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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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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away Dec 30. 2020

드라마 <카이로스>가
카이로스인 이유

카이로스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카이로스(Kairos);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기회의 신을 뜻함



어렸을 때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나에겐 두려움의 존재였다. 무서웠던 이유라면 특별하게 못생겨서. 위의 그림과 같이 카이로스는 신기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앞머리는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고 저울과 칼을 들고 다니며, 날개는 등도 모자라 두 발에도 크게 솟아있었다.      


여기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는 내가 ‘카이로스’라는 이름을 절대 잊지 않는 계기가 됐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그를 가려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지만, 발견했을 때는 그 풍성한 앞머리로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고, 뒷머리가 대머리였던 이유는 그가 지나가면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저울이 있는 이유는 기회 앞에 경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칼을 든 이유는 칼같이 결단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날개는 주저함 없이 재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였다.     


기회의 신이라는 ‘카이로스’의 생김새는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 ‘기회’를 그 풍성한 앞머리에 못 보고 지나칠 확률이 크지만 마주하게 된다면 앞머리를 꽉 움켜잡고, 정확한 판단과 결단을 내리고 기회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허망하게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 결과, 이런 기가 막힌(?) 신의 이름을 가져다 쓰고 있는 드라마 <카이로스>는 나에게 강하게 닿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안쓰럽기까지 했다. 왜 하필 저 무서운 아저씨를 제목으로 가져다 쓰는 건지, 나아가 드라마가 ‘카이로스’를 대체 어떻게 품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카이로스를 시청하고 얻어낸 제목의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온통 기회와 후회로 점철된 드라마 <카이로스>. <카이로스>는 카이로스여야만 했다. 드라마 <카이로스>가 담고 있는 그들만의 ‘카이로스’도 그랬다. 이처럼 드라마 <카이로스>는 주인공에게 찾아온 기회의 신을 맞닥뜨리며 시작한다.  

    

당장 수술이 시급한 엄마의 병원비를 도둑맞은 한애리(이세영)와 아이를 유괴당한 후 아내마저 자살하며 모든 가족을 일주일 만에 잃어버린 김서진(신성록). 첫 화에서 이 둘에게 놓인 상황은 참으로 가혹했다. 그런 그들에게 카이로스, 즉 서로 한 달의 간격을 두고 하루 단 1분간 공조할 수 있는 신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 1분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와 과거를 바꿔가며 후회를 만회할 기회를 얻는다.


한 달 차이를 두고 한애리(한 달 전)와 김서진(한 달 후)의 전개가 교차되는 장면


다른 타임 크로싱 물과는 달리 카이로스는 고작 ‘한 달’ 차이밖에 두지 않는다. 보통은 시대와 시대를, 적어도 1년 이상의 차이를 두는 것과는 달리 드라마 <카이로스>는 애매한 한 달을 사이에 두고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나는 이 또한 ‘카이로스’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기억한다면 기억하여 생생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잊는다면 한 없이 잊혀 쓸모도 없는 과거가 되어버리는 시간인 ‘한 달’. ‘한 달’은 우리 나름에 따라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경계에 놓인 시간이었다. 기회가 그랬다. 순간을 놓치면 재빨리 잊히지만, 언제나 기억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꿔버릴 수도 있는 존재였다.      


기욤 뮈소는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아무리 보잘것없는 삶이라도 사는 동안 적어도 한 번쯤 운명을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잖아. 카이로스는 삶이 제공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하기도 해. 그래서인지 대체로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순간은 지극히 짧은 법이야.

10시 33분에서 34분이 되는 순간, 1분이 지나면 여지없이 끊어져 버리는 둘의 통화


그래서인지 극 중 한애리(이세영)와 김서진(신성록)은 그들 앞에 놓인 카이로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지치지 않는 역량을 발휘를 하고 있다. 카이로스라고 여겨지는 10시 33분 그 순간,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들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복잡한 생각은 접어둔 채 일단 나선다. 설사 그 결과가 좋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심할 때는 본인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기도 하지만, 인생의 최악을 이미 경험한 그들에겐 그 최악의 뒤바꿀 소중한 1분이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로 활용해 ‘카이로스’를 붙잡아 두어야 했다. 기욤 뮈소의 말대로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순간은 지극히 짧은 법이라 1분의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애리에게는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서진에게는 후회뿐이었던 아내와 아이를 다시 살려내는 게 간절했으니까.     


각자, 인생에 카이로스가 필요한 순간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애리와 서진이처럼 카이로스가 필요한 순간, 카이로스를 만났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애리와 서진에게는 하루에 한 번씩 10시 33분이라는 카이로스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것이 처음부터 카이로스였을까? 10시 33분의 1분이, 서진과 애리의 한 달 차이가, 그들에게 카이로스였던 건 그 둘이 찾아내고 발견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무언가를 이뤄내고자 하는 간절함과 노력이 결국엔 드라마의 제목을 <카이로스>로 만들어냈던 것이라고. 나아가 우리의 인생도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카이로스는 심술궂게도 뒷머리가 없다. 한 번 놓치면 다신 잡히지 않겠다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카이로스에게 뒷머리를 심어줄 발모제가 애리와 서진, 그리고 우리에게는 없다. 후회 가득한 인생이 카이로스 덕분에 두 번째 전환점을 맞이할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우리는 카이로스는 놓쳤는지 조차 모르게 흘려보냈을지 모른다. 

    

참 진부한 말이지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카이로스를 찾아낼 눈치가 없다면 그저 준비를 많이 해 기다렸다 낚아채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애리와 서진이처럼 그저 33분을 기다리며 최선의 준비를 해놓는 것이다. 그렇게 카이로스의 앞머리 잡는 연습을 하면, 언젠가는 허공에 지속해서 뻗었던 손에 앞머리가 한 움큼 쥐어지게 되는 날이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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