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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Knowledge
Nov 08. 2024
첫 수업 시간 이후로 프로그래밍을 향한 나의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자꾸 궁금하고 더 알아보고 싶은 것들은 수시로 생겨나는데 정작 자료형이니 형변환이니 객체지향이니 하는 단어들을 마주하기만 하면 머리가 하얘지고 진땀이 나는 이 느낌은 중학생 때나 느껴봤던 그 감정이 확실했다.
게다가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 중에서는 이미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취업용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온 친구들도 많아서, 그런 친구들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던 용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뭐 이런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시작하지?' 하는 표정을 지을 때면, 그 시절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Radio Head의 Creep을 따라 부르며 느끼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열등감까지 밀려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당시 내겐 강사님의 도움이 간절했는데 우리 강사님은 그런 것을 주기에는 너무나 천재적인 사람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포인트에서 무엇을 왜 어려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종류의 천재. 설명을 한번 쭉 읽어주고 관련하여 문제를 내준 다음 해결하지 못하면 '알려줬는데 왜 이걸 못하지?' 싶은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그러거나 말거나 진도를 나가고 숙제만 왕창 내주는 게 그의 수업 방식이었다.
그 때문에 불만이 속출하고 과정을 포기하는 학생들까지 발생하자 어느 주의 금요일에는 '방식을 개선해 보겠다'며 수업을 마쳤는데 다음 주 월요일에 다짜고짜 어릴 때 오락실에서나 해봤던 스네이크 게임을 만들어오더니 동작하는 모습과 구현한 코드창을 번갈아 보여주며 저게 어떻게 저렇게 동작하는 건지 누가 이해하든 말든 혼자만 신나서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모두 접었다.
뒤늦게 찾아보니 국비 지원 교육 센터도 수업의 질이 모두 달라서, 좋은 센터라고 이름난 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시험도 통과해야 하고, 그럼에도 신청자가 몰려서 대기까지 있을 정도라던데 그런 것도 찾아보지 않고 그냥 집 앞에 있는 센터로 불쑥 찾아가 등록부터 한 게 처음으로 후회가 되었다. 어쩐지 하고 싶다고 하자마자 받아주더라니..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센터를 찾고 옮기는 과정에 몇 달을 써버리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국비 지원 교육을 받으면 지원금이 나오긴 했지만 월세를 내고 생활을 꾸려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어서 많은 수강생들이 주말이면 몰래 현금 당일 지급 알바를 병행하는 게 현실이었기에 실업 급여를 받고 있는 덕에 시간과 체력을 공부에만 쏟을 수 있는 지금 어떻게든 승부를 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해가 갈 때까지 혼자 교재를 읽고 따라 해 보다가 중간중간 막히는 건 검색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대책 없는 결정이었지만 다행히 프로그래밍 씬에는 지식 공유 문화가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 잡아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마주했을 때 키워드를 잡아 구글에 검색해 보면 그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해 둔 포스팅들이 쏟아졌다. 간혹 원하는 검색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도 키워드를 영어로만 바꿔 검색해 보면 글로벌 개발자 커뮤니티인 'Stack Overflow'에 누군가 이미 비슷한 질문을 해 답변을 받아둔 내용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 왜 이 개발자란 족속들은, 어떠한 대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본인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배웠을 지식을 전달해주지 못해 국적을 불문하고 안달이 나있을까?' 내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큼 쓰더라도 어떻게든 당신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말리라는 열의가 느껴지는 포스팅이나 답변들을 볼 때마다 그런 게 너무 신기했지만 포스팅이나 답변 정도로 놀라기엔 일렀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던 중 알게 된 '생활 코딩'이라는 사이트에는 내가 원래 이 교육 과정에서 강사님께 배워야 했던 기술들에 관한 강의 자체가 아예 무료로 공개되어 있었다. 퀄리티도 좋을 뿐만 아니라 강의 중간중간 필요한 부분에 개발 공부를 먼저 해 본 사람만이 해 줄 수 있는 조언까지 필요한 만큼 더해져 있어서 강의를 한 편 한 편 수강해 갈 때마다 어둠 속에서 만난 한줄기 빛이 서서히 밝게 퍼져 들어오는 느낌까지 들었다.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개발자를 묻는다면 생활 코딩을 만든 이고잉 님을 주저 없이 말할 정도로 큰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무모해 보였던 결정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이해가 가지 않던 개념들이 다음날이면 종종 명확해져 있었고, 그런 날들이 쌓여가자 지난주엔 버벅거리며 겨우 했지만 이번주엔 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들도 점차 늘어갔다.
그러자 주변도 좀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주어진 과제를 마치고 나면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진행 상태를 보고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빈도수가 늘어났다. 평소라면 이런 오지랖 부리지 않았을 텐데 비슷한 답답함을 누군가의 대가 없는 친절 덕분에 벗어나 본 경험이 자꾸 먼저 손을 내밀 게 만들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개발씬의 공유 문화란 것이 어떻게 전승되어 온 것인지 약간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봤자 갓 시작한 입장인 내가 주변에 줄 수 있는 도움이라곤 미약한 수준이었고 강사님은 여전했다.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의 분노는 쌓여만 갔고, 수업이 끝날 때마다 쏟아지던 한숨들 사이로 어느 순간부터는 욕설까지 들리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어느 날 평소보다 더 크게 들린 욕설을 신호탄으로 수강생 십여 명이 원장실로 몰려가 강사님을 바꿔주지 않는다면 우리 다 그만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강사님의 경질이 결정되었다. 수업 시작일로부터 2달쯤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