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남의 보라카이 7박 8일 여행기(1)

비행이 두렵다

by 선명이와 지덕이

나는 소심남이다. 소심한 A형의 남자다. 조심성이 많고 대담하지 못하다. 낯선 곳을 경험할 때 액티브(Active)한 활동을 싫어한다. 반대로 유적지를 조용히 산책하거나 쇼핑하는 것을 좋아한다. 바다에서 윈드서핑을 하거나 보트 타고 가다가 바닷속에 뛰어들 즐기는 호핑 같은 것들은 나와 맞지 않는다. 그래서 TV 홈쇼핑에서 광고하는 보라카이 여행을 보더라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내는 해외여행을 좋아한다. 외국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는 결혼 후부터 줄곧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나라에 가고 싶어 했다. 작년 말에도 그랬다. 아내는 베트남 푸꾸옥과 인도네시아 발리, 필리핀 보라카이 중에서 한 곳을 가자고 말했다. 세 곳을 비교하며 저울질하더니 결정한 듯 올해 초부터는 보라카이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세 곳 중에서 가장 거리가 가깝고 비용이 적게 드는 곳이 보라카이라는 것이다.


아내는 나와 달리 여행할 때 액티브한 활동을 싫어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하늘 높이 오르는 열기구를 타거나 호핑을 하기 위해 바닷속에 뛰어드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이런 활동들은 내가 무서워서 꺼리는 것들이다. 보라카이는 세계적인 휴양지 중 한 곳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바다 위에서 액티브한 체험을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액티브한 활동을 좋아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곳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2026년 1월, 보라카이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최근에 아내가 그로록 가고 싶어 하는 보라카이에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비행기표를 예매한 것은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날 아침이었다. 이전까지는 경제적인 이유와 하고 있는 일 등을 핑계 대며 보라카이로 여행 가자는 아내 의견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외여행을 계속 미루다 보면 작년처럼 어영부영 일 년이 지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내는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며 갑작스레 비행기표를 예매해 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오빠. 내일 함께 보라카이 가요"


출발 당일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준비하느라 피곤하겠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한 아내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보라카이로 가려면 티웨이 항공사나 필리핀 항공사가 운항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아내와 나는 필리핀 항공사가 운항하는 비행기표를 발권했다. 그런 후 항공사 직원을 통해 화물칸에 보낼 수하물을 부쳤다.


필리핀 항공 비행기 탑승 장소가 탑승 게이트에서 꽤 떨어져 있다는 것을 몰랐다. 예전에 대한항공 탔던 것만 생각하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던 아내는 늦은 것 같다며 뛰자고 말했다. 탑승완료 시각이 오전 8시인데 8시 넘어 비행기 내에 들어갔다. 늦어서 뛰었으니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휴~. 놓칠 뻔했네요"


아내가 말했다. 아내와 나는 미리 여행을 구체적으로 세워놓고 그것에 맞추어 실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과거에 몇 번 낭패를 볼 뻔한 적이 있다. 여권이 있을 거라 생각하다가 기간 만료된 걸 확인하고 신혼여행 가는 날에 부랴부랴 구청에 찾으러 갖던 적도 있었고, 태국 방콕에 여행 갔을 때는 귀국 날을 착각해 비행기를 안 탈 뻔한 적도 있었다.


"다행이에요"


아내에게 말했다. 비행기는 에어버스사의 A320 기종의 비행기였다. 비행기는 중앙에 긴 복도가 하나 있고 복도를 기준으로 양쪽에 좌석이 세 개씩 놓여 있었다. 오래 비행하지 않는 노선이라 그런지 비행기 크지 않고 아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 항공사의 비행기인데 주변 승객들을 보니 다수가 한국인 같았다. 주위에 한국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준비한 것들이 있다. 다이소에서 산 귀마개와 모자이다. 귀마개를 준비한 이유는 비행기 엔진소리에 예민한 청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모자를 준비한 이유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 중에 창 밖을 최대한 안 보고 싶어서다. 비행기를 몇 번 타보니 편안한 여행을 하기 위해서 이런 준비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전 8시 반이 되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동 경기에 비유하자면 경기 전 준비운동 단계랄까. 천천히 움직이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속도를 내며 이동할수록 진동이 더 느껴졌다. 이륙할 장소에 다다르자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귀마개를 양쪽 귓속에 집어넣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눈을 감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는지 갑자기 부웅하고 뜨는 느낌이 들었다. 심하게 느껴지던 진동도 덜 느껴졌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복도를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보였다. 비행기가 하늘 상공에 올라가서 날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공중에 뜨는 것은 비행기 날개의 특별한 모양과 공기 흐름 때문이다. '베르누이의 원리'라고 하는 과학적 원리에 따르면 공기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지고 속도가 느려지면 압력이 높아진다. 비행기 날개는 위쪽이 더 볼록하게 솟아 있고 아래쪽은 평평한 형태를 띠고 있다. 비행기가 앞으로 나아갈 때 날개 위쪽을 흐르는 공기는 아래쪽 공기보다 더 긴 경로를 따라 이동해야 하므로 속도가 빨라진다. 반대로 날개 아래쪽을 흐르는 공기는 짧은 경로를 지나며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진다. 이 속도 차이로 인해 날개 위쪽의 공기 압력은 낮아지고 날개 아래쪽의 공기 압력이 높아진다. 공기는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이로 인해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비행기의 엔진 소음이 들렸다. 귀마개를 하고 있어서인지 작게 들렸다. 비행기가 순항하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승무원들이 푸드 카트를 미는 모습이 보였다. 승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귀마개를 귀에서 빼 보았다. 식사를 하려면 승무원에게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엔진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치 폭포 소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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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무원이 카트를 멈춰 새우고 옆에서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았다. 영어회화를 거의 못하지만 메뉴판에서 음식을 선택하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내는 김치볶음밥을 나는 비빔밥을 먹겠다고 말했다. 비행기가 순항할 때는 비행기의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사무실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가끔씩 비행기가 흔들릴 때는 약간씩 긴장되었다. 특히 흔들림이 지속될 때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영어로 말하는 기내 방송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방송 내용 중에 터뷸런스(Turbulence)라는 단어는 알아들었다. 터뷸런스란 항공 난기류를 뜻하는 단어로서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통과하고 있다는 뜻이다.


"승객 여러분.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자리에 앉아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꼭 매시기 바랍니다"


영어 방송 후 곧바로 한국어로 방송이 나왔다. 아마도 한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라 그런 듯했다. 아내 자리와 내 자리는 비행기 맨 뒤쪽에 있는 화장실에서 가까운 복도 쪽 자리였다. 나는 비행기 엔진 소음과 흔들림에 민감해서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잤지만 아내는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열심히 자고 있었다. 내 오른편에는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와 아이가 앉아 있었다. 곁눈질로 보니 아빠와 아들 같아 보였는데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창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몇 시쯤 되었을까 궁금했다. 아내가 깨어났다. 시간을 물어보니 이륙한 지 4시간이 넘었다는 것이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목적지인 칼리보 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을 제자리로 해주시고 창문을 열어 주십시오. 안전을 위해 도착 시까지 안전벨트를 반드시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승무원들은 승객 여러분의 좌석과 테이블이 제자리로 되어 있는지 창문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고 도와 드리겠습니다"


기내 방송이 나왔다. 착륙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승객과 승무원들은 닫았던 기내 창문들을 모두 열었다. 기내는 조용해졌고 모든 조명이 꺼졌다. 나는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눈을 감았다. 비행기가 쑤욱 쑤욱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바이킹을 타는 것 같았다.


승객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비행기가 칼리보 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보라카이 섬까지 가려면 버스로 두 시간을 간 후 배를 타고 십여분을 가야 한다. 남들은 비행기 타면 창밖을 보며 즐거워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비행이 두려울까.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듣고 창밖을 보는 것, 착륙할 때의 바이킹 타는 듯한 느낌이 싫다. 그래도 칼리보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내와 함께 십 년 만에 다시 해외여행을 시작한다. 이제 즐기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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