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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Sep 10. 2023

마라탕을 먹는 아이들

학원가를 배회하는 아이들의 식사

이틀에 한 번 꼴로 본 레벨테스트.

장장 3시간에 걸쳐 초집중을 해야 그나마 들어갈까말까한 턱높은 학원의 시험을 기특하게도 잘 치르고 나온다.

한 번씩 보고 나올 때마다 아이의 얼굴은 수척해졌지만, 그래도 도도한 대치동 학원가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


한 주에 3번이나 긴 시간에 걸친 레벨테스트를 마친 나의 둘째는, 테스트를 마치고 나오며 힘들어 하면서도 어느 학원을 꼭 가고 싶다고 집어 말했다.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한 건 여느 부모의 마음과 같을 성 싶다.


일단 영어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입학테스트의 수준은 꽤나 문턱이 높아 보였다.

아이의 피드백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나름 홈스쿨로 다져진 기본기 외에 추가적으로 살을 붙였어야할 수준높은 어휘와 긴문장들이 아이의 리딩을 발목잡은 듯 했다.

토플수준의 단어들이 즐비하게 나온 걸로 봐서는, 사실상 이 곳 초등 아이들이 토플 중심으로 현재까지 수준 높은 공부를 이어갔다고 보는 게 맞겠다.


아이는 유독 한 학원을 가고 싶어했다.

그 학원은 대치동 메이저 초중등학원이었다.

4대 영역을 두루 짚어주는 커리가 마음에 쏙 들었고, 일단 이 학원의 열차에 올라타면 자연스레 수능1등급 최종 목적지까지 무난히 다다를 수 있다고 정평난 탓에 나 역시 이 학원에 보내고 싶어 안달난 애미 중에 한명이었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한다.


아이가 자신의 친구 중 유일하게 선망하는 한 명이 이 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두번의 낙방 후에 가까스로 레벨테스트를 통과하여 들어간 아이는 그 어려운 공부와 숙제를 한 번도 빠지거나 밀림 없이 줄곧 6개월간 지속했다고 들었다.

결국 그 친구의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본 나의 둘째는, 본인도 그 학원에 들어가서 한 번 치열하게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었다.


학원의 좋은 자료와 커리큘럼, 훌륭한 강사가 학원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나의 아이가 말한 주변 친구로부터의 영향이 실로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렇게 내가 바랬던 '동기부여 그 잡채(?)'라는 것이다.

특히나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동년배 친구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찰나이기도 했다.

남들과 공부 진도를 비교하기도 하고, 그들보다 앞서 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하는 시기이다 보니, 내 아이가 그 학원에 꼭 들어가고 싶었던 것도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애기~ 수고 많았어. 뭐 먹고 싶니?


조금의 지체도 없다.


마라탕!!




마라탕.

3년 전부터 10대 여학생들에게 폭풍적인 인기를 얻는 메뉴이다.

D.I.Y방식이기도 해서 본인이 먹고 싶은 재료만 담을 수 있는 장점도 있고(편식하는 아이에겐 최고의 선택지일듯), 알싸하고 혀끝을 마비시키는 듯한 매콤한 맛은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인 음식이어서 '마라 열풍'이 인 것일까.


최근 학원가 도처에 마라탕 식당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그 수많은 마라탕집들 모두가 학원 수업 시작 전후에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마라탕을 먹으러 온 아이들 틈바구니 속으로 겨우 발을 비비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서는 재료 담는 바구니를 들고, 나의 아이와 이것저것 각자의 바구니에 재료를 담아낸다.

모두 담아 중량을 재고 가격이 책정된 후, 추가로 고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맵기 단계를 말하면 끝.

고생한 아이를 위해 좋아하는 '꿔바로우'도 함께 주문했다.


자리로 돌아와 식당 테이블에 앉아 두런두런 수다를 떨며 먹고 있는 초중등 여학생들로 눈이 갔다.

그러다 유독 작은 테이블에 홀로 앉아 벌건 기름 국물에 재료 가득 담은 마라탕을 아주 맛드러지게 먹고 있는 작은 남자 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기껏해야 초등 1~2학년으로 보이는 작은 남자 아이.

그것도 혼자 와서는 후루룩 후루룩 뜨거운 국물에 빠진 분모자를 크게 한모금 베어먹고는 국물 한 모금을 들이키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짠하기도 했다.

대략 그 아이의 부모는 맞벌이일 가능성이 커 보였고, 아이는 학원시간 전후로 하여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인게 분명해 보였다.


딱봐도 공부만 하게 생긴 수수하고 모범생같은 외모를 가진 그 남자아이는, 먹다 눈치보다 먹으면서 눈치보다를 반복하며 그 많은 양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일어나 책가방을 멘 후, 테이블 의자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유유히 식당 밖으로 사라졌다.






입안을 알싸하게 만들며 가장 매운 단계인 4단계를 시켜 눈물 콧물 쏙 빼고 올킬했던 마라탕.

단짠단짠에 걸맞게 시켰던 달콤 바삭, 뜨겁디 뜨거워 입천장 데일뻔했던 꿔바로우를 함께 먹으며, 작은 아이보다 내가 스트레스를 한방에 해소시킨 듯 했다.


사춘기가 찾아온 10대 학생들의 최고 식당.

이 곳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신나게 고민을 수다로 발산하고 한껏 풀고나면, 또다시 에너지를 얻고는 그 어렵고 힘든 공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게 아닐까.


한 때, 식품 위생문제와 유통기한 문제로 시끄러웠던 만큼 우려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적어도 공부로 힘들어진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소울푸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발 음식장난치는 버릇은 더이상 개나 줘버렸음 한다.


오늘도 학원가를 배회하는 아이들.

공부스트레스를 힘껏 날려 버릴 수 있는 '마라탕'이라는 음식으로 그들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훌륭한 저녁식사가 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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