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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Sep 07. 2023

중국에 집을 지으러 가다

 요즘에 탕후루라는 괴랄한 음식이 유행하고 있다. 건강상의 우려도 크다고 하고 길바닥 오염도 심각하다고 한다. 그 기사들을 보니 여름철에 중국에 집을 지으러 갔던 젊은 날이 떠올랐다.


 12년 전의 일이다. 군 전역 후 복학을 했을 때 교수님께서 복학생들 손을 들어보라고 하시더니, "역전의 용사들이 돌아왔군"이라고 하셨다. 지금도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맴돈다. 역전의 용사들이라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들 같지 않은가.


 "역전의 용사"인 이상 이냥저냥 살아갈 수는 있나. 학업도 학업이었지만 나는 대외활동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그때 한창 핫했던 대외활동이 있었다. 바로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청년 봉사단 해피무브였다.


지금도 하긴 하나보구나. 해피무브


 이력서를 넣고, 현대기아자동차 본사에 가서 면접을 봐서 대학생 봉사단을 뽑는데, 그 당시 경쟁률이 정말 치열했다. 얼핏 기억하기로는 40:1 정도가 된다고 들은 것 같고, 우리 과에서도 많은 선배들이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교수님들의 은총을 받는 학생들은 방과후에 따로 모여서 해피무브 자소서 특강을 듣고 첨삭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래도 우수수 떨어졌다. 지금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2010년대 초반에는 정말 핫했다.


 나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뭘 그렇게까지 하나 생각했다. 나름 성적도 좋고 술도 잘 먹고 새벽에 등교하는 성실한 복학생이었다. 교수님께서 지원할거면 도움을 받으라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던 나는 거절하고 그냥 진정성있게 자소서를 써서 제출했다. 그리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교수님께 특강 및 첨삭을 받은 친구들은 죄다 떨어지고, 나만 서류 합격하여 본사로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대학생들이 해외 봉사활동을 가겠다고 지원했는데, 경력상의 차별점이 뭐가 있겠는가. 그 당시 해피무브 면접은 "100초 스피치"가 가장 중요했다. 면접을 시작하면 한 사람씩 100초의 시간 안에 자신을 어필하는건데 말이 좋아 100초 스피치지 그냥 자기소개다.


 대학생들은 튀고 싶어서 별 짓을 다했다. 파라오 분장을 하는 사람, 아바타 분장을 하는 사람, 100초 스피치 내내 아무 말도 없이 팔굽혀펴기만 한번도 안쉬고 하는 사람 등등.


 나는 그렇게 하기 싫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주자 싶었다. 깔끔한 흰 카라티에 청바지를 입고 갔다. 대신에 100초 스피치 대본을 진지하게 작성해서, 그걸 하루에 100번씩 무식하게 연습했다. 화이트보드에 바를 정자를 그려가며 연습했다.


 대본을 출력해서 강세를 줘야 할 부분 등에 밑줄을 긋고 거울을 보며 계속 연습한다. 어느 순간 외우기 싫어도 외워진다. 그럼 그때부터 종이 없이 연습한다. 그러다보면 실전에서 뇌는 잊어도 입이 기억하기 때문에 알아서 술술 나온다.


 이런 식으로 무난하지만 확실하게 100초 스피치를 준비했고, 나는 면접에 합격할 수 있었다. 시건방진 소리지만 같이 면접 본 친구들의 스피치를 듣자마자 내가 합격할 것임을 직감했다. 나도 거기서 팔굽혀펴기를 한다던가 웃긴 분장을 시도하는 변칙적인 전략을 시도할 수 있었겠으나 그냥 우직하게 정면돌파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


합격하고 너무 좋아서 캡쳐해두었다


 하지만 정석적인 방법으로 정면돌파를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순수 실력으로 압도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루에 100번씩 빈 강의실에서 자기소개를 연습하던 그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 노력으로 성취를 이룰 수 있던 열정을 가지고 있던 그때가 그립다.


중국에서 열심히 집을 짓는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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