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의 <배민다움> by 북스톤
편의점에서 만난 배달의 민족
회사에는 한 달에 한번 '문화 데이'라는 게 있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이날의 콘텐츠를 기획하는데, 그리 거창한 건 아니다. 영화를 보러 가거나, 전시회를 보러 가거나, 맛집 투어를 가는 식의 사기충전 프로그램이랄까. 2월의 문화데이가 열리는 장소는 요즘 핫하디 핫한 성수동이었다.
해가 뜨면 분명히 따뜻해진다고 했는데 맘 놓고 돌아다니기엔 아직 추웠다. 성수동에서 요즘 핫하다는 '클림트 인사이드전'을 보고 건대입구로 넘어가는 길, 심각한 수족냉증 환자인 나는 이대로 건대까지 가면 분명 손끝이 저릿저릿해져 올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 핫팩을 사러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매대 위에는 꽤 많은 핫팩이 놓여 있었는데 '개별난방'이라고 써진 빨간 핫팩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폰트도 그렇고 카피도 그렇고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인데... 아, 이거 배달의 민족아냐?!
핫팩까지 만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긴가민가했지만, 손에 쥐고 보니 아래쪽에 조그맣게 '배달의 민족'이라는 다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캬... 역시 배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자마자 1초도 되지 않은 사이에 본인의 브랜드를 연상시키게 하는 디자인과 카피라니. 이곳저곳에서 많이 보이긴 했다만 편의점에서까지 배민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우리 회사 필독서
<배민다움> 출간 당시에는 '아, 회사가 잘되니까 이젠 책까지 내는구나' 정도였다. 딱히 챙겨 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B급 정서가 다 일 거라고 지레짐작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옮긴 회사에서 이 책이 꽤 핫한 필독서로 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읽은 사람들 대부분이 반응이 꽤 좋았다. 마침 내부 브랜딩에 관련한 여러 이슈들이 진행 중이었던 터라 나도 귀가 솔깃해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배민다움'이라고 크게 적혀 있는 표지를 넘기자 이런 문장이 나왔다.
살아남는 기업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자기다움'을 만들고 지켜간다는 것이다.
<배민다움>은 배달의 민족은 어떻게 시장에서 살아남았나에 대한 길고 긴 이야기다. 홍성태 교수와 김봉진 대표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스타트업, 외부 마케팅, 내부 브랜딩, 이렇게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인터뷰 형식으로 쓰인 텍스트이므로 쉽게 쉽게 읽힌다.
진정성이 착하고 바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에 대해 연구하며 술을 만들고,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빵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부 브랜딩은 빵을 만드는 사람들이 빵을 진정 좋아하고, 빵 만드는 행위를 노동이 아니라 숭고한 활동으로 여길 수 있도록 소명의식과 비전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일이 세상에 어떤 이로움을 주는지에 대한 비전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 하나. 이들은 본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한다. 그것도 아주 꾸준히, 최선을 다해서.
수많은 브랜드가 시즌별로 슬로건을 바꾸고, 맥락 없는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을 치고 빠진다면 배민은 언제나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마케팅을 한다. 어딘지 우스꽝스럽고, 거칠며 투박하기까지 하지만 한번 보면 전혀 잊을 수 없는 광고(예를 들자면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제일 예뻐' 같은)를 꾸준히, 끊임없이 한다. 아마 내가 편의점에서 찾은 '개별난방 핫팩'도 이러한 흐름의 일환일 것이다.
버스 정류장 광고, 잡지 광고, TV광고, 서체 개발 등 그 형태는 여러 가지지만 가만 보면 모든 마케팅이 하나로 수렴된다. 바로 '배민답게'로. 배민답게 일하고, 배민답게 살고, 배민답게 토론하고, 배민답게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기에 자연히 이 모든 게 '브랜드의 진정성'으로 수렴된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회사가 정말 대단한 회사였다는 걸 느낀 지점은 바로 이 꾸준한 '진정성'이었다.
지속적 성장의 핵심은 사람들의 충성심(loyalty)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중심 콘셉트는 변하지 않되, 콘셉트의 표현은 디자인을 통해서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든 계속 진화해가면서 '자기다움'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때 '중심 콘셉트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진화의 창의성'이
지속성의 핵심이다.
우리도 'OO다움'을 만들 수 있을까
내부 브랜딩 과정과 독특한 마케팅 퍼포먼스, 창립일부터 지금까지 배민을 끌고 온 김봉진 대표의 신념과 철학 이 가득 담긴 <배민다움>을 읽고 든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만의 'OO다움'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였다. 배민은 가게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디자이너와 농부를 이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직거래에 필요한 라벨과 박스 디자인, 팸플릿 디자인 등을 제공하는데 농부와 디자이너 사이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우리를 브랜딩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 책으로 더욱 깊어졌다.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닐 것이고, 어느 정도 브랜딩 작업이 마무리된 지금도 100% 완성된 브랜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브랜딩이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구축해가는 거니까. 브랜딩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기업의 일원이라면 <배민다움>을 추천한다. 험난한 브랜딩 과정의 맥을 조금이라도 집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