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호진 Jul 15. 2020

반지하에 사는
미혼 부부에게

#이야기 둘 - 살다 보면 좋은 날 온다, 눈물 나게 좋은 날 온다!

 ▲2020년 1월 9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텔렌보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첫 손녀.     


나는 바보 할아버지

첫 손녀를 생각만 해도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는 손녀 바보 행복한 바보     


너는 나의 천사 나의 기쁨

배냇짓 손짓 작은 움직임에도

나는 설레고 떨려, 첫사랑보다 더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하늘의 별이든 달이든 그 무엇이든지     


제아무리 예쁜 꽃을 봤을 때도

슬픔이 지나가고 기쁨이 왔을 때도

이토록 삶을 예찬한 적이 없었는데

사랑하는 첫 손녀여! 어여쁜 천사여!

너로 인하여 이 세상을 더 찬미 하노라     


그런데

그런데

아, 그런데   

  

햇볕 잘 들지 않는 반지하

곰팡이로 얼룩진 단칸방에서

미혼모 엄마와 사는 너를 보면서

나는 찬미의 노래를 멈추어야겠구나

손녀를 안았던 가슴으로 너를 안으며

나는 기쁨과 행복을 잠시 내려놓는다     


가난한 미혼모가 시름에 젖었는데

힘겨운 월세에 분유는 떨어졌는데

어떻게 기쁨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행복에 겨워할 수 있겠는가!    


▲미혼모의 반지하 단칸방.


나의 어여쁜 첫 손녀처럼

미혼모의 아기인 너 또한

축복받아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세상 모든 아기들과 모든 생명들은 다     


그런데 미혼모야 어린 미혼모야

반지하 단칸방에서 아기를 키우는

너의 얼굴엔 기쁨보다 슬픔이 많구나

실직한 어린 남편과 월세 생활비 걱정에

죄인처럼 얼굴을 숙인 너는 말이 없구나     


두 손 모아 빌고 비노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눈물겨운 과업을 잘 받들게 하소서

미혼모의 인생을 대신할 수 없겠지만

그의 아픔을 십시일반 나누게 하소서

가난의 무게에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그러므로 인생이란 말일세

삶에 지친 이웃을 안아주는 것

눈물 젖은 밥을 같이 나누는 것

아픈 눈물을 외면하고서 어떻게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만 살면 된다면 그게 어찌 행복인가

그대도 살고 나도 살아야 행복이 아닌가    


▲미혼모와 갓난아기.


지난 3월이었습니다. 


신생아 용품을 챙겨 들고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미혼모 은주(가명·21세) 집을 찾아갔습니다. 지난 1월 말, 분유와 기저귀를 가지고 찾아간 데 이어 두 번째 방문입니다. 왜 가난한 이들의 방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지. 봄비 내린 탓인지 은주네 반지하 단칸방은 눅눅했습니다. 배냇저고리 등의 아기 빨래가 널려 있는 데다 환기까지 잘 안 되다 보니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어른인 나도 호흡하기 힘든데 아기는 얼마나 괴로울까.     


▲곰팡이로 얼룩진 은주네 반 지하방.     


반지하 단칸방!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 가족들이 사는 동네와 비슷한 동네, 미혼모 은주네 가족은 대낮에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방에서 삽니다. 지난 1월에 태어난 주훈(가명)이와 미혼부 영수(가명·20세)와 셋이 월세 20만 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서 삽니다. 영수는 치킨집 오토바이 배달로 월 100만 원가량 벌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실직했습니다. 은주 얼굴이 지난 1월에 방문했을 때보다 더 어두워진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지난 1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주훈이를 처음 봤습니다. 가슴이 아픈 것은 나의 첫 손녀보다 이틀 먼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나의 손녀는 2020년 1월 9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텔렌 보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의 손녀는 축복받으면서 태어났는데 너는 미혼모 아기로 외롭게 태어났구나. 그러나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는 천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구나. 그러므로 나는 천사를 영접한 것이다. 


하지만, 앳된 미혼모는
세상 죄를 다 지은 것처럼
얼굴 숙인 채 말을 잘 잇지 못했습니다.     


▲남아공에 가서 손녀를 품에 안은 아내.  우리 부부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손녀로 인해
행복했던 시간


우리 부부는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열흘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가서 첫 손녀를 만나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작은 생명의 보드라운 숨결, 앙증맞은 손과 발,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배냇짓, 엄마 아빠의 좋은 부분을 빼닮은 얼굴, 별빛보다 더 반짝이는 눈빛, 앵두보다 더 붉은 입술, 할아버지를 닮아 지구본처럼 둥그런 두상…. 손녀를 이렇게 생각만 해도 너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손녀를 안았던 가슴으로 주훈이를 안았습니다. 아들이라 그런지 묵직했습니다. 주훈이를 안았다가 누였더니 다시 안아달라고 보챘습니다. 안아주었더니 슬그머니 웃습니다. 품에 안긴 천사가 웃는데 어찌 심장이 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방안을 살펴보다가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기의 호흡을 힘들게 하는 저 곰팡이를 어떻게 하면 좋지? 옷장이 없어서 아무렇게나 놓인 옷들을 어떻게 하지? 미혼부 영수의 일자리는?     


무엇이든
해야겠습니다.


▲가난한 미혼모는 왜 가난한 동네에서 살아야 할까.  

   

은주네가 당장 반 지하방에서 탈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영수의 일자리를 구하는 문제 또한 쉽게 풀기는 힘든 문제입니다. 그래서 산모와 아기를 힘들게 하는 곰팡이와 습기 제거에 필요한 제습기, 분유 타는데 필요한 분유 포트, 어질러진 옷들을 보관할 옷장 등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내 개인 페북과 내가 만든 비영리 민간단체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를 통해 도움을 청했습니다. 새 제품이 아니어도 좋으니 사용하지 않는 제습기, 분유 포트, 어른용 옷장과 아기 옷장이 있으면 소년희망센터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됐습니다. 


따뜻한 이웃들 때문에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에 사는 페친은 거의 새것인 제습기를,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는 다른 미혼모에게도 선물하라면서 새 분유 포트 5개를, 삼 형제를 둔 부부는 옷장을, 부천의 따뜻한 엄마는 동화책과 아기용품 등을 후원했습니다. 특히, 이유식 업체를 운영하는 삼 형제 엄마는 주훈이와 다른 미혼모 아기의 이유식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아, 세상은 정말 살만하구나! 봄이 그냥 오는 게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 때문에 오는구나! 삭막하고 살벌한 이 세상이 살만한 것은 내 것을 나누며 서로 사랑하는 그대들 때문이구나! 

 

▲미혼모 아기 또한 축복받아야 합니다!     


곰팡이는 사라지고
미혼모 아기는 잘도 잔다!


어제(7월 14일) 분유를 배달하러 은주네 반지하에 갔습니다. 생후 190일 된 주훈이는 자고 있었습니다. 분유와 이유식을 잘 먹어서인지 듬직하게 자랐습니다. 다리는 천하장사 다리 같았습니다. 따뜻한 이웃 덕분에 곰팡이는 사라졌습니다. 좋은 이웃이 선물한 옷장 때문에 살림이 정리됐고, 분유 포트 덕분에 온도에 맞춰 분유를 탈 수 있게 됐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은주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은주가 밝은 목소리로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은주는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수가 치킨 배달 일을 최근 다시 시작하면서 육아에 전념하게 됐다고, 영수는 새로 일하는 곳에선 시급이 11,000원으로 올랐고, 고용도 안정된 조건에서 일을 하게 됐다고. 그리고, LH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했는데 1순위여서 선정될 것 같다고 해서 잘됐다, 아주 잘됐다고 축하했습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대표 최승주)에서는 분유와 기저귀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주훈이 아기보험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후원자들이 보내주신 보행기와 아기용 의자 등의 육아용품과 아기공룡 인형도 선물했습니다. 어린 미혼 부부야,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란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란다, 너희를 위해 기도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좋은 이웃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우리 삶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 가난할수록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 마음속으로 이렇게 응원했습니다. 


▲아기장수처럼 튼튼하게 자란 주훈이.

제발, 대물림을
끊어, 끊어다오!


은주네에게 꼭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짐을 단단히 매는 용기와 의지입니다. 삶의 짐은 대신 질 수 없습니다. 스스로 지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위기청소년과 미혼모의 부모 중 상당수는 삶의 짐을 감당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무거운 짐을 자식들이 물려받습니다. 그로 인해 부모의 삶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삶이 망가지고 아이들의 삶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이 아기들에게 대물림됩니다.  이 대물림을 끊지 않으면 불행과 비극이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제발 끊어, 제발 좀 끊어다오! 


축복 누리기를
간절히 빕니다!


가난과 게으름, 원망과 불만, 무절제한 생활, 박약한 의지와 쉽게 포기하는 좌절… 부모에게 가난만 물려받은 게 아니라 잘못된 습관까지 물려받은 위기청소년과 미혼모들은 삶의 짐을 포기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므로 은주네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면서 축복의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빕니다. 쉽지 않은 부탁이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주훈이가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도록 그 어떤 노력이든 다해야 합니다. 빌고 비는 마음으로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미혼 부부에게’를 썼습니다.      


▲미혼모 아기에게 배달한 선물.

▲미혼모 아기에게 선물한 보행기와 아기 의자.


반지하 단칸방
미혼 부부 비나리



가난하고 서러운 어린 부부여

살기 힘들지라도 부디 살아라

반지하 단칸방에 꽃은 아니 피고 

곰팡이만 피어 아픈 몸 아플지라도

알바 인생 잘리고 또 잘려 밀려나도

쌀과 분유 떨어져 피눈물 난다 해도

살아라, 피눈물 삼키며 악착같이 살아

힘들어도 살고 더러워도 살고 꼭 살아

아무리 살려고 몸부림쳐도 살길 안 보여

이 세상 다 엎어버리고 끝내겠다 말아라

없는 놈이 깨지지 이 세상 깨지진 않는다 

그러므로 살아 제발 살아 끝내 살다 보면

살다 보면 살아진다, 아이들은 자라고

남루한 살림과 처진 어깨에도 꽃 핀다

그리하여, 좋은 날이 오면

눈물 나게 좋은 날이 오면 

하늘이 기뻐하며 축복하리라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정을 세운 그대들아 참 잘했다

행복을 주노니 이에 참예하여라


(조호진 시인의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미혼 부부에게’)     


▲미혼모 아기를 안은 아내.

    



작가의 이전글 소년은 왜 일베가 됐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