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작은 아이를 등교시키기 위해 아침식사를 정성스레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늘 바쁘고, 늘 같은 일상이다.
퇴직한 지, 1년 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내가 유일하게 잘 하고 있다고 뿌듯해 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재직 중엔, 항상 내 채비해서 나가기 바쁜 터라 전날 퇴근할 때 대충 업고 들어가는 빵부러기나 그도 준비 되지 못할 땐, 우유에 씨리얼을 타먹이곤 했었지만, 이젠 밥과 국, 적어도 단백질이 있는 즉석 요리가 들어간 3찬은 내 놓고 아이를 정성스레 먹인다.
식사를 다 하고 나면, 치우기도 전에 차로 아이를 등교시켜 준다.
이 또한 재직 중엔 불가한 일이었던 탓에 내가 더 '집착'하며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고학년이 된 둘째가 충분히 걸어가고도 남을 거리이지만, 동간 거리가 넓은 옛날 아파트이기도 하고 저학년 때에도 직접 등교시켜주지 못한 미안했던 마음에 태워다 주기 시작했다.
오늘은 조금의 부지런을 떨었던 탓일까.
왠일인지 아이 등교 시간까지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여유 있는 아침 시간이 무언가 어색했다.
뻘쭘하기까지 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개수대의 그릇들.
바로 고무 장갑을 끼고 물을 틀었다.
냉수와 온수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찰나,
며칠 전,
오랜만에 근처에 살고 있는 옛 동료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녀 역시 퇴직 후, 별다른 구직을 하지 않고 있었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케어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언니! 나는 애들 학원 보내는데 쓰는 돈은 하나도 안아까워.
그녀와 나는,
근처 코다리조림 집에서 아직 나오지 않은 메인음식 코다리를 기다리며, 먼저 나온 푸짐한 밑반찬에 젓가락을 넣고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역시나 첫번 째 화두는 돈. 돈. 돈..
사실, 경제적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벌이가 없어진 사람들은 다들 동감하지 않는가.
특히나 맞벌이를 하며 소비하는 데에 전혀 망설임이 없던 처지에서 외벌이로 신분이 바뀌었을 때 가장 먼저 눈돌아가는 가계 항목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원비'라는 것을..
하지만, 내 동료는 사교육비로 나가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퇴직금의 일부를 이미 아이 학원비로 따로 빼 놓았다면서, 아이가 대학갈 때까지 학원비는 걱정없다고 했다. 게다가 대치동 거주자보다 더 대치동 학원정보를 많이 꿰뚫고 있는 그녀가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여기 코다리가 참 실해. 어쩜 밑간도 입맛에 딱 맞는지 모르겠어.
우리가 학원 얘기를 하며 밑반찬으로 배를 먼저 채우고 있던 와중, 늦지 않은 타이밍에 메인 음식인 코다리 조림이 뜨끈뜨끈한 김을 내며 우리 각자에게 놓여졌다.
대치 지점에 근무했었던 그녀는 이 근방 맛집들을 잘 알고 있다. 가끔씩 이 동네 음식들이 생각나면 나에게 연락을 해왔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엔 그녀를 만나곤 한다.
이 집은 넓지 않은 공간이라 테이블 간격이 거의 떨어져 있지 않다. 붙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반 백반 집의 형태로 밑반찬들이 이미 세팅되어 있으며, '코다리조림' 단일 메뉴 식당이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으면, 명수에 따라 자동반사적으로 코다리 인분이 정해 지는 곳이다.
다닥다닥 붙어 먹고 있는 우리 옆테이블 4명의 남자 회사원들.
누군가 신혼 얘기를 꺼냈던 것 같은데, 분명 신혼인 남자가 있는 듯 했다.
-난 진짜 와이프랑 싸우는 게 설겆이야. 내가 온수면 온수, 냉수면 냉수 딱 구분해서 닦으라 하는데 우리 와이프는 냉수인지 온수인지 모를 딱 중간. 미지근한 물로 설겆이를 한단 말이지. 그럼 온수 계량기로 비용이 올라갈테고, 기름진 그릇은 그릇대로 제대로 안닦일거 아니냐고. 찬물로 닦아야 할 땐 확실하게 냉수, 뜨거운 물을 써야할 땐 완전히 온수.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하는지 모르겠어.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퇴직을 한지, 1년하고도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직할까 노력도 해봤고, 노선이 달라진 이전 동료와의 비교 때문이라도 경제적 활동을 위한 '알바'라는 것도 알아봤던 날들이 있었다.
늘 갈팡질팡.
하지만, 결국 내가 그간 치열하게 고민했던 생각과 달리 행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다시 나가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겠다.)
지난 날, 일하기 싫었던 그 곳으로 나를 다시 집어다 놓기에는 내 인생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난, 감사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또 다시 내 마음을 무시한 채, 그렇게 함부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냉수와 온수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찰나,
오늘 아침엔 닭을 볶은 팬이 있으니 바로 뜨거운 온수로 틀었다.
미지근한 물로 이도저도 아닌 비효율적인 설겆이는 이제 그만.
한없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외치며, 치열하게 하지도 않아가면서, 밤에 누우면 '알바몬'을 찾는 일은 이제 더 이상 하지 말도록 하자. 냉수 온수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로 살아가기엔 내 삶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흘러갈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