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중견기업에 근무할 때였다.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대기업에 파견 나가 근무했다. 어느 날 고객사의 기획팀에 신입사원이 한 명 입사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경우에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신입사원은 OJT(On the Job Training) 등을 통해 업무를 배웠다. 사소하고 궂은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기획팀장을 비롯한 부서원들은 신입사원에게 힘든 업무를 시키지 않았다. 나이 많은 직원들은 신입사원에게 별다른 통제를 하지 않았다. 기획팀의 J대리는 그 이유에 대해 신입사원이 부사장님 친척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입사원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으니 이해가 되었다. 또한 신입사원이 회사생활을 편하게 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회사에서 빽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장님, 부사장님 빽은 아니더라도 상무님이나 이사님 빽이 있었으면 좋겠다'
중견기업을 다닐 때 가끔씩 이런 상상을 했다. 빽은 연줄의 속된 표현이지만 직원들 간에 종종 사용하던 말이었다.
'직원수가 팔백 명이나 되는 회사에서 나처럼 평범하고 상사들과 교류도 적은 직원이 임원들의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회식할 때 가끔씩 이러한 생각을 했다. 직원들은 회사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었다.
"우리 팀은 K부사장님 라인인데 K부사장님이 잘리고 L전무님이 부사장님으로 승진하셨대요. 내년에 우리 팀이 와해되면 어쩌죠?"
어떤 직원은 이렇게 걱정스러운 말을 하고
"저도 그 직원처럼 연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어떤 직원은 부러움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만 성실히 하고 있는 평범한 직원들은 해가 바뀌면 일어날 전망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하곤 했다. 급여나 직원 수가 중견기업에 비해 훨씬 미흡한 중소기업은 직원들 간의 연줄에 대해 별로 민감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름 있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달랐다.
중견기업에 다닐 때 연줄이 있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사를 해보니 별로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직장 다닐 때 연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 번쯤 해 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