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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Oct 15. 2023

학군지에 ‘학폭’없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더 지능적인 아이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고 흥미로웠던 종목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 배드민턴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취미로만 쳤었던 배드민턴이 경기에서 이리 손에 땀을 쥐며, 흥분감을 느끼게 해 줄 종목일 줄이야 진정 몰랐었다.

셔틀콕을 받아내며, 아슬아슬하게 랠리가 이어질 때의 긴장감은 나를 짜릿한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학창시절 뜸하게 몇 번 쳤었던 배드민턴을 막상 치려 해 보니, 지금 와서는 아예 라켓의 그립 잡는 방법 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나를 뺀 가족 모두가 배드민턴을 즐겨하게 되었고, 나 또한 제대로 치고 싶어져서 운동도 할 겸 근처 실내 배드민턴장을 처음 방문했던 날, 40여분 동안 생각보다 큰 운동량에 머리부터 땀이 줄줄 흐르고 다리엔 힘이 제대로 풀려 버렸던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악~~~~~!!”

갔던 실내 배드민턴장 바닥에 나라는 사람은  ‘대’자로 자빠져 버리고 말았다.





올해 학기 초,

나의 둘째는 이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아이와 단짝 친구가 되었고, 체험학습에서 다른 두명의 단짝 친구들과 합해져 4명으로 그룹핑이 되었다.

이렇게 결성된 4명의 아이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사이좋게 지냈다.

파자마 파티도 했었고, 저희들끼리 한 명의 엄마 주관 하에 근처 놀이 동산도 갈 만큼 단단히 묶어 지는 듯 했다.


한 아이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아이들의 성향은 내가 본 바로, 굉장히 유순했다.

학군지답게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그 과도한 공부량을 참 착실하게 잘도 소화해 내면서 짬시간을 이용해 서로의 집에서 놀았다. 그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엔  영상 통화를 하며 게임을 하기도 했다. 참으로 이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서서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네 명의 아이들 중, 유독 눈빛이 달랐던 한 명이 과도한 불안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 했는데, 매일 같이 과도한 학습량에 시달리며 지내던 그 아이 엄마 말로는 삼춘기가 온 아이와 매일같이 난투극을 벌인다고 했다.

아이는 학원도 수시로 빠졌으며,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 되었던 것 같아 보였다.

밤을 새며 부모 몰래 게임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편의점 기프트 카드를 이용해 게임 젬을 부모 몰래 몇만원씩 사들이기도 했으며, 조금씩 그 일탈 행동이 과도해져 갔다.

그 아이와 자주 교류를 하고 있는 나의 아이가 점차 걱정되기 시작했다.


갈수록 난폭해지며, 심지어 매일같이 엄마와 싸우고 등교하는 그 아이는 나빠진 기분을 주변 친구들에게 풀기 일쑤였다.

유순한 3명의 아이들은 결국 그 아이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도 주니어 조울증처럼 좋아진 기분이었을 때는 친구들에게 세상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하니, 나이 어린 우리 아이들 또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아이의 기분에 따라 질질 끌려 다녀진 것으로 보였다.

예를 들어 단톡방(아이 4명)에서 자신의 말에 나머지 3명이 모두 응답해 주지 않으면, 토라져서 며칠동안 말을 안한다거나, 자신이 투명인간이냐는 둥, 친구관계가 힘들다는 식으로 번번히 말하며 친구들을 눈치보게끔 만들기도 했고, 자신의 짬시간엔 모두 시간을 맞춰 놀아줘야 했으며(빠지는 아이라도 있으면, 그 사이를 틈타 없는 아이의 뒷담), 간식을 사먹을 때에도 본인 돈은 일절 쓰지 않고 모조리 친구들에게 돈을 쓰게 했다고 한다. (돈을 직접적으로 뺏지 않았다 뿐이지, 착취한 거나 다름없다.)


내 아이의 단짝 친구였던 엄마와 나는 자주 교류하고 있는데, 일전에 단짝 친구였던 아이의 생일파티에서 보여준 그 문제의 아이 행동 때문에 그 엄마 역시 꽤나 신경쓰고 있기는 했었다.

그 아이의 반항적인 눈빛, 어른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태도를 언급하며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강남의 값비싼 호텔에서 모처럼 자신의 외동딸 생일파티를 해 주었는데, 끝나고 나서 문제의 아이가 호스트인 그 엄마에게 당당히 바운스를 자신은 꼭 가야겠다며 데리고 가라고 졸라댔다는 것이다. 사실,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자신의 딸을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은 식사 비용도 만만치 않게 나왔어서 쭈뼛거리며, 그냥 집 근처 놀이터로 가자고 했다던데, 혼자서 계속 우겨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바운스를 데리고 갔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워낙에 잘 붙어 다니고, 크게 문제되는 상황이 없었기에 나도 일단은 지켜보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결국 그 아이는 나의 아이와 문제가 생겨 버렸다.

나의 아이를 포함한 3명의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문제의 아이가 내 아이를 멀리 대하며, 학교에서 째려보기 일쑤였고, 다른 두 명의 친구가 내 아이와 노는 것을 방해했다고 말이다.

순간 내가 알고 있는 그 ‘왕따’ 혹은 ‘학폭’ 그것이 맞는 것인가 싶었다.


그 아이가 그리 나오는 이유를 3명의 아이들은 모른다고 했다.

왜 그러는지 말해달라고 해도 말을 슬슬 피한다고 한다. 나의 아이가 추측하기론 나머지 2명의 아이들보다 본인이 자신의 의견을 더 정확하게 쏟아내기 때문에 가끔씩 마찰이 있어왔고, 그 문제의 아이는 자신이 그룹내 리더여야해서 자신이 하자고 하는 행동을 무조건 나머지 3명의 아이들이 따라줘야 하는데, 안해주면 갑자기 썩은 표정으로 삐져서 며칠동안 말을 안하기 일쑤였다고 했다.

결국 나의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간간히 말했을 뿐이었고, 나의 아이를 나머지 두명의 아이들이 더 좋아하게 되자 시기와 질투가 뒤섞인 감정으로 내 아이를 멀리하며 힘들게 하기 시작된 것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문제의 아이는 왈가닥 같은 성격으로 다른 주변의 친구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별로 신경쓰지 않아 게의치 않았던 내 딸아이를 더욱 옭죄어 오는 듯 했다. 자신을 봐달라고, 자신에게 어서 굽히라고 하듯 말이다.

그 세기가 굵어져 끝내 있지도 않은 사실을 거짓으로 지어내어 반친구들에게 퍼뜨렸다.

내 아이가 그룹 내에서 자신의 친구를 빼앗아 갔다는 둥, 본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둥, 자신에게 막말을 하고 다닌다는 둥 피해자 코스프레라도 하듯 있지도 않은 사실로 내 아이를 힘들게 했다.

남은 두 명의 아이들은 그 아이가 무서웠는지, 여전히 그 아이를 신경쓰며 맞춰주고 있고, 가끔씩 어이없는 상황을 마주쳐야 하는 내 아이는 여간 힘든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계속해서 나는 그 아이와 멀리 지내기를 바라기는 했었다.

아무리 나의 아이가 올곧고 온순한 성향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아이와 긴밀한 관계가 되어 지낸다면, 분명 내 아이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 클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에는 내 아이가 받을 상처가 너무 크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와 영문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다고 뭔가 싸워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그 아이의 험담과 루머로 내 아이가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노심초사하고 있을 뿐이다.



학군지라고 학폭 없다는 것은 옛말인듯 싶다. 면학 분위기가 좋을 거란 생각에 이사왔다는 옆 라인 엄마는 얼마 못가 이 곳은 다른 동네와 별반 차이가 없다며, ‘그냥 공부만 잘하는 동네’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오히려 아이들을 더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괴롭히고, 왕따시키고 놀리고 무시하는 게 다반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다수이다.

이 곳으로 흘러 들어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실상 ‘공부‘라는 일념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인성 교육은 커녕 자신의 아이가 어떠한 상태인지도 제대로 파악 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물론 이 곳 아이들 전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님)

더이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학군지의 모습, “학군지는 순딩순딩한 아이들 속에 면학 분위기가 최고!”는 결코 아닐 것이다.

비단 우리 아이 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 학군지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이어지는 과도한 학습량, 높은 레벨테스트로 인한 스트레스, 공부만 중시여기는 학부모의 행태 등등이 더욱 단단히 결합해져 아이들의 인성은 무차별로 짓밟혀지는 요즘, 난 내 아이에게 일어난 최근의 상황을 보며 정말 씁쓸하게 마음이 아파오고 있다.






결국 나는 정형외과로 가게 되었고, ‘인대부분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3주 가량의 반깁스를 한 채 배드민턴은 커녕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게 된 것이다.


운동이란 운동을 극혐하는 내가 적극적으로 배드민턴을 알아보고 다시 배우려 한 것은 바로 나의 둘째 때문이었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로 자신의 마음을 모두 표현하지 않는 나의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큰 상처가 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로서 대신 겪어내 주고 싶지만, 실상 불가한 일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이를 잘 어루만져 주는 일밖에.

체육 활동을 통해 잠시나마 힘들었을 상황을 잊고 좋은 호르몬이라도 나오면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고, 이런 상황이 자주 있다보면, 자연스레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의 의도는 가상했으나, 결국 나는 반깁스 상태로 생활하며 내 아이의 상황을 조심스레 살펴 볼 수 밖에 없게 생겼다.

부모의 마음이란 건, 정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기며, 나의 아이가 좀 더 좋은 상황에 있기를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는 듯 싶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해 가면서, 상황이 나쁘지 않게 흘러가기를 진심 기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갑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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