 뻔뻔해지면 엄청 유창하지 않아도 외국 생활이 자유로워진다.

집안 살림이란 게 매일 열심히 해봤자 표는 안 나면서 하루만 거르면 집이 엉망이 되듯 외국어 공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나름 한다고는 하는데 눈에 띄게 늘지도 않고 조금만 게을리하면 알던 것도 금세 까먹는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다.

요즘은 인터넷에 어찌나 쓸만한 학습 자료가 넘쳐나는지 처음 로마에 왔을 때 이런 조건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이태리 말을 훨씬 쉽게 배웠을 텐데... 살짝 억울한 마음까지 든다.

여태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훈련을 하다가 이제야 주머니를 떼고 달리는 기분이랄까.

- 그동안 무식하게 공부하느라 애먹었지. 이제 멍석 깔아줄 테니 실력 좀 업그레이드해봐..!

나 자신을 다독이며 독학하기에 좋은 콘텐츠를 골라 무한히 제공하는 중이다. 오늘보다 더 자유로운 내일을 꿈꾸는 나, 서툴어도 꾸준히 성장하는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가길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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