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엔 작고 소중하고 귀여운 돈이 조금 생겨서 제일 먼저 감사한 분들께 식사를 대접했다. 그동안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맷집이 꽤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3월에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타입의 스트레스를 겪었다. 아마도 19년도 이후에 처음이었던 듯.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당장 미쳐버릴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래서 밤 10시에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한 시간을 떠들었다. 한 마디로 ‘시바 나 좆된 거 같은데 어떡해요?’ 알게 된 지 딱 한 달 된 분께 한 시간 동안이나 떠들었다. 사람이 눈앞이 흐려지면 뵈는 게 없어져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된다. 시바 어차피 저지른 거 또 다른 이에게 또 전화를 했다. 밤 11시부터 또 한 시간의 통화. 그리고 1초도 못 자고 밤을 꼬박 새우고 결론을 지었다. 오래 고민하여 신중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도 좋지만 아니다 싶으면 발 빠르게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눈물콧물 쏙 빼면서 배웠음. 갑자기 밤에 전화해서 떠들어대는 이 정신나간 놈보고 ‘밤 뿐 아니라 꿈에 찾아와도 언제든 환영’이라고 하는 천사에게 어찌 따뜻한 밥 한 끼 떠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덕분에 스트레스에서 금방 해방되었고 지금은 짧고 굵게 겪었던 ‘에피소드’ 쯤으로 치부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장점이라면 힘든 게 오래 안 간다는 것. 나도 똑같은 인간이라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고통스럽고 다 똑같은데 그게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좀 짧고 굵게 겪고 끝나는 편. 몸이 아플 때도 마찬가지.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자랑한다.
지난주에는 불고기디스코 공연엘 다녀왔다. 작년에 클럽 샤프에서 공연을 너어어어어어어어무 재밌게 봐서 단독공연 하면 꼭 가봐야지 하고 결심했었다. 가방 하나 안 들고 맨몸으로 이렇게 가볍게 공연장을 간 건 또 처음이었다. 좌석이라 너무 어색해서 공연 초반부엔 분위기 적응이 좀 안 되었다. 곧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는 이현송 씨는 꽤 설레보였다. 생계를 위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만들고 있지만 음악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게 되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목표라는 인터뷰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퇴사를 하고 음악 활동에만 올인을 할 거라고 그게 맞는 것 같다고 확신에 찬 눈으로 그가 무대에서 멘트를 하고 있었다. 살면서 그런 눈은 처음 봤다. 결의에 찬 눈빛. 또 한 번 ’아 나는 저런 눈빛을 가진 적이 있었나‘ 반성하고 이내 시작되는 연주에 궁뎅이를 흔들어제꼈다. 어차피 실천도 안 할 거 이제 이 짓도 그만해야 할 텐데. 영혼 없는 습관성 반성.
미뤄뒀던 것 중에 최고는 일본여행. 사키와 타카코한테 ‘일본 꼭 한 번 갈게’ 하고는 그동안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매번 그들이 한국에 왔고 난 늘 ‘다음엔 내가 갈게’를 되풀이했다. 작년엔 타카코가 우리 집에 와서 2박 3일을 있었다. ‘다음엔 내가 꼭 갈게’ 내 말에 타카코가 썩소를 날렸다. 전에는 말로만 그러지 말고 꼭 오라고 잔소리를 하더니 이젠 말도 안 꺼낸다ㅋㅋㅋ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더 미루면 나는 진짜 인간도 아니다.
일본을 간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은 친구들과 밥 먹기, 그리고 공연보기. 이게 전부다. 한 2-3주 정도로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아 일본 전역을 다니며 타카코, 사키, 준코, 히로코를 만나고 싶지만 우선은 타카코, 사키쯤으로 해두자. 공연은 후지락페나 썸머소닉 하나쯤은 볼까 생각하다가 그렇게까지 보고 싶은 라인업도 없고 무엇보다 한여름의 습한 일본 더위가 겁났다. 그래 그러면 클럽공연을 보자. 일본이 그렇게 서브컬처가 발달되어 있다고 하니 재밌을 것 같다. 우리나라도 공연문화도 사실 일본으로부터 모방했으니 오리지널은 어떨지 궁금했다. 사키 역시 락페는 너무 고생스러울 것 같고 본인이 요새 꽂힌 밴드가 있으니 클럽에 그들을 보러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아는 일본 밴드 하나도 없는데 현지인이 동행해 준다면 오우 나야 땡큐지. 미리 예습하게 그 밴드 영상 좀 몇 개 보내다오 해서 받은 영상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아 이건 좀.......... 그래 취향이 중요한 게 아냐. 난 일본 클럽 문화를 탐색하러 가는 것이라고 한 만 번쯤 주입했다. 앞으로 몇 번쯤 더 주입을 하면 될까요 ㅠㅠ
불고기디스코의 신곡 제목이 ‘다가가’ 란다. 사람들이 ‘다가와’라고는 많이 해도 다가간다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고. 올해는 내가 꼭 타카코와 사키에게 다가가야지. 내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언젠가 제가 ‘아 나는 개새끼야’라고 한다면.. 그런갑다하고 애도를 표해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