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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호진 Oct 31. 2022

누가, 배달 청소년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조호진의 소년희망편지] 아스팔트에서 죽은 소년들에게

▲ 배달 청소년들이 아스팔트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 픽사


기훈(가명·22세)의 얼굴이 무척 어두웠습니다. 어릴 적에 떠난 엄마 때문만은 아닙니다. 엄마도 자식을 잊었겠지만 기훈이도 엄마를 잊은 지 오래됐다고 나에게 고백했습니다. 엄마가 떠난 원인은 아빠의 가난과 무책임이라고 했습니다. 공사판에서 일하는 기훈이 아빠는 술이 원수입니다. 술을 마셨다 하면 고주망태가 되고 다음 날은 펑크를 냅니다. 노가다 십장은 참다못해 기훈이 아빠를 잘랐고 기훈이 아빠는 홧술을 마셨습니다. 기훈이는 아빠의 그런 모습에 익숙합니다. 얼굴이 어두웠던 것은 아빠 때문이 아니란 뜻입니다.     


상수(가명)가 세상을 떠난 지 2주기 되는 날이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2017년 3월 7일, 배달 아르바이트를 마친 상수는 친구 기훈이와 천호(가명)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놀러 가다 달려오는 자동차와 충돌했습니다. 학교 밖으로 쫓겨난 상수는 살아남기 위해 별의별 알바를 다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살아남지 못하고 아스팔트에 피를 쏟으며 죽었습니다.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채 나뒹군 천호는 식물인간이 됐고, 기훈이는 운 좋게도 두 달 병원 생활을 하고 퇴원했습니다.      


갓 스물, 청춘의 
푸른 꿈을 피워야 할 소년이 
이승의 강을 건너 저승으로 홀로 떠났습니다. 
기훈의 얼굴이 어두웠던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부천역 아이들이 꼰대를 싫어하는 이유


▲ 생명보다 총알 배달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배달 시장에서 사고는 필연적입니다. ⓒ 픽사


할머니와 둘이 사는 병준(가명·19세)이는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합니다. 오후 2시에 출근해 새벽 1시까지 11시간 동안 30~40건 정도의 콜을 받아 피자와 치킨과 자장면 등의 음식을 배달해서 한 달에 200~250만 원 정도 법니다. 여기서 오토바이 수리비와 보험료 그리고, 기름값으로 60만 원 정도 지출하면 150~200만 원 정도가 순수입입니다. 할머니에겐 매달 생활비로 20만 원을 드린답니다. 할머니가 봄나들이 간다고 하자 병준이는 여행 경비로 20만 원을 따로 드렸답니다. 병준이에게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입니다. 엄마는 어렸을 적에 떠났고 병준이를 키운 사람은 할머니입니다.     


병준이는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한 지 4개월 만에 열한차례의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했고 세 차례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생명보다 총알 배달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배달 시장에서 사고는 필연적입니다. 총알처럼 달리게 해 놓고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배달 청소년이 지게 했습니다. 병준이는 배달 건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오토바이가 부서지면 수리비도 물어내야 합니다. 병준이를 보호해줄 안전장치는 거의 없습니다.     


2015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2∼2014년 기간 동안 오토바이 배달하다 다친 19세 이하 청소년은 1303명입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전체 4460명 가운데 29.2%나 차지했습니다. 2016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삼화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7년간 19세 이하 청소년 3042명이 배달 중 교통사고로 부상당했고 63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청소년들을 누가 죽게 했을까요? 총알 배달을 이윤 아이템으로 삼은 피자 업체와 이를 부추긴 소비자들이 공동 정범은 아닐까요.      


그 피자 업체가 30분 배달을 선포하자 다른 업체들은 경쟁에 뒤질세라 20분~15분 배달 시간으로 앞당기며 속도 전쟁을 벌였습니다. 전쟁 중에 죽은 군인에겐 훈장이 수여되고 국립묘지에 묻히는 등 예우를 갖추지만 배달 전쟁에 맨몸으로 던져진 배달 청소년들은 착취와 경쟁의 희생자일 뿐 어떤 예우도 없습니다. 아스팔트 위에 붉은 피를 흘린 채 죽어간 어린 목숨들은 사죄와 보상이란 예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한 줌 재가 되어 비인간화의 땅을 떠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생존투쟁 중인 아이들


▲ 병준(가명)이는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한 지 4개월 만에 열한차례의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했고 세 차례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 픽사


"사고 무서우면 일하지 못해. 일을 못하면 형이 돈 줄 거야!"    

 

눈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기훈이는 후배 병준이에게 배달 일을 그만두라고 만류했지만 돌아온 답은 생존의 비수였습니다. 기훈이가 바로 꼬리를 내린 것은 주먹이 센 병준이의 깡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부천역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의점 알바, 음식점 서빙, 결혼식 주차안내 등 단기 알바를 하다 잘려서 백수로 떠도는 것에 비해 오토바이 배달은 고수익과 일정 기간 생존을 보장합니다. 그래서 기훈이는 병준이의 목숨을 건 생존투쟁을 말리지 못했습니다.     


부모 없이 자란 병준이는 열다섯 살 때부터 일했습니다. 컴퓨터 조립공장에서부터 시작해 각종 서빙과 배달 등의 일을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병준이에게 꿈과 희망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치스러운 단어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병준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꿈과 희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버리고 떠났는데 누가 자신을 지켜줄 것인가. 병준이에게 정의는 살아남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묻지 말라. 그건 살아남은 뒤에 할 고민입니다.     


병준이가 가장 싫어하는 건 진상 고객입니다. 어른들은 어리다고 봐주지 않습니다. 금방 주문해 놓고 빨리 안 오냐 재촉하고 화를 내기 일쑤인 진상 고객들은 조금 늦으면 주문을 취소합니다. 이런 진상에게 걸리면 배달료 몇 푼 받으려다가 음식값까지 물어내야 합니다. 반말하고 욕설하는 진상 고객을 들이박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됩니다. 다시 소년원에 가면 할머니가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줄담배를 피웁니다. 분노를 참다가 눈물 흘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기훈이와 술을 마십니다. 기훈이는 술을 마시면서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점점 아빠를 닮아갑니다. 무슨 일을 시작했다가 금방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병준이는 꼰대를 싫어합니다. 부천역 아이들 중에 꼰대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꼰대들은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아이들을 착취하는 꼰대, 몇 푼 아르바이트비를 떼어먹는 꼰대, 편하게 써먹다가 갑자기 자르는 꼰대…. 안전 운전하라면서 빨리빨리 달리라는 꼰대, 안전하게 총알 배달하라는 꼰대, 청소년이 나라의 미래라면서 청소년 몫을 빼앗는 꼰대들, 도움이 절실한 위기 청소년은 뺀 채 부모 잘 만난 청소년 위주로 청소년 정책을 세우는 힘센 꼰대들, 사고의 모든 책임을 청소년에게 전가하는 악덕 꼰대들… 부천역 아이들이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건 꼰대들의 횡포를 피하고 싶어서입니다.     


쫓겨난 아이들에게 안전구역은?


▲ 청소년 배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영화로 만든 <씨티백>을 상영합니다. ⓒ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부천역 아이들에게 안전구역은 없습니다. 극빈․결손 가정에서 태어난 게 아이들 잘못이 아닌데 그 책임을 아이들이 져야만 했고, 엄마 없는 자식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고, 학교 밖으로 쫓겨날 때는 벌거숭이로 쫓겨났고, 거리를 떠돌 때는 알아서 생존해야 했습니다. 거리의 아이들은 종종 피를 흘립니다. 싸우면서 흘리는 피는 어쩔 수 없습니다. 어차피 터지면서 살았습니다. 차마 거부하고 싶은데도 거절할 수 없는 피는 세상이 뜯어가는 착취의 피입니다. 각자도생의 이 세상에 입장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할 수 없기에 목숨을 담보로 티켓을 끊고 무한경쟁에 뛰어듭니다. 아이들은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세상에 쫓기다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소년들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     


어린 배달 노동자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죽어갑니다.     


거리의 아이들이

꽃보다 더 붉은 피를

아스팔트에 쏟으면서 죽어갑니다.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떠난 아이 중에는

주검을 거둬줄 부모조차 없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내 자식이 아니라고

모른 척을 하며 밥을 먹습니다.     


꽃이 지는 것을 그리도

안타까워하면서 꽃 피우지도 못하고 지는

어린 목숨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대들끼리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에 대해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황무지 같은

이 세상을 떠나는 소년들아,

잘 가라. 다시는 이 땅에 오지 마라.     


청소년 배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씨티백>을 상영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를 참조 바랍니다.     


▶상영작 : 씨티백

▶일 시 : 11월 3일 저녁 7시

▶장 소 : 부천시일쉼지원센터 다목적실(부천시 장말로 107 복사골문화센터 6층)

▶주 관 : 스마일어게인사회적협동조합/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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