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강당에 모인 동네 주민들.
이 곳에 들어온지 4년차이지만, 특별히 동네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아파트 재건축'이라는 하나의 일념으로 모인 무더기의 동네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이드신 분들, 스마트해 보이는 중년들, 대센 아줌마들, 그리고 명품을 걸친 MZ세대로 보이는 수많은 남녀.
딱 그렇다.
내가 외관으로 관찰한 그들은 말이다.
2023년 현재.
1980년 초반에 태어난 향년 40세가 갓 지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물들어 올 때 노젓자는 심산인 걸까.
아님 죽기전에 재건축 누려보자는 현명한(?) 사람들의 선택인 걸까.
무쏘의 뿔처럼,
유독 고고하게 혼자만 흔들리지 않고 주변 신축아파트에 미동도 하지 않던 곳이 드디어 움직이는 모양새이다.
근처의 형제급 아파트들의 재건축 움직임이 시작되자, 이 곳도 어느 자비로운 분들의 무리가 발벗고 나서서 이리 큰 강당을 빌리고 자료를 만들고 그래서 동네 주민들을 모이게 한 첫 주민 설명회였다.
왠지 유창한 언변을 시작으로 청중을 압도하기 시작한 사회자.
자신의 직업을 변호사라 소개했다.
역시나 말을 스무스하게 잘 이끌어 갔다.
그의 인사말이 끝나고 드디어 이 거대한 무리의 수장이 될 위원장(?)이 무대로 올라왔다.
반백의 긴 장발을 지닌 남자.(그런데 하나로 단정히 묶었다)
검은 면티에 세미자켓. 그리고 청바지.
외관상으로 범상치 않아 보였다.
멋스런 인텔리 같았다.
그는 건축을 하고 있는 꽤나 유명한 학자라 했다.
누구 하나 앞장서지 않는 이 조용한 아파트에 앞서서 등장하게 된 이유가 참 공감을 샀다.
더운 물이 안나올 정도의 오래된 구축 아파트.
대부분 운동 후 싸우나를 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집에서 샤워할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하게 된 샤워를 찬물로 하다가 갑자기 이 아파트 단지는 왜 재건축이 힘들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했다.
수년 전 이 아파트의 재건축 진행을 무마시켰던 그 원인을 제거해서 그들이 그리 주장하는 이권을 모두 만족시켜 주면 다시 멋드러진 신축 아파트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더랬다.
역시나 건축학자 답게 가상의 설계안 조감도를 만들어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훌륭했다.
저대로만 된다면, 확실히 삶의 질이 업그레이드 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자산가치 상승은 덤일테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에 '이권'을 갖고 있는 이들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킬 순 없었을 테고, 이권을 갖고 있는 이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듯 했다.
이권, 그놈의 이권 타령.
신축으로 새로 설계되면 그들의 이권 보장과 함께 다른 동들의 이권도 함께 보장될 수 있는 설계가 가능할텐데, 그와 더불어 더해지는 추가적인 정부 시책들이 자신들에게는 좋을 게 없다는 입장인가 보다.
좋은 신축아파트에서 그들이 그리 말하는 '이권'이라는 것을 함께 누리면 안되는 걸까.
물론, 나는 그 이권의 권역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이권만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다.
이기심을 버리고 함께 윈윈하자구요!!
지역이기주의에서 아파트 이기주의. 그리고 더 좁혀진 동간 이권 이기주의.
자신이 속한 지역에 이익이 되지 않는 공공시설이 설립되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현상을 지역이기주의로 통칭하며 지금껏 이슈가 되어오긴 했다.
얼마전엔 한 아파트 단지에서 불법 디펜스를 치고, 외부인 출입을 막기도 했으며 다른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아이가 신축 좋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것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 사례도 많이 등장한다.
택배기사의 엘레베이터 사용 금지, 경비원들의 에어컨 사용을 제한하자는 등 참 어이 없는 이기주의가 만연하기도 한다.
사실 아파트 재건축에 있어 자신이 갖고 있는 특정 이권을, 없는 사람들과 함께 누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만, 그보다 더 멀리 그리고 넓게 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지금 그들이 갖고 있는 특권에 대한 혜택은 충분히 보상받으리라 생각한다.
서로 좋은 환경에서 함께 잘 살아가보자는 너그러운 아량으로 조금씩 양보해 가며 신축 아파트에 힘을 보탠다는 것은 정말 이권있는 그들에게 무리인걸까.
저 단상에서 우리 무리를 대신해 앞장서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힘껏 힘을 보태고픈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