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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라인의 끝

120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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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8.


페이스북에서 4년 전 오늘이라면서 보여준 사진 속엔 혀를 내밀고 그 위에 전역증을 찰싹 붙여놓은 내가 있다. 좀 바보 같이 생기긴 했어도 씩씩해보이는 얘가 오늘 알바 좀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탄다.


원래 2일차에는 어제의 일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숙련된 몸뚱이의 활약으로 하루가 빠르게 흘러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게 시간은 어제보다 느릿느릿 흘러간다. 오늘의 임무는 아웃박스다. 말그대로 라인의 끝으로 내려오는 화장품을 큰 박스에 정해진 개수대로 담고 테이핑을 하는 건데 라인의 끝이기 때문에 떠안게 되는 문제가 하나 있다.


컨베이어 벨트는 쉬는 시간이 아니면 멈추는 일이 없기에 중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밀리게 되면 라인 중간에 있는 사람은 제품을 따로 빼내서 템포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라인 끝에서는 밀려드는 완성품을 부지런하게 재포장해야할 뿐 자기 템포를 조절할 수 있는 기회 조차 없다. 라인 상류에서 화장품을 용기에 충전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텀이 생기면 라인 중간에서 빼놓았던 제품들이 다시 우르르르 하류로 내려온다는 점도 라인 끝에 있는 자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하루종일 라인의 끝에 서있었다. 어제는 힘들어도 운동을 했는데 오늘은 도저히 못하겠다. 옥상가서 하늘을 보고 9시에 누워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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