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 Feb 20. 2019

로마의 숨어 있기 좋은 방,
보르게세 공원

이탈리아 여행기 #01.

 ‘댕- 댕- 대앵-’ 늦은 아침. 교회에서 치는 묵직한 종소리에 눈을 떴다. 삐그덕. 영화에서나 보던 목제 여닫이문을 바깥으로 활짝 열어젖히니, 로마 풍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렇다. 로마, 그곳에 내가 있었다.


 2016년 여름, 야심 차게 입사했던 회사에 호기롭게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로마의 한 싸구려 호텔 1인실에서 눈을 뜬 것이다. 혼자 유럽까지 날아간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며 보냈던 이탈리아에서의 8박 9일. 그 시간 중 어느 한 부분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 봄날 가장 생각나는 곳은 단연 ‘보르게세 공원’이다.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바라 본 보르게세 공원 입구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베르니니 작품에 기를 빨리고 나오니, 한여름의 지중해 볕이 땅에 처박히고 있었다. 그 강렬한 볕 앞으로 펼쳐진 보르게세 공원 초입의 비주얼에 유유자적함이 가득했다. 14시간 비행의 여독이 남은 상태로 북적이는 로마 관광지를 활보하고 다닌 탓일까. 유유자적함에 대한 갈증이 가득했던 이 여행자는, 보르게세 공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로마 현지인들이 유모차나 개를 끌고 나오는 곳. 나무 그늘에 아무렇게나 누워 혼자 책을 읽는 곳. 헐렁한 민소매를 입고 특별한 목적 없이 달리거나 시시껄렁한 오후를 보내는 곳. 그곳이 바로 보르게세 공원이었다. 과연,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로마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는 설명에 썩 잘 어울렸다.  

 20여 분 정도 걸었을까. 한 이탈리안 청년이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웃지마, 정들어. 그가 영어나 이탈리아어로 말을 걸까 긴장한 찰나, 그의 입에서 나온 언어는 ‘안녕하세욥!’. 하하하하. 벼락치기로 암기해간 이탈리아어 인사로 화답하고 나니, 온몸에 기분 좋은 에너지가 돌았다. 퇴사를 마음먹었던 즈음 이후로, 참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었다는 걸 깨달았다.


 

 공원 깊은 곳까지 더 걸어, 그늘 밑 나무 벤치에 몸을 던졌다. 큰 나무로 둘러싸인 이 둥지 같은 공간이 마음을 더 편안하게 했다. 그때, 몸집이 제법 큰 바람이 둥지로 다가와 나무들을 흔들었다. 촤르륵 촤르륵 수십 그루의 나무가 내던 그 탬버린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숨 가쁜 일정에 치이고 전 세계 관광객에 치여, 관광지 로마가 아닌 마음을 잠시 뉠 수 있는 로마가 필요한 순간. 보르게세 공원은 내게 완벽한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공원에서 2시간 반 동안 머물며 받은 에너지가 없었다면, 남은 이탈리아 여정은 지금의 결과처럼 퍼펙트하지 못했을 거라 장담한다. 서울의 삶이 숨 가쁘게 느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 숨어 있기 좋은 방이 절실하다.




덧) 여기도 놓치지 말자, 보르게세 미술관


 서로 마주하고 있는 보르게세 미술관과 보르게세 공원은 짬짜면 같은 곳이다. 이 미술관엔 다양한 작가 작품이 있지만 베르니니의 카리스마가 특히 압도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